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대나무숲,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갑론을박 후끈


경찰이 지난 5월 22일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에 대해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결론 내린 가운데 이 사건을 두고, 각 대학들의 SNS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 모 씨는 “여성들로부터 여러 피해를 당했지만 참았는데 최근에는 일까지 못하게 되는 등 직업적으로 피해를 입어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느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진 토론이 포털사이트를 통해 성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추모 장소가 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도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의견 대립이 물리적 충돌로 번질 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에 각 대학 페이스북페이지인 ‘대나무 숲’에도 이 사건과 관련 다소 민감한 게시물이 올라오면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13만여명의 팔로워를 둔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21일 오후 올라온 “남자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당하는 게 기분나쁘고 부당하다 하시는 분들”로 시작하는 게시물에는 612개(22일 기준)의 댓글이 달렸다. 일상 대소사에 10개 남짓의 댓글이 달리는 것과는 비교되는 현상이다.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 21일 밤 게재된 “강남역에서 자기들 맘에 안 드는 피켓 들었다고 한 사람을 집단 린치한 사람들이 있다는 데에 새삼 다시 한번 놀라네요”로 시작되는 글에도 22일까지 67개의 댓글이 달렸다. 또 이 게시물 직전 올라온 비슷한 주제의 글에는 76개의 댓글이 달렸다.


숙명여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강남역 사건 관련 글에는 30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관련 게시물이 여럿 발견됐다. 숙명여대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대인 이화여자대학교는 지난해부터 대나무숲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각 대학 대나무숲 댓글들이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과 구별되는 점은 상대방에 대한 직설적인 비방 등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성인들의 공간인 만큼 피해자를 추모하는 가운데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상대방의 의견도 경청하는 성숙한 토론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대결 양상으로 치닫기 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성향을 보였다. 정유진기자 jin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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