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작품인가요? 졸업작품에 우는 학생들

'누구를 위한 작품인가요? 졸업작품에 우는 학생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준비해야 할 것은 산더미다. 졸업 요건 충족하기부터 학점·어학성적 등 취업을 위한 각종 스펙 마련까지. 여기에 '졸업작품'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하는 대학생도 있다. 졸업작품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졸업작품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N수'를 하기도 한다.

부담스럽기만 한 졸업작품 제작비

올해 서울 소재 미대를 졸업한 A씨는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졸업전시에 제출할 작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일부 도움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부족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죄송해 작업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뿐만 아니다.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많다. 졸업작품 제작에 많은 돈이 들다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졸업작품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돈을 모아놓으려고 한다.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면 졸업작품 작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구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는 B씨는 여름방학 동안 졸업작품을 촬영했다. 졸업작품 촬영에 모두 300만 원을 지출했다.
"처음에 예산을 150만 원으로 잡았다. 학교 장비를 빌려 쓸 계획이었으나 카메라는 고장 나 있었고 조명도 빌리지 못했다. 결국 외부 업체에서 장비를 빌려야 했다. 촬영이 끝나고 계산해보니 졸업작품 제작비로 모두 300만 원이 지출됐다." 지난 2월 무용학과를 졸업한 C씨 역시 졸업작품을 위해 상당한 액수를 지출했다. 졸업작품 발표회에 입을 의상을 맞추는 데만 120만원이 들었다. 발표회 당일에는 분장비로 8만 원을 썼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졸업작품발표회가 끝나면 학생들이 전공교수에게 선물할 꽃바구니와 돈봉투를 준비한다. 명목상으로는 감사의 표시지만, 사실상 의무나 다름없다. 꽃바구니와 돈봉투를 준비하기 위해 졸업공연 무대에 섰던 학생들에게 반강제로 돈을 걷는다. 이걸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과학생회 학생들이 교수에게 욕을 먹는다." 탈 많은 졸업작품 심사, 졸업작품 'N수'도

그나마 졸업작품 심사를 통과한 학생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몇몇 학생들은 아예 심사를 받지 못하거나 심사에 떨어져 발을 굴러야 한다. 앞서 말한 B씨는 졸업작품을 완성했지만, 심사 당일 학과 측으로부터 졸업작품 심사를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도교수 없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이유였다. 무사히 졸업작품 심사에 나가더라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심사에서 낙방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졸업작품 심사에 떨어진 학생은 다음 심사 때 졸업작품을 다시 제출해야 한다. 서울의 한 국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D씨는 "졸업작품 3수생까지 보았다. 졸업작품 제작에 수백 만 원이나 들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졸업작품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본 심사를 진행한다. 이때 지도교수 외에 다른 교수들의 점수를 합산해 기준에 미달하면 심사에서 떨어진다. 졸업작품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예비심사부터 다시 봐야 하고, 졸업작품도 다시 제작해야 한다." D씨는 현재의 졸업작품 심사제도를 "학생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본심사 전에 여러 번의 중간심사 과정을 거친다. 졸업전시를 하기 전에 교수가 졸업작품을 평가할 기회는 충분하다. 돈을 들여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까지 마쳤는데 낙방시키는 건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행동으로밖에 안 보인다." 졸업작품 제작할 시간이 없어요

졸업을 앞둔 '막학기'에는 취업준비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는데, 졸업작품까지 제작하려니 시간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 공대생들의 경우 온라인에서 졸업작품을 구입해 제출하는 학생도 있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는 졸업작품 대행업체의 광고나 졸업작품을 판매한다는 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졸업작품의 가격대는 25만~7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E씨는 "졸업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취업준비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졸업작품까지 하려니 벅찬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의 기대치도 충족해야 해 성과에 대한 압박도 있다"고 덧붙였다. 졸업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문턱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대학생들에게 졸업작품은 또 하나의 짐이다. 현재의 졸업작품제도와 관련해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의 B씨는 교환학생이나 인턴 때문에 ‘엇학기’로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사제도를 개편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엇학기로 학교를 다니면 전산 상으로 졸업작품 과목 수강신청이 불가하다. 졸업작품을 수강하려면 청강 형식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청강은 학점이 인정되지 않아 학점을 채우려면 다른 과목을 더 수강해야 한다. 학점이 인정되는 건 15학점뿐인데, 실제로는 18학점을 듣는 셈이다." D씨는 "졸업작품전시회가 우리만의 행사가 되지 않도록 학교 측에서 노력했으면 좋겠다"며 "바이어나 기업 관계자를 초청하는 등 학생들의 진로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상 전공 B씨의 기막힌 사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는 B씨. 300만 원이나 들여 졸업작품을 완성했지만, 심사 당일 학과 측으로부터 심사를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우리 과는 1학기에 '졸업작품 1', 2학기에 '졸업작품 2' 과목을 개설한다. 졸업작품 심사는 1학기에 작품을 만들기 전 작품계획을 평가하는 예비심사와, 2학기에 완성된 작품을 심사하는 본심사로 나뉜다." B씨는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을 갈 계획이어서 3학년 2학기에 '졸업작품 2'를 수강한 것이 화근이 됐다."올해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을 갔다 돌아와 여름방학 동안 졸업작품을 촬영했다. 2학기에 졸업작품 과목을 수강하려 했지만, 이미 '졸업작품 2'를 수강했기 때문에 전산 상으로는 수강신청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학과 사무실에 문의했다. 과 사무실에서는 '졸업작품 1'과 '졸업작품 2' 두 과목을 모두 듣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졸업작품 2'를 들으려면 청강하라기에 안 들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심사 당일 지도교수가 없으면 심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B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학과 측에서는 '여름방학 때 작품을 촬영하면서 교수와 상의하거나 2학기에 졸업작품 수업을 청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사항을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학과 측은 B씨에게 "졸업작품을 다시 촬영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B씨는 불만이 많았지만 혼자 가슴을 앓을 뿐이다.
"졸업작품 제작 관련 사항을 제대로 안내해주지 않은 데다 심사 당일 일방적으로 통보받아 너무 화가 난다. 한 사람의 졸업여부가 걸린 중요한 사항임에도 학과에서 졸업작품 제작과 관련해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찾아볼 수 없다."

글 강진주 인턴기자 jinjuk92@hankyung.com
온라인 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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