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당일 여행] 6 “바람도 쉬어가는 충북 옥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 도입부다. 시로도 읽고 가곡으로도 들어 누구에게나 매우 친숙한 문장이다. 그렇다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정지용 시인이 ‘꿈엔들 차마 잊지 못하던’ 그 곳은 어디일까? 바로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이다. 흔히 “충청북도까지 당일치기로 어떻게 다녀오나? 그것도 3만원의 저예산으로…”라는 걱정부터 앞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캠퍼스잡앤조이> 독자라면 과감히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서보자. 충북 옥천까지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야한다. 고속버스는 하루에 4~5 차례 밖에 다니지 않으므로 ‘비추’다. 대전으로 갔다가 시외버스를 갈아타는 방법이 있는데 교통비도 많이 들고 번거로워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약속장소를 서울역으로 잡고 경부선 무궁화호를 타면 된다. 평일에는 좌석이 있지만 주말에는 좌석 구하기가 힘들다. 만약 입석을 탔다면 카페 칸으로 이동해 미리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카페칸에 외국인이 가득하다고 놀라지 않아도 된다. 평택에서 대부분 내리는 주한미군들이다. 교통비는 좌석은 12,000원 정도, 입석은 단돈 10,000원이다. 왕복 24,000원을 썼으니 3만원 예산에서 6,000원밖에 남지 않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옥천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곳이며, 점심 값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궁화호를 타면 옥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미리 기차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약속을 정하는 것이 좋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영등포-평택-천안-대전 등을 거친다. 각 역에 정차해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무궁화호 여행은 광속도로 역을 지나쳐 버리는 KTX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옥천역에 도착하면 우선 금강유원지로 향해보자. 옥천역 인근 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 버스를 타면 된다. 금강유원지에서 강을 따라 걷다보면 왜 옥천이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인지 알 수 있다. 대자연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마저 든다. 느릿하게 구부정 흐르는 금강은 ‘충청의 젖줄’이라고도 불린다. 금강을 감상하고 나서는 오늘의 메인 관광지인 ‘정지용 시인 생가’를 방문하자. 옥천역에서 천천히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하다. 가는 길에 마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 곳이 차마 꿈엔들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갈 것이다.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를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가 대표작이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는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집과 공부방 등이 있다. 또 정지용 박물관도 있어서 근대 문학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다. 정지용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마네킹과 기념촬영도 할 수 있어서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만 접했던 그의 일생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이런 위대한 시인이 6.25 때 실종돼 생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생가 인근에는 향수 마을이 있다. 집집마다 벽과 담장을 알록달록 칠해놓고 정지용 시인의 시를 새겨놓았다. 다시 옥천역으로 돌아오는데 마주한 시골 학교는 정감이 넘쳐났다. 정신없이 정지용 문학세계에 빠져있다 보니 잊은 게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금강과 옥천을 구경하면서 ‘식(食)’을 깜빡했다. 오래 걷다보면 허기질 법도 한데 말이다. 요란하게 울리는 배꼽시계를 달래고자 하는데 차비를 너무 많이 써서 예산이 부족하다. 뭔가 옥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를 먹고 싶은데 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옥천에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5,000원으로 즐길 수 있는 옥천만의 별미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전국구 맛집’이다. 바로 옥천군의 자랑 ‘물쫄면’이다. 물쫄면은 옥천군 ‘ㅍ’ 식당에서 판다. 국수 면발 대신 쫄면을 사용해 엄청난 내공의 맛을 자랑한다. 쫄면이 싫은 사람은 단돈 3,000원에 2줄을 썰어서 내놓는 김밥을 시키면 된다. 김밥 또한 물쫄면 못지 않은 별미다.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을 보니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옥천 여행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이 느림의 고장에 개발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세종시 및 대전시와 가까운 탓에 여기저기서 부동산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다. “바람도 쉬어가는 옥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진짜 옥천”을 보려면 서둘러야 할 듯하다.
정유진기자 jinjin@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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