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연애 담화 #4. 다른 언어를 쓰는 연애

키워드로 보는 연애사(史),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연애가 어쩐지 당신의 연애와 닮아있을 수도. 매호 각기 다른 이슈로 시시콜콜한 연애담을 들어본다.
#1. 우연이 운명이 되다

파리에 갔을 때, 여행 온 사람에게 방을 빌려주는 ‘카우치 서핑’을 이용했다. 그런데 호스트였던 남자 친구가 예약을 까먹었고, 미안하다며 밥이라도 사주겠다고 만난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1년 교환학생을 했다는 것을 알고 더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파리 이곳저곳을 자전거로 다니는 데이트로 발전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전혀 못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영어로 한다. 로맨틱한 말을 영어로 들으면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저번에는 정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리포트 쓰듯 사전을 뒤졌다.
사실 한국 생활을 했더라도 문화의 차이가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전의 연애에서는 연인과 365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메시지를 읽어도 6시간, 7시간이 지난 뒤에 답장이 오기도 한다.
또 다른 언어를 쓰는 만큼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실감한다. 서로 주고받는 말을 오해하면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으로 서로의 이해를 못 했다는 신호를 정했는데, 서로의 팔목을 꼬집는 거다.
#2. 그거 오지랖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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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여자가 외국인을 사귀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 관심이라고는 말하지만, 보통은 당사자들이 불쾌감을 느낄 정도의 오지랖에 가깝다.
언젠가는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 노약자석 근처에서 앉은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다니 내릴 때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졌다. 나에 대한 비난이 섞인 말이었다.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할아버지의 말투와 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대충 짐작하는 듯했다.
문제는 할아버지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터넷만 봐도 외국인, 특히 인종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여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는 식으로 자주 성적인 농담의 타깃이 된다.
가끔 외국인인 연예인들이 일반인과 주먹 다툼을 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그 상황이 눈에 선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남자들이 괜히 시비를 거는 모습 말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역죄인 취급 받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3. 내 여자 친구는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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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사랑하면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귄 기간이 늘수록 언어의 장벽을 느끼게 됐다.
썸을 탈 때는 별말 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는데, 사귀면서 서로 소통을 해야 할 때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다툼을 할 때. 하고자 하는 말은 많은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니 서로 답답했다. 그래서 되도록 감정이 상하기 전에 미리미리 말을 하게 됐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오타가 나거나 단어를 부정확하게 말하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다. 저번에는 한참 생각에 대해 말한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생강이 싫다는 얘기 중이었다.
또 유머코드도 다른 점이 아쉽다. 여자 친구가 예전보다는 말이 늘었다고 해도 조금만 돌려서 말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대화가 돌직구다. 가끔 농담을 던졌을 때, 이해 못 한 눈치지만 애써 웃어주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중국 유머집이라도 사서 읽어야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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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인턴기자 apeac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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