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정시 퇴근을 못 하는 이유


지난 호에 얘기한 ○○타이어를 배경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한 번 들려 드릴까 합니다. ○○타이어 국내영업부에 신입사원이 입사했습니다. 출근 첫 날 아침, 부장이 신입사원에게 얘기합니다. “오늘 중으로 영업 기획안을 제출하라”고요. 호기롭게 기획안을 제출합니다. 입사 전에 회사 홈페이지와 최근 기사를 보고 사전 스터디를 했으니까요.
‘고속도로 휴게소에 부스를 차리고 신제품을 소개하는 판촉 행사를 한다. 전국 ○○개 고속도로 휴게소 중 유동인구가 많은 핵심 스포트(spot) 10곳에 배치, 회사 로고가 박힌 우산 증정.’
신기의 파워포인트 솜씨를 발휘하며 화려한 기획안을 작성합니다. 혼자 뿌듯해 하며 당당하게 부장에게 제출합니다. 기획안을 쓱 본 부장은 무표정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이미 예전에 다 해본 것들이니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봐. 젊은 피인데 싱싱한 아이디어 좀 내 봐.”
15년차 부장이 신입사원이 낸 기획안을 보고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이라며 감탄할까요? 예전에 이미 다 생각해 본 것들이니 당연히 눈에 차지 않겠지요. 신입사원은 멘붕이 오기 시작합니다. 인터넷을 막 뒤집니다. 타이어 영업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으니 답이 안 나옵니다. 답답해서 담배 피러 가는 선배를 따라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 영업 아이디어 낼 만한 것 좀 없을까요?” “야, 좋은 것 있으면 우리 좀 줘 봐라. 젊으니까 아이디어 많을 거 아냐.” 그러면서 실실 웃습니다.
두 세 번째 낸 기획안도 퇴짜 맞았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새로운 기획안을 못 내고 있습니다. 오후 6시가 넘었습니다. 부장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과연 당당하게 “6시이므로 저는 퇴근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7시가 되자 부장이 슬슬 일어나 나갑니다.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고민합니다. 그렇다고 답이 갑자기 나오진 않겠지요. 밤 11시, 막차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퇴근합니다. ‘집에 가서 밤새 기획안을 써서 일찍 나와서 제출하자’라고 마음먹습니다.
밤 샌다고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습니다.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허걱’ 하며 부랴부랴 출근합니다. 회사 앞 500m, 100m, 50m, 10m…. 지옥문이 따로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신입사원 때 느낀 기분입니다.)
아침 7시 30분, 다행히 부장은 출근하지 않았네요. ‘데드라인’이 닥쳤으니 괴발개발 기획안을 써서 부장 책상 위에 놓습니다. 8시가 되니 부장이 출근하네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 회의 때 그날 할 일을 지시하네요.
왜 새로운 기획안에 아무 말이 없는 걸까요? 사실 부장도 신입사원이 대단한 아이디어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기획안을 퇴짜 놓았을까요? ‘지옥’을 경험한 그 신입사원의 눈에는 이제 타이어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장도 그런 과정을 거쳤거든요.
이상, 신입사원의 지옥 같은 하루였습니다. 정시 퇴근의 꿈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네요.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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