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디딤돌’을 향한 곱지않은 시선

고용디딤돌, 삼성·현대차·SK 등 올 한해 2000명 선발대기업서 직무교육 후 협력사에서 실무 경험까지인턴을 위한 ‘인턴 디딤돌’이라는 지적도


‘고용디딤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고용디딤돌은 정부가 청년구직자에게 직무능력 향상을 통해 취업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첫 등장은 지난 7월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등 6개 정부부처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대기업 오너들이 한데 모인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 발표현장에서였다. 두 달 뒤 정부는 이 프로그램에 418억 원을 배정하고 향후 청년 취업난을 극복하는 데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내세웠다.
하지만 최근, 실수요자인 구직자들 사이에서 고용디딤돌이 인턴을 위한 말 그대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규직 전환 보장이 없어 지원하기 꺼려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인턴을 위한 인턴?
지난 10월 말, 카카오를 시작으로 SK, 삼성 등 대기업이 줄줄이 고용디딤돌 첫 지원자를 선발했다. 현대자동차도 21일까지 지원서를 받는다. 채용 규모는 현대차 400명, 삼성 500명, SK 1000명에 인원수를 공개하지 않은 카카오를 포함하면 약 2천명이다.
이 외에 롯데, KT, GS, 두산, 동부, 현대중공업, LG 등 7개 대기업과 한전, 중부발전, 남동발전, 마사회, JDC, 석유공사, 한전원자력연료 등 7개 공공기관도 이르면 내년 초 합류한다.

김창근 SUPEX추구협의회 의장 등 SK그룹 경영진과 협력사 대표들은 5일 서울 SK서린빌딩에서 청년실업 및 중소기업 구인난 해결을 위한 'SK 고용디딤돌 MOU 협약식을 갖고 2년간 총 2만 4천명의 청연일자리 창출계획을 발표했다.김제박 솔빛아이텍 대표(앞줄 왼쪽부터) 임종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 박광수 이노비즈협회 회장 김의장 송달순 메인테크플랜트 대표 이준원 네이블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민병덕 대전상공회의소 사무국장 김시원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 사무국장 등 참석자들이 협약서에 서명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5.8.5


프로그램은 크게 대기업 및 공공기관 직무교육(3개월)과 협력업체 인턴십(3개월)으로 나뉜다. 인턴십 후 협력업체 및 벤처기업에 취업되는 경우도 있다. 이곳에서 3년 이상 근무할 경우에는 대기업 이직도 가능하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중 직무교육을 두고 협력사 인턴을 위한 또 다른 인턴과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기업 측은 “이 기간, 대기업의 교육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을 수 있어 도움 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구직자들은 “결국 최종 목적지는 대기업이 아닌 협력사 인턴이 아니냐”며 맞서고 있다.
정규직 전환 불확실… 일반 중소기업 입사와 별 차이 없어
인턴 후 정규직 채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각 기업은 인턴십 후 경우에 따라 정규직 전환도 된다고 가능성만 열어둘 뿐 실제 책임을 지겠다는 확언은 없다.



특히 삼성그룹은 아예 정규직 혜택이 없다며 사전에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 놓은 상태다. 현대차그룹도 ‘프로그램 수료자와 협력사가 상호 희망 시에는 채용으로 연계된다’고 한 발 뺀 상태다.
인턴 근무지인 협력사의 근무 여건이 불확실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기업의 협력사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입사 후의 연봉체계나 복리후생, 발전 가능성 등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
최근 모집 중인 현대차그룹 고용디딤돌 지원을 앞두고 있다는 구직자 A씨는 “청년들이 취업을 늦게 하는 건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봉이나 복지가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용디딤돌이 그런 의문점을 해소해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고용디딤돌을 통하는 대신 직접 기업에 이력서를 넣자는 움직임도 나온다. 일반 중소기업에서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굳이 높은 경쟁률을 뚫어가면서까지 고용디딤돌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 등 협력사 채용박람회 이미 진행 중… 진정성부터 마련해야
대학이나 취업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정부에 떠밀려 억지로 정책을 내놓느라 진정성이 결여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다보니, 결국 구직자들만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기업들은 정부 시책에 ‘울며 겨자먹기’로 움직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NCS다. 고용노동부가 청년취업난을 해결하겠다며 NCS 도입계획을 발표하자 여기에 박자를 맞춰야 하는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들은 부랴부랴 새 표준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실제로 정부가 일부 기관에 NCS 활용을 적극 권고한 직후,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에게 NCS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자 이 담당자는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른다. 정부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삼성그룹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5년 삼성 협력사 채용 한마당’을 개최해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올해로 4번째인 이번 행사는 호텔신라, 제일기획 등 서비스업종 계열사까지 참여, 총 12개 삼성계열사의 200여개 협력사가 현장 채용을 실시했다./김범준기자bjk07@hankyung.com 2015.11.23.


또 기존에 삼성과 현대차가 연 1회 대규모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나 고용노동부가 중소기업 채용을 장려하기 위해 운영하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과 겹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성과 현대차는 2012년부터 연 1회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열고 구인구직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있다. SK그룹도 2013년부터 울산에서 비슷한 형태의 박람회를 열고 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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