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울보에서 에세이 작가된 뮤직큐레이터 김지원


사진 = 김지원 제공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는 단어들이 있다. 의리, 신뢰, 도전, 외유내강 등등.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단어들을 우리는 삶의 수많은 단상들 속에서 그 실체를 배워간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외유내강’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뮤직큐레이터 겸 에세이 작가 김지원(30)씨다. 아직도 소녀 같은 여린 외모 속에 숨겨진 단단하고 거대한 그녀의 열정스토리를 엿들어 봤다.
‘실패의 포트폴리오’로 얻은 첫 직업 ‘광고기획자’지원 씨는 자신을 울보라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이 친구들을 혼내는 모습만 보고도 펑펑 울었고, 20대에 접어들어서는 5년간 매일같이 사랑에 울고 사람에 울었다. 그렇다고 속 시원히 고민거리를 남에게 털어놓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래서 울었다.
다행히 그가 우는 것 말고 유일하게 고독과 슬픔을 정화할 수 있는 통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글을 쓰는 것. 눈물대신 글씨로 찍어낸 그녀의 감성은 온라인을 통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 살지 몰랐어요. 그래서 대학도 제 적성과는 별개로 수능점수에 맞춰 학교와 학과(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어요. 입학후 답답함에 자퇴도 많이 생각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음악을 듣고, 글을 썼어요. 그 과정에서 대학교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작곡도 하기 시작했고, 막연하게나마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어요. 어떤 특정분야의 예술가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제 내면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 위로하고 싶었죠. 제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동력입니다.”
남들은 취업에만 골몰할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그는 교내 밴드를 결성했다. 키보드와 서브보컬을 담당하면서 틈틈이 작곡 작업도 병행했다. 이렇게 습작한 지원 씨의 노래는 주요 포털 사이트에 3곡이나 정식 등록돼 있을 정도.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노래들도 수 십 곡이나 된다.
이후 2011년 그는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 흔한 외국어 점수도, 화려한 인턴경력도, 관련 학과도 전공하지 못했던 지원 씨가 광고회사에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겉보기엔 내성적이고 여리기만 할 것 같은 그가 꿈을 위해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사진 = 김지원 제공

“졸업 당시 제가 가진 스펙이라곤 달랑 학사졸업장 하나였어요. 광고회사 취업을 꿈꾸면서 각종 공모전에도 나가봤지만 번번이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전략으로 내민 것이 ‘실패의 기록’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채용면접 당시 다른 지원자들은 화려한 수상경력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죠. 저는 그동안 제가 참여했던 공모전이나 프로젝트 경력을 줄줄이 발표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기대하신 것과 달리 이것들은 다 제가 실패한 공모전입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적어도 제가 왜 탈락했는지는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실패를 통해 배운 자산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말했죠. 면접관들이 제 담대한 태도와 발상의 전환이 맘에 드셨나 봐요.”
책 내려고 서점서 출판사 200개 이메일 수집그는 2년 간 광고기획을 담당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일을 하고 싶던 지원 씨에게 광고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13년 12월 퇴직한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현재 일터에서 뮤직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뮤직큐레이터는 기업이미지를 컨설팅하고, 그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선정해주는 일이다. 가령, 스타벅스 매장 내에서 흐르는 음악들이 바로 뮤직큐레이터들의 손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대학시절 밴드생활과 작곡일, 그리고 2년간의 광고기획 직무를 거친 지원 씨에게는 안성맞춤 직업인 셈.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맘 속 허기를 느꼈다. 좀 더 ‘김지원’스러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다.
“진짜 제 얘기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어 온라인 공간을 활용했어요. 2014년부터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차근차근 일상 속 감성이야기를 썼어요. 물론, 글을 쓰는 만큼 홍보도 열심히 했죠. 아무리 잘 쓴 글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쉽게 묻혀 버리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많게는 수백 개의 블로그를 방문해, 일일이 그들의 글에 댓글을 달거나 이웃을 맺었어요. 그런 노력 끝에 ‘도전 포스트 공모전’에서 제 포스트가 ‘잊혀지지 않는 잔상’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글에 대한 수많은 피드백이 왔어요. 정말 행복했고,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포스트 글들을 오프라인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서점들을 돌면서 책 뒤에 적힌 출판사 메일을 200개 이상 저장해 나갔다. 그리고 원고 80여 편과 출간기획서가 담긴 문서를 첨부해 200곳이 넘는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사진 = 김지원 제공

당시 그의 노력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출판업계에서 공공연히 지원 씨의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얼핏 무모해 보였던 그의 도전은 결국 출판사 10여 곳의 러브콜로 이어져 지난해 첫 에세이집 ‘오늘, 눈물 나게 좋은 순간’이 출간됐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그의 큰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외유내강 지원 씨의 꿈은 이제부터라고 한다.
“책을 쓰는 것 말고도 저는 다양한 경로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요. 실제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저처럼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컨설팅 강의도 하고 있고, 고민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에서 ‘젤리언니’라는 필명으로 사람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늘 의외라는 말을 해요. 겉보기엔 조용하고 마냥 소극적일 것만 같지만 막상 알고 보면 반대의 면이 많대요. 사실 어느 쪽이든 단적으로 저를 규정지을 순 없어요. 인생도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그 점을 인정하면서 앞으로도 자유롭게 저만의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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