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보석은 마음의 보석 김종목 보석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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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함께 우리나라 귀금속 1번지로 통하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가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금은세공 명장 ▲한국주얼리평가사 ▲일본진주평가사 ▲(사)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 회장 ▲(재)서울주얼리진흥재단 이사장 등 간략한 직함만 들어도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보석 세공 기술로 ▲석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국무총리표창 ▲노동부장관표창까지 휩쓴 비결도 궁금하다. 강원도 양양에서 상경한 17세 소년이 ‘인내’, ‘끈기’, ‘노력’으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보석 명장이 되기까지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글 정유진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
김종목 대한민국 귀금속 세공 명장은 대한민국 보석 산업의 산 증인이다. 그는 나이 17세 때 강원도 양양에서 서울로 올라와 명동에 위치한 보석상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보석 세공 한 우물만 파 왔다. 김 명장은 변변한 기술도 없고, 요즘 말하는 스펙이라는 소위 ‘가방 끈’마저 짧아 취업을 고민하던 중 누나의 권유로 명동에 있는 보석상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회 초년병 시절의 노력과 끈기가 신뢰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김 명장은 “남보다 2~3시간 일찍 가게에 나와서 청소를 해야 했고, 저녁 늦게까지 보석을 세공하고 디자인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냈다.” 며 “나중에는 사장이 가게 열쇠를 맡길 만큼 신뢰를 쌓았다.”고 추억했다. 당시 보석상 사장에게 인정을 받으며 일을 배운 김 명장은 명동에서 창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을만한 나이인 25세에 창업에 성공한 그는 명장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1988년 은메달, 1990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명장 1세대’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30대 초반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기적 같은 성과를 낸 것이다.
김 명장은 “요즘 소위 말하는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일찌감치 명장이 됐고, 이후 대한민국 쥬얼리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김 명장은 “1991년부터 명장선발 절차가 바뀌었고, 현재 1차 서류전형과 2차 작업 현장심사를 거친다.”며 “각 산업현장에 장기간 종사한 자로서 투철한 장인정신과 해당분야 최고의 기술수준을 갖춘 자 중 2년에 1번씩 명장심사를 거쳐 노동부장관이 선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명장’의 비결에 대해 그는 “산을 오를 때 정상만 보고 올라가는 사람은 결국 지치게 되거나 앞에 놓여져 있는 돌부리 또는 나뭇가지를 보지 못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 며 “인내하고 끈기를 갖고 혼신을 다해 올라간다면 정상은 내 눈앞에 펼쳐지게 돼 있다.”고 답했다. 김 명장은 까르띠에, 스왈로브스키, 티파니 등 해외에서는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쥬얼리 산업을 이끌어 왔지만 국내 쥬얼리 산업은 침체 돼 있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국제 정세가 불안할 경우 모든 분야가 불경기를 맞게 되며 주식, 부동산, 환율 등 모든 투자 대상이 하락 하지만 국제적 화폐기능을 하는 귀금속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다.”며 “귀금속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비되어 없어지는 고급 자동차와 같은 사치소비품이 아니며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그 가치가 오르는 투자 상품으로서 귀금속 산업 선진국인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서 보석업자들이 상위 10% 부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장은 “그동안 쥬얼리를 하나의 산업이 아닌 사치품으로 인식한 탓에 규제일변도의 정책으로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왔다.” 며 “하지만 지난 2015년 국회와 정부가 쥬얼리에 적용된 일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개선을 이뤘다.”고 말하면서, 머지않아 대한민국에서도 까르띠에 못지않은 명품 보석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청년보다 어린 소년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보석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된 김종목 명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도 따뜻한 한마디를 건넸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직으로 빨리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적성을 찾아 남보다 시간을 더 투자하고 더 노력을 해야 하며, 때론 하는 일에 미쳐서 매달려야 한다.”며 “금전적인 잣대로만 일을 평가하지 말고 좋아서 하는 일을 좇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은 1974년 한 달 학원비를 2만원씩 내고 6개월 다닌 후 겨우 취업을 해 한달 급여 2000원을 받았지만 6년이 지난 1980년 당시에는 20대 초중반에 대기업 차장급 월급 이상을 받게 된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만큼 이룰 수 있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음이 최고의 보석’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보석 중 최고의 보석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떠한 열에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희귀한 루비를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보석을 다루는 마음이 보석보다도 아름다워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마음이 최고의 보석이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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