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당신은 제대로 된 글을 써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요즘 ‘글쓰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얘기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개념적으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입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많은 조언들이 있습니다만, 첫 단계는 팩트(fact)를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글쓰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 팩트라는 것을 아는 것이 과업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곳이므로, 팩트만 열심히 찾아내면 그 성의만으로 A+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교수님들도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팩트를 찾아내는 것이 연구과제이기 때문에 그 팩트라는 것이 아주 소중합니다. 즉 학교 내에서는 팩트가 결과물의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하고 내가 월급을 받고 일할 때는 상황이 180도 바뀝니다. 내가 돈을 받고 콘텐츠를 팔 때는 팩트가 아니라 맥락이 더 중요합니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의 크기를 나사(NASA) 연구원은 “97억 ㎦”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고를 듣는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텍사스 크기(It's size of Texas)”뿐입니다.
그 연구원은 미궁에 빠질 번한 문제를 가까스로 제보를 받고 우주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을 움직여 소행성의 정체를 파악했기 때문에 그 팩트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내가 이런 것을 알아냈다’는 뿌듯함과 그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는 오직 ‘사이즈 오브 텍사스’만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학교와 기업의 거리입니다.
대학교 내내 A+만 받았던 학생이 회사에 갓 들어가 신기의 파워포인트 기술로 휘황찬란한 보고서를 썼는데 팀장은 “핵심이 없다. 한 장으로 줄여라”고 퇴짜를 놓습니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이렇게 잘 만든 보고서를 몰라보다니, 이건 길들이기를 위한 수순인가’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팀장·사장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보고서는 보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쓴 사람만이 아는 팩트의 나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취준생들이 쓰는 자소서가 딱 그 수준입니다. 그나마 팩트가 잘 정리되어 있는 자소서는 눈에 띕니다만,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되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자, 일단 실마리를 드렸으니, 이제부터 자소서를 제대로 쓰도록 노력해 봅시다.
아, 지금 얘기한 것은 글쓰기의 아주, 아주 기본적인 스킬입니다. 그 위로 몇 단계의 레벨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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