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 특성화고마인드맵①] 인생 180° 바꾸는 고졸 취업

인생 180° 바꾸는 고졸 취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이른바 고졸 취업률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14일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졸 취업률(특성화고·마이스터고)이 2009년 16.7%에서 2016년 47.2%로 7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올해 고졸 취업률은 47.2%로 지난해 46.6%보다 0.6%p 상승했다. 2009년과 비교해보면 7년 새 약 2.8배 이상 취업률이 오른 셈이다. 여기에 졸업자 중 진학자를 제외한 취업률은 72%로 대학 졸업자 취업률(`15년 67%)보다 높게 나왔다. 고졸 취업률의 상승은 과거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 문화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찍 취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는 선취업 후진학 문화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졸 취업률이 상승하면서 선취업 우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고졸 출신들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취업에 성공한 사례들은 고교 선택을 앞둔 초, 중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의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특성화고에서 꿈 찾고 이룬 김윤지 은행원대전신일여고 졸업
중3때까지 특별한 꿈이 없었던 김윤지(20)씨는 성적에 맞춰 집 근처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성적도 낮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장만 딴 뒤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별다른 꿈 없이 특성화고에 진학한 김씨는 처음 접해 본 회계와 경제 과목에 흥미가 생겼다. 그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 해본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 후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해 본 결과 고교 첫 시험에서 반 1등을 기록했다.“학교 다니면서 1등을 처음 해봤어요.(웃음) 전공과목은 다들 처음 접하는 거라 출발선이 같잖아요. 저도 하니까 된다는 걸 그때 알았죠.”공부에 맛을 들인 김씨는 그때부터 전공과목은 물론 국, 영, 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고교 3년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하면서 학급 관리부터 내신 성적 관리까지 완벽히 해 낸 김윤지 씨는 지난해 11월, 우리은행 행원으로 합격해 현재 대전세이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중학교 때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보면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어요. 누구나 바뀔 수 있어요. 제가 경험한 특성화고는 짧은 시간 안에 공부와 취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게을러도 쉽게 뒤쳐질 수 있어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곳이랍니다.”


성적 꼴찌에서 5성급 호텔 셰프로 유동민 셰프한국외식과학고 졸업
조리전문 특성화고를 졸업해 국내 유명 호텔 일식당 셰프로 근무 중인 유동민(23)씨는 학창시절 반에서 꼴찌를 도맡아 하던 학생이었다. 유독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유씨가 유일하게 관심 있었던 분야는 요리.“중학생 때부터 혼자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공부는 너무 하기 싫어서 중2때 요리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요리에 관심이 생긴 유씨는 고등학교 역시 조리 전문 특성화고로 지원했지만 내신 성적이 낮은 탓에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몇 명의 합격자들이 빠지는 덕분에 마지막 등수로 입학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1학년 때부터 미친 듯이 요리만 하기 시작했다.“책만 펴면 졸음이 쏟아지는데 반면 요리는 몇 시간을 해도 재밌더라고요. 하루 3시간 자고 나머지 시간은 요리만 할 정도였으니까요. 담임선생님께서 ‘요리에 미친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죠.(웃음)”고교 3년 동안 요리에만 빠진 유씨는 현재 국내 손꼽히는 호텔에서 4년차 셰프로 근무 중이다.“제가 셰프가 될 수 있었던 건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학교 시스템 덕분이에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만큼 현장 경력을 더 쌓아 최연소 총주방장이 되고 싶어요.”


취미 살려 선취업 후진학한 양지원 사원한국관광고 졸업
중학생 때부터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양지원(20)씨는 자신의 취미를 살려 고등학교 선택은 물론 취업까지 한 케이스다.“어릴 적부터 일본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언젠가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자막 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혼자서 일본어 공부를 하다 일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관광고로 진학 했어요.”일어를 배우기 위해 진학한 한국관광고는 대부분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다. 내성적이었던 양씨는 기숙사 생활과 학생회 활동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성격도 활발해졌다. 취업도 수월했다. 졸업 전인 고3 12월에 하나투어 일본지역본부 마케팅팀에 입사한 그녀는 현재 경희대 문화관광산업학과를 다니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 중이다.“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학교를 가는데 일과 학업을 병행하니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선택한 거라 후회 없어요.(웃음)”

무조건 취업? 허술한 현장실습이 아이들 사지(死地)로 내몰아고졸 성공 사례가 줄줄이 나오고 고졸 취업률이 7년 연속 상승세라지만 현장실습의 허술함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지난 5월 28일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모(19)군의 사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현장실습생이던 김군은 ‘2인 1조 작업’규정과는 달리 혼자 일하다 변을 당했다. 실습생들은 근로자의 기본 근무 조건인 안전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하다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생을 마감한 김군의 죽음은 현장실습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현장실습을 나간 실습생이 자살하는 사고도 있었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 실습 나간 특성화고 재학생 김모(18)군은 직장 상사와 동료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투신자살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현장실습에 나간 김군은 일이 익숙지 않아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것으로 나왔다. 이후 김군은 ‘너무 무섭다.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SNS에 남긴 후 결국 목숨을 끊었다.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현장실습생들이 겪는 사고는 이뿐만 아니다. 직장 내 성희롱, 성폭행, 임금체불 등 실습생 또는 사회 초년생들이 겪어야할 고초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취업처로 알선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항의조차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특성화고 교사는 “아이들이 현장실습이나 취업을 나간 뒤 월급이나 휴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중에서는 회사의 불합리를 참지 못해 다시 복교하는 학생들도 많다”며 “그렇다고 해서 학교측에서 업체를 상대로 강력하게 항의를 못하는 건 매년 고정적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을 채용하고 있어서다. 그런 업체에서 아이들을 채용하지 않으면 취업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교육부는 올해도 ‘고졸 취업률 7년 연속 상승’이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여기에 취업률을 높이고, 현장 중심 직업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NCS제도를 특성화고 교육과정에 전면 도입하고 내년부터 전국 공업계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도제 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졸 취업률 상승효과로 스펙 위주의 채용 문화에서 실력 위주의 지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실습생을 비롯해 고졸 취업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근로자의 안전과 보호의 의무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고졸 취업이 활성화되고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학교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학생에서 근로자로 거듭난 우리 아이들의 기본 권리를 지켜줘야 할 때다.
글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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