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이름시 작가 고석균, 그는 나에게로 와 이름시를 지어줬다

이름시가 인기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 이름 석 자가 시로 변한다는 것은 꽤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고석균(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정보사회 3)씨는 지난해부터 SNS에서 이름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게 뭔 짓이냐며 쌍욕 하던 친구들도 어느 순간 그에게 이름시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석균 씨는 난치병에 걸렸다. 그 무섭다는 ‘중2병’이었다. 괜히 센티한 척을 해보고 세상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하다하다 시까지 끼적였다. 습작노트를 만들고 하루에 한 개씩 자작시를 썼다. 병세가 깊어졌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다행이 ‘중2병’에서 완치됐고 자연히 시와도 멀어졌다.
“다시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5월이었어요. 성년의 날이 되어 후배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고민하던 중에 예전에 시를 썼던 게 생각났죠. ‘후배들 이름으로 시를 지어주자’라고 결심했어요. 그리고는 냅킨이나 쪽지에 이름시 하나씩을 써서 슬쩍 건넸죠. 의외로 시를 받은 후배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이 ‘나도 해달라’며 부탁을 했어요.”


30초에 하나 씩 완성하는 이름시, 허나 ‘날림’은 아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안의 ‘시작(詩作)’ 본능이 꿈틀거렸다. 나의 시를 이토록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는 친구들의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생일인 친구들에게 이름시를 선물했다. 예쁜 카드 이미지 위에 글을 쓸 수 있는 ‘모씨’라는 앱을 활용해 시를 쓴 뒤 저장했고, 이것을 친구들의 SNS에 전달했다. 시를 받은 친구들은 감동했고, 훈훈한 댓글이 이어졌다. ‘그럼 제대로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SNS에서 이름시 신청을 받았다. 지인들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의 신청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가 쓴 이름시가 벌써 5000개가 넘는다.
처음에는 한 개의 작품을 만드는데 10~1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5000개쯤 쓰다 보니 이제는 알파고 수준의 작문 실력을 갖게 됐다. 그는 “지금은 하루에 20~30개의 이름시를 쓰고, 30초면 한 개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짧아 대충 쓴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아니에요. 글을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 전에 사전 작업이 필요하죠. 신청자의 SNS를 보고 타임라인을 분석해 ‘이 사람의 감정 상태는 이렇구나’, ‘이런 고민이 있구나’하는 것을 파악해요. 그리고 그 결과에 맞춰 시의 내용을 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별한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면 위로하는 내용의 시를 쓰고, 연애를 시작했다면 사랑하는 감정이 넘치는 시를 쓴다. 그러다보니 시를 받은 사람들은 ‘어쩜 나에게 꼭 맞는 시’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항상 모든 시를 술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시를 모두 짓다보니, 어려운 이름도 피해갈 수가 없다. 예상치 못한 고난도의 이름을 만났을 때 그는 좌절한다.
“항상 더 좋은 말, 새로운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적거려요. 덕분에 이름시를 쓰면서 어휘력이 굉장히 많이 늘었죠. 그래도 어려운 이름은 많아요. ‘율’같은 글자가 들어간 이름은 정말 난감하죠. 그런 글자는 아무리 사전을 뒤져도 쓸 만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억지스러운 문장을 쓰게 되기도 하죠.”


그가 흔하디흔한 삼행시꾼들과 격이 다른 이유
이름시를 쓰면서 고석균 씨는 몇 가지 철칙을 정했다. 하나는 ‘시를 쓸 때는 시 쓰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까불거리는 성격이지만 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비장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탕수육으로 이름시를 지어봐라’라는 치욕스러운 요구를 받았을 때도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시를 쓸 때는 시만 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길거리에 널린 흔하디흔한 삼행시꾼들과는 격이 다르다.
절대로 ‘똑같은 시를 복붙하지 않겠다는 것’도 그의 원칙이다. 이름시 신청을 받다보면 동명이인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예은’ 이름시는 여섯 번, ‘김동현’ 이름시는 다섯 번, ‘이은영’ 이름시는 세 번이나 만들었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기 다른 내용의 시를 선물했다. 귀찮다는, 바쁘다는 핑계로 만들어 놓은 시를 ‘복붙’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그의 철칙은 ‘SNS에 떠도는 감성 글귀를 절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고석균 씨는 그 이유에 대해 “그런 글을 읽다보면 영향을 받게 되고, 좋은 표현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갖다 붙이게 돼 일부러 멀리한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고 싶다는 확고한 고집이다. 대신 그는 진짜 시인들의 좋은 시를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고석균 씨는 이름시를 직접 신청자에게 배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완성한 이름시를 SNS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프린트해 직접 전해주는 것이다. 350명 정도가 신청했고, 순서대로 신청자를 찾아가 이름시를 선물하고 있다.
“350명 모두에게 찾아갈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동대구를 다녀왔고요. 곧 순서가 돌아올 신청자 중에는 제주도에 사시는 분도 있어요. 물론 교통비는 제 사비로 내죠. 고생을 사서하는 스타일이죠?”
신청자들에게 찾아가는 교통비만 해도 상당한 부담이지만 그는 흔쾌히 주머니를 털었다. 알바로 겨우겨우 먹고사는 가난한 대학생이지만 나름의 ‘투자’라고 생각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나중에 그가 책을 내면 그들이 독자가 되어 책을 사줄 것이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시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정말 신이나요. 그 맛에 하는 거죠. ‘내 이름에 이런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감동 받아 눈물 날 것 같다’는 반응도 있고요.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 힘이나요. 지인들은 ‘돈도 안 되는 것을 왜 하냐’ ‘차라리 시를 팔아라’라는 말도 해요. 하지만 제가 그 정도로 글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닌데 굳이 팔고 싶지는 않았어요. 만약 시를 팔게 된다면 남들이 인정해줄 만큼의 실력을 쌓은 후에 하고 싶어요.”
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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