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응팔' 헬조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응팔이 남긴 것은


사진 = tvN '응답하라 1988'

지난해 11월부터 폭발적인 인기몰이 중인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오는 16일 대망의 막을 내린다. 사실, 제작초기 만해도 응팔의 흥행여부는 마냥 낙관적이지 못했다. 파격적인 신예 캐스팅에 대한 우려와 전작에 이어 또다시 여자주인공(덕선)의 ‘남편 찾기’ 틀을 이어가면서 자칫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된 것.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응팔은 국내 캐이블 채널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연이어 갱신하면서 ‘응팔 신드롬’으로까지 확산됐다.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출연자들은 모두 대세배우가 됐고, PPL(간접광고)로 등장한 제품들의 매출도 급증했다. 뿐만 아니다. 극의 흐름에 따라 적절히 배치됐던 배경음악은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차트 역주행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폭발적인 인기로 인한 기이한 부작용도 속출했다. 무엇보다 종영까지 2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덕선의 남편정체가 공개되지 않자 이를 두고 각종 스포가 온라인 공간을 오염시킨 것. 심지어 일부 스포내용 들이 실제 드라마 장면에서 등장하면서 제작진 차원에서도 이례적으로 ‘법적 조치 카드’까지 꺼내들기도 하는 등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에게 응팔은 어떤 의미를 남겼고, 무엇에 응답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청년들 상당수가 응팔이 지닌 따뜻한 가족애와 이웃의 정, 취업전쟁보다 진짜 자신의 꿈과 사랑을 나눴던 아날로그 시대에 열광했다. 특히, ‘헬조선’ ‘N포 세대’로까지 비관되는 현재 청년들에게는 이런 감성들이 위안이 된 것으로 보인다.
독어독문과를 전공하는 김모씨(25)는 “응팔을 보면서 지금은 사라진 공동체 문화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동경을 느낀다”면서 “그나마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동네 이웃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문화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러면서 “어쩌면 나중에 ‘응답하라 2015’를 낸다면 응팔처럼 추억을 되새길 인간미 넘치는 소재거리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라며 “점점 더 삭막해 지는 경쟁사회 속에서 응팔은 추억 속에 간직했던 소중한 공동체의 의미를 깨닫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국문학과 학생 박모씨(24)도 “각박하기만 한 취업전쟁 속에 응팔은 잊고 있던 가족과 이웃, 친구들의 우정을 느끼게 해준 힐링제”였다면서 “예전 시리즈들이 보다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응팔은 사람냄새가 물씬 났다.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성공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 위로들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사실 요즘 드라마들 대부분이 그저 싸우고, 경쟁하고, 복수하는 자극적 소재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응팔은 그런 말초적인 내용들 보다는 사람들 간의 포근한 이야기를 소재로 그 속에 우정과 사랑 등 낭만적 판타지가 담겨 있다”고 15일 평했다.
그는 또 “여기에 극중에서 나오는 골목풍경이나 아날로그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노래, 영화들이 청년들의 풋풋한 과거 꿈과 추억을 계속 자극하면서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위안을 받게 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응팔 외에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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