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킹콩샤워'의 추억


‘킹콩샤워’의 추억
3년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면 1990년대 중반의 대학 엠티 풍경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술자리 게임 중에 ‘자기소개 하기’ 게임이 등장합니다. 리듬에 맞춰 “아이 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라고 운을 떼면 각자 별칭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데, ‘아싸, 예쁜이’, ‘아싸, 반짝이’ 같은 이름과 함께 적당한 제스처를 댔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킹콩샤워’, ‘캡틴큐’라는 별칭인데, 신입생들에게 게임의 룰을 설명하는 선배가 예로 드는 이름 중에 이 두 개가 늘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아무 이름이나 대면 되기에 굳이 그 별칭을 댈 필요가 없음에도, 매년 게임 때마다 이 두 이름이 등장해 십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사고의 틀은 한 번 형성되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독도물개’, ‘금성천사’, ‘팬더눈알’ 등 특이한 이름을 대어도 되는데, ‘킹콩샤워’가 나와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 말입니다. 아마 일 년에 한 두 번 하는 게임이라 평소 별 생각이 없었고, 특이하고 재밌는 이름을 대야 한다는 게임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도구라서 그랬을 것입니다.
한 번 형성된 사고의 틀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편합니다. 정해진 모범답안 중에서 찾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새로운 답안을 찾으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기존의 것보다 나은 답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최근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들은 ‘존경하는 인물’ ‘역사적 사건’ 같은 것을 물어봅니다. 그런데 취준생들은 ‘존경하는 인물’은 위인전에서 찾고, ‘역사적 사건’은 교과서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갖춘 사람입니다. 근면·성실·정직·정의·박애는 안 되냐구요? 좋은 덕목입니다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치러야 하는 기업에게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고안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해진 일을 묵묵히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 말입니다.
따라서 존경하는 인물과 역사적 사건은 창조와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슈바이처나 마더 테레사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지만, 정말로 그들의 헌신을 본받고 싶다면 취업 대신 봉사자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인물로 마크 저커버그는 어떤가요? 역사적 사건으로 컴퓨터의 발명 어떨까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도 있네요.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람보르기니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를 댈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의 달 착륙도 있고, 원자력의 발명도 있네요.
학교를 졸업한 지 15년이 지나고 보니, 교과서 속의 지식은 한 줌도 되지 않고, 현실의 지식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학교 우등생이 반드시 사회 우등생이 되리란 보장도 없고, 학교 열등생이 사회 열등생이 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스펙이 좋지 않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종국 캠퍼스 잡앤조이 취재편집부장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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