[취업 탐구 ‘기업 vs 기업’②] 조양호 ‘고객불만 직접 챙겨’ 박삼구 ‘연봉 1원...그룹 정상화 사활’
입력 2017-01-20 06:11:00
수정 2017-01-20 06:11:00
△ 조양호 회장
'소탈' 이미지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은 1949년 3월 8일 부친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와 어머니 김정일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석사학위를, 인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 대한항공에서 근무를 시작해 정비, 자재, 기획, 정보기술(IT), 영업 등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분야를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은 뒤 1980년 상무이사를 거쳐 1992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1999년부터는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2003년에는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조 회장은 평소 스타일이 소탈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대외행사에는 비서를 동행하지 않는 편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IOC 관련 행사에서는 참석한 손님들에게 손수 맥주와 음료를 대접하기도 했다. 모텔에서 자고 햄버거를 먹으며 18일간 6000마일(9600km)을 직접 운전해 미국 여행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시간만 나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국내외를 누빈다.
그의 경영 철학의 중요한 키워드는 ‘소통’이다. 조 회장은 고객의 칭찬, 불만 메시지가 담긴 ‘고객의 말씀’을 직접 점검한다. 꼼꼼히 읽고 개선 사항을 직접 지시내릴 때도 있다. 임직원과의 소통 역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조 회장은 “직위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을 확대할 것”을 늘 강조한다.
그가 소통에 특히 신경 쓰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대한항공의 추락 사고 이후부터다. 1997년 괌에서 대한항공 801편이 추락해 254명의 탑승객 가운데 228명이 숨졌다. 1999년에는 화물기가 중국 상하이와 영국 런던에서 잇따라 떨어졌다. 사고 원인은 기장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기장, 항공기관사 등은 위계질서 탓에 제대로 의견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후 조 회장은 소통의 장벽을 없애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한국의 존댓말 문화가 위계질서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에 조종사들의 영어 사용을 의무화했다. 항공안전 개선과 항공기 교체, 기업문화 개선 등을 위해 투자한 금액이 10년간 54억 달러에 달한다.
△ 조원태 사장
'능력자'로 소문난 대한항공 조원태 사장한편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은 2017년 1월 6일 대한항공 사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조원태 사장은 인하대 경영학과와 서던캘리포니아대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2003년 8월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 담당 차장으로 입사했다. 1년 뒤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경영기획팀 부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2009년 여객사업본부 본부장(상무), 2011년 경영전략본부장(전무), 2013년 화물사업본부장(부사장), 2016년 총괄부사장 등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대한항공은 젊고 역동적인 조직 분위기로 쇄신하기 위해 조원태 총괄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2014년에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난해에는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 대표이사를 겸직했다. 2016년에는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을 맡아 실질적인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대표이사로 오른 뒤 대한항공은 지난해 3분기 46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조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뒤 진에어 역시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40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5% 늘었다.
△ 박삼구 회장
공격적인 CEO,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1945년 3월19일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고려대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67년 금호타이어에서 근무를 시작해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친 후 1980년 금호실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199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사장을 맡게 됐고, 2001년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승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박 회장은 공격적인 사업 수완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창립 60주년을 맞던 2006년에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8위까지 끌어올렸다. 2년 후에는 대한통운까지 사들이는 통 큰 결단까지 내렸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와 무리한 사업 확장이 맞물리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휘청였고, 결국 2009년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여기에 동생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과의 갈등까지 더해져 박삼구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곧 경영에 복귀했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박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 금호고속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모두 팔아 3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2013년에는 ‘연봉 1원’을 제시하는 등 그룹 정상화를 위해 온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는 금호산업 대표이사 자리를 되찾고, 2015년에는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인수대금 7228억 원을 완납하고 금호산업을 인수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권을 되찾았다.
박삼구 회장은 평사원들에게는 친절하고, 간부들에게는 냉철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박 회장은 일반 사원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구내 식당에서 줄을 서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매년 2회씩 신입사원들과의 함께 산행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금호아시아나인으로서 자세에 대해 조언도 전한다. 하지만 실제 업무를 함께하는 임직원들에게는 깐깐하고 냉철한 태도로 일관한다. 특히 업무 처리가 허술한 간부 사원이 있을 경우 가치 없이 호통을 친다는 후문도 있다. 회사 업무에 관해서는 철저한 원칙과 합리를 우선하는 완벽주의자의 면이 있기 때문이다.
△ 김수천 사장
꼼꼼함으로 승부하는 아시아나항공 김수천 사장 최근 연임에 성공한 김수천 사장은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된 1988년부터 함께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아시아나항공과 30여년을 함께하며 CEO의 자리까지 올랐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판매관리, 국제선 판매 담당으로 근무했다. 중국어 실력이 출중하다는 장점을 살려 상하이지점 여객판매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사 후 10년이 되던 해인 1998년에는 중국 광저우 지점장을 맡았고, 이후 중국팀, 인사팀 팀장을 거쳐 2004년 인사노무부분 이사로 진급했다. HR과 여객영업부문 상무를 역임하고 2008년에는 전무로 승진했다.
2008년부터는 에어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서 첫 LCC인 에어부산의 대표이사직을 맡아 에어부산의 흑자 경영을 이끌었다. 저비용항공사로는 최단기간에 흑자를 거둔 케이스다. 국내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려 이러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5년에는 또다른 저가항공사인 에어서울을 출범했다.
김수천 사장은 긍정적이고 꼼꼼한 CEO로 소문나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자는 이야기를 자주하는 편. 2015년 12월 교육기부 봉사단에서 강연자로 나섰을 때도 “만년 과장으로 머물 때도 한번도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분수를 알고 초라해하지 않으며 꾸준히 노력해 이 자리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에어부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그의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 덕분이다. 김수천 사장은 사전에 치밀한 분석으로 부산-대만 노선을 신규로 취항했고, 높은 탑승률을 기록해 흑자 경영에 일조했다.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능한 CEO로 알려져 있다. 김수천 사장은 2014년 사장 취임 후 3년간 매월 1회 직원들과의 식사 모임인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이어가고 있다. 각 분야 현장 직원 10여명씩과 도시락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주재원 출신, 신입사원, 운항인턴 등 공통 주제를 정해 진행하기도 한다. 모임 후에는 그가 즐겨 읽는다는 논어·공자·맹자 등의 고서를 선물하기도 한다.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