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뉴욕 2화] 진짜 뉴요커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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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28일 ~ 2015년 10월 05일허리케인이 온다고 했다. 분명 월요일쯤엔 여름같이 더운 순간도 있었는데, 비가 내리고 갑자기 초겨울 날씨가 왔다. 일주일 안에 4계절을 맛보는 기분이란. 그리고 앓는 일이 없는 내가 심한 감기에 걸렸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심장이 너무 쪼여와서 병원에 갔다. 미국에서 병원 가는 일은 진짜 없어야 한다고. 터무니없이 비싼 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1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하는 병원을 뉴욕에 오자마자 방문하게 된 거다. 심장이 쪼여오니까, 혹시 어린 나이에 큰 병이 걸린 건 아닌지, 미국 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 뉴욕을 맛보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돌아가야 하는 큰 병이면 정말 서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 아프던rn사람이 아프면 이렇게 엄살이 심하다. 어딘가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rn숨쉬기가 힘들다고 하니 인헨서와 약을 처방해주었다. 치료비와 약 값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미국에서는 안 아픈 게 돈 버는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꾸준히 하나만 좋아해왔다. 실패 가능성이 있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모든 것에 편식이 심한 편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책은 시나 수필만 주구장창 읽어댄다던가, 아메리카노 이외의 모든 커피는 쳐다 도보지 않는다던가, 남자친구를 4년째 만난다던가, 맥도날드에서 20년째 불고기버거 만을 돈 주고 사 먹는다거나 하는 식 말이다.
미국까지 와서 한계를 둘 필요가 있나. 이 사람들과 몸 부대끼며 살아가려면 이들이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볼 일이 아닐까 했다. 말로만 쿨 걸, 오픈 마인드가 아니라 진짜 뉴요커로 거듭나기 위해서.



몸이 한결 나아졌고, 친구들과 함께 첼시 하이라인 파크 엘 갔다. 가는 길에 한국에는 아직 안 들어온 커피계의 ‘애플’ 블루 버틀을 들러서는, 처음으로 아메리카노가 아닌 우유 섞인 콜드블루를 사들었다.
제한을 두지 않는 일이 때로는 즐길 수 있는 것을 늘려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리곤 첼시마켓에 가서 랍스타를 사들고 하이라인파크로 갔다. 하나rn둘씩, 뉴욕에 오면 해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지워가고 있다.



쇼핑이 빠질 수 없는 나의 하루에 뉴욕이 세워지고 나니 곳곳을 하루 종일 들쑤시고 다녀도 지치는 법이 없다. 한국에는 없는 브랜드들을 보러 다니는 일은 참 신난다.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황홀한 일이다.


제일 좋은 건, 여긴 아울렛에도 살 것들이 꽤 있다는 거다. 한국처럼 아예 크게 지어놓은 아울렛도 있지만, 맨해튼안에도 아울렛 매장을 따로 가진 브랜드들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처음 가장 재밌었던건 A.P.C surplus. 모든 제품을 거의 50%이상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데, 사고 싶은 게 거기 존재한다는 게 가장 신기한 일이었다. 대게 내가 쇼핑을 할 때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상이 아니면 개중에 가장 비싼 물건들이라, 아울렛을 갈 때는 무엇을 사러 가겠다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게 나의 쇼핑라이프인데, 여기선 아니다. 일단 눈에 불을 켠다. 지갑만이 얇아질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황홀한 일은, 핫한 브랜드들의 힙스터 셀러들이 내 옷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본다는건데, 칭찬에 아주 인색한 한국사람들 틈에서 버티며 살아온 나는 “I like your jacket”을 서스럼없이 뱉어대는 뉴요커들이 참 좋고 또 부럽다.
rnrnrnrnrnrnrnrnrnrnrnrnrnrnrnrn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두려운rn것과 하기 싫은 것, 그리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서는 조금 더 선명해지는 일이 좋다.
여기서 나는 그렇게 지낸다. 때론 나로, 나이고 싶은 나로, 내가rn아닌 나로 말이다.

글·사진 Chloe Park
rn 블로그 blog.naver.com/bellesongs
인스타그램 @hello__imchloernrn

기획·정리 캠퍼스잡앤조이 harim@hankyung.com칼럼연재 신청 및 문의 har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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