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취업 커뮤니티에 단골로 등장하는 광고가 있다. ‘회식 분위기 띄우기’, ‘신입사원 장기자랑 마스터’ 등의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각종 댄스학원, 치어리더 아카데미 등의 홍보 광고다. 트로트 한 소절에 막춤 한 바탕이면 박수를 받았던 그 옛날 장기자랑은 추억이 됐다. 신입사원들은 장기자랑을 배우러 학원에 간다.
장기자랑 준비하는데 60만원에서 200만원 강남에 위치한 한 댄스학원. 이곳은 다수의 대기업과 연간 계약을 맺어 사원들의 장기자랑 연습을 돕는 곳이다. 장기자랑을 위한 곡 선정부터 콘셉트 정하기, 안무 연습 등을 담당한다. 가장 바쁘다는 12월과 1월에는 1~2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듣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학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장기자랑을 하면 어쭙잖게 노래하고 춤 한번 추고 말았지만 요즘은 다르다”라며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보여주려는 생각에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하는 신입사원이 많다”고 말했다. “학원에서 열심히 준비해 회사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한 수강생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강료는 1시간에 10만 원 선으로 책정돼있는데, 1곡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최소 6시간 이상 수업을 들어야한다. 학원 관계자는 “20시간 씩 수강하는 직장인도 많다”고 덧붙였다. 장기자랑 한 번을 위해 최소 60만원에서 200만원까지의 금액이 요구되는 셈이다.
누구를 위한 장기자랑인가, 직원들 스트레스↑워크샵, 신입사원 연수 등에서 선보이는 직원들의 장기자랑 무대. 웬만한 오디션 프로그램 못지 않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과연 모두가 웃고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인터파크의 직원들은 ‘장기자랑’ 얘기라면 몸서리를 친다. 이 기업은 매년 창립기념일에 직원들의 장기자랑을 진행하는데,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매우 높은 편. 춤, 노래, 악기 연주 등의 무대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인터파크는 직원들이 장기자랑을 위해 댄스학원 등을 수강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은 원치 않는 장기자랑 준비를 1~2개월간 해야 하는 것이 곤혹이다. 게다가 장기자랑을 한다고 업무량을 조절하거나 시간을 빼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퇴근 후 시간, 주말을 반납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장기자랑 연습에 몰두해야한다.
기업 정보 서비스업체 잡플래닛에 올라온 인터파크 기업 리뷰를 살펴보면 다수의 직원들이 장기자랑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원들은 “업무보다 중요한 장기자랑”, “오디션 수준을 요구”, “누구를 위한 재롱잔치(장기자랑)인지 모르겠다” 등의 글을 게시했다.
인터파크 홍보 관계자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개개인별로 장기자랑에 대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장기자랑 준비를 하며 평소 교류가 없던 직원들을 알게 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