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맥주따라 유럽 삼만리' 여대생 혼자 떠난 63일간의 비어 투어(beer tour)!

꼴Q열전 :맥주따라 유럽 삼만리여대생 혼자 떠난 63일간의 비어 투어(beer tour)!
‘자전거’, ‘유럽’, ‘맥주’, ‘여행’. 하나하나 떼 놓고 보면 뭐 하나 낭만적이지 않은 게 없는 단어들인데, 모아 놓고 보면 조금 의아하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떠난 유럽 여행’이라. 왜 맥주를 마시기 위해 유럽까지 가야하며, 굳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해야 했을까? 그것도 여대생 혼자,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최승하(홍익대 광고홍보학부 4) 씨는 지난해 8월 유럽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오직 ‘로컬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다. 그녀는 63일간 유럽의 비어벨트로 불리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9개국을 돌며 현지의 다양한 맥주를 맛봤다. 그렇게 그녀가 자전거로 달린 거리만 2500km이 넘는다.

맥주만 마시기 위해 떠난 유럽 여행
기분이 좋은 날에는 즐거워서 한 잔, 슬픈 날에는 울적해서 한잔,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위로하며 한잔. 맥주는 무한대, 소주는 2병 이상의 주량을 자랑하는 그녀는 승하 대신 ‘술하’로 불릴 정도의 주당이다. 술자리에서의 유쾌함과 사람 냄새를 좋아하는 최씨는 늘 농담처럼 ‘독일가서 맥주와 소시지를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됐을 때 독일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블로그를 보게 됐는데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이 자전거로 유럽 여행을 하는 내용이더라고요. ‘열심히 자전거를 탄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최고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죠.”자전거를 탄 뒤 시원하게 들이키는 맥주 한잔, 그것을 위해서라면 엉덩이가 부서지는 고통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해외여행 경험 無, 가진 돈 0원. 자전거도 없고 영어도 안됐지만 그녀의 용감한 혹은 무모한 유럽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 준비의 시작은 일단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 그녀는 알바비를 모아 자전거 한 대를 구입했고, 매일 눈만 뜨면 라이딩을 하며 훈련했다. 동네 자전거샵에도 매일 찾아가 주인 아저씨를 귀찮게 하며 자전거 관리 방법과 개조법 등을 배웠다. 여행을 결사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가족들 앞에서 PT도 진행했다. 생각보다 열심히 준비하는 딸의 모습에 결국 부모님은 두손 두발을 들었고, 경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조건으로 여행을 허락했다.
최씨는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시에 맥주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관련 책을 읽고 기사를 모아보고, 다양한 맥주를 시음하며 맛의 차이를 익혔다. 라거와 에일도 구분 못하고 ‘시원하고 맛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맥주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계였다. 그렇게 공부하며 꼼꼼히 만든 여행계획서를 수제맥주학술대회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상까지 받으며 스포츠 의류 등을 후원받을 수 있었다.

세계가 인정한 주당? ‘물 한잔 줄까’ 대신 ‘맥주 줄까’
유럽에 도착한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6시간 이상, 70~80km를 달렸다. 자전거를 타고 다닌 덕분에 여행 경비를 절감했고 버스나 기차를 타면 가기 힘든 도시에도 들러 로컬 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혼자 외롭게 달리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비오고 태풍이 치는 날은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탄 적도 있어요. 한 번은 번개가 바로 앞에 떨어지기도 했죠. 얼마나 무섭던지, 얼굴에 흐르는 게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후 샤워하고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였어요.”
숙소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웜샤워(Warm Shower, 전 세계 자전거 여행객들에게 현지인이 무료로 잠자리와 저녁식사를 제공해주는 것)’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맥주 여행을 하는 동양의 소녀를 유럽의 호스트들은 격하게 환영해줬다. 보통 이용객이 집에 도착하면 ‘물 한잔 줄까’ 묻는데 그녀에게는 ‘맥주 줄까’라고 물을 정도였다. 머무를 집이 없는 경우에는 캠핑장이나 공원 모퉁이에 텐트를 펴고 잠을 청했다. 대부분의 식사는 마트에서 사온 물과 빵으로 해결했다.

“영국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하는데 오후 5시가 돼버린 거예요. 길이 어두워 헤매다가 고속도로 부근으로 들어섰어요.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가 ‘이리로 가면 큰일난다’며 근처 친구집 뒤뜰에 텐트를 펼 수 있게 도와주셨죠. 그 집에 갔더니 주인 할머니께서는 뒤뜰에서 자지 말고 집에 들어오라며 방을 내주셨어요. 가자마자 수건도 건네주시고 저녁도 차려주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여행을 하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동한 적도 많아요.”
식비와 교통비, 숙박비를 아낀 그녀가 여행 자금을 투자한 것은 오직 맥주를 마실 때! 그녀는 동네 펍과 브루어리를 돌며 매일 다른 맥주를 마셨다. 유럽에서 마신 맥주만 70여가지 정도다. 그녀는 “지역마다 맥주 맛이 모두 다르다”라며 유럽 최고의 맥주로는 벨기에 맥주를 꼽았다. 도수가 높은데도 맛이 달짝지근하고 풍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벨기에는 맥주 맛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최고라는 그녀의 평이다.

△최승하 씨가 직접 그린 맥주 일러스트. 유럽에서 맛본 맥주를 일러스트로 담았다.

허벅지는 두꺼워졌지만 맥주 여행은 계속된다
63일간의 자전거 여행은 그녀에게 튼실한 허벅지와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선물했다. 물론 맥주에 대한 애정도 격하게 늘어났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양조 수업을 수강하고 국내 로컬 맥주 브루어리를 찾아다녔다. 페이스북에 유럽에서 맛본 맥주의 일러스트와 여행기를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 8월에는 맥주여행 시즌 2로 미국을 다녀올 예정이다. 3개월간 미국 시애틀부터 샌디에이고까지 자전거로 돌며 미국의 맥주를 모두 맛보고 올 계획이라고.
△최승하 씨가 직접 그린 맥주 일러스트. 유럽에서 맛본 맥주를 일러스트로 담았다.

“사람들이 ‘수입 맥주 회사에 입사하려는 것 아니냐’고 많이들 묻더라고요. 그건 아니고 제 스스로 하나의 직업군을 만들었어요. ‘맥주 콘텐츠 크리에이티브’죠. 맥주 용어를 쉽게 설명하고 사람들이 다양한 맥주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어요. ‘우리맥주 한 잔하자’라는 행사도 기획 중이에요. 사람들이 국내 맥주는 맛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맥주도 이렇게 맛있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거죠. 맥주는 차갑지만 그걸로 만들어진 인연은 따뜻하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만 맥주를 즐기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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