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학식 먹을래 11화. ″마카롱 먹으러 서울 왔어요" 진주 시골쥐의 서울상경기

숭실대학교. 베어드홀 옆 건물로 들어가 계속 걸었다.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갔더니 어느새 학생식당 도착. 학생식당이라고 하기에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한편에 들어선 카페. 그리고 부담스러운 메뉴와 가격. 찾는 학생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있긴 있었다.
아마도 딱딱한 의자 대신 놓여진 푹신한 소파와 별도의 노트북 전용석, 여기저기 꽂을 수 있는 콘센트 덕이 아닐까?
어쨌든 오늘은 ‘최고가’, ‘럭셔리 한 끼’ 먹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l 숭실대 ‘푸드코트’ 쇠고기쌀국수와 빠네파스타(각 6,500원 7,0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학식이 백화점 푸드코트 수준이네?”
“맛있겠죠?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 ‘달다구리’ 찾아 서울로 상경 ]
한 번은 들어본 이솝우화 <시골쥐 서울쥐>. 시골쥐가 서울에 놀러 와서 먹을 것이 많은 서울쥐를 부러워해 서울로 향한다.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 초코 브라운톤으로 이제 막 염색한 긴 생머리, 새초롬하게 자른 일자 앞머리, 밝은 베이지 톤 트렌치코트 차림을 한 마카롱(*경남 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달달한 마카롱 먹으러 서울로 대학까지 오게 된 여대생)양은 사실 서울쥐가 부러워 서울로 상경한 한 시골쥐였다.
“진주에서 자랐어요. 버거킹도 없고 영화관도 두 개뿐이고 스타벅스도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상대 앞에 처음 생겼어요. 제가 단 걸 엄청 좋아하는데 그때 먹은 마카롱 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
“진짜 단 거 먹으러 서울로 왔어?”
“사실 고 3 때까지 별생각이 없었는데 한 날은 답답한 거예요. 고 3이라 스트레스는 받는데 이 작은 동네에서 갈 곳도 즐길 것도 없더라고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자율학습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만 썼어요.”
“수능은 잘 쳤어?”
“하하하. 수시로 왔어요. 인천외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외국어 특기자 전형 그런 게 있다고 토익 공부하라고 고3 때 귀띔해줬어요. 진짜 늦게 시작했는데 ‘서울’, ‘서울’ 외치면서 영어만 팠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골쥐 마카롱양은 서울쥐가 되었다.
[ ‘빡센’ 광고대행사 인턴 ]
입학하자마자 케이크와 초콜릿, 마카롱뿐 아니라 맛 집은 모두 섭렵했다. 그렇게 일 학년이 끝났다. 이 학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언론홍보학과에 재학 중인 마카롱 양은 무작정 인턴 자리를 찾아 나섰다.
“먹고 놀다 지쳐서 2학년 때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2학년 2학기 끝나고 작은 홍보대행사에서 1달 일했어요. 더 하고 싶었는데 오래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그만뒀어요. 그다음에 그 일이 끝날 때쯤 3대 광고대행사 중 1곳에 지원했어요. 면접은 봤는데 떨어졌어요. 근데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합격자가 포기했나 봐요. 덕분에 6개월 인턴을 하게 됐어요.”
“스물두 살에 인턴이었으면 거의 막내였겠네?”
“막내였어요. 다른 인턴 분들은 평균이 스물여섯? 이었던 것 같아요”
“3대 광고 대행사면 어마어마하게 바빴을 것 같은데?”
“장난 아니었어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너무 바쁘니까. 30분 만에 PPT 만들다 보니 발퀄(최악의 퀄리티)나오고. 팀장님이 ‘누끼 좀 따줘.’ 이러면 ‘누끼가 뭐예요?’ 하고 혼나고. 참신한 아이디어 내라는 데 숨 쉴 시간도 없고.... 제가 들어간 팀이 마침 신제품 프로모션 중이어서 제일 바쁜 팀인 거예요. 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광고 심의 올리고, 여기저기 퀵 보내다 보면 6시는 그냥 넘어요.”
“야근 삘 인데?”
“인턴이었는데 기본 퇴근시간이 8~9시? 평소에 7시 넘어도 아무도 퇴근을 안 하세요. 그러다가 7시 30분쯤 되면 밥 먹으러 가자고. 그날은 100% 야근이죠. 그리고 거의 매일 야근하다 보니까 직원분들이랑 안 친해질 수가 없어요. 지금도 자주 연락하긴 하는데 맨날 저보고 공무원 시험 치래요. 월급 시급으로 나누면 최저시급도 안 받는다고 하시면서…하하하”
그렇게 시골쥐 마카롱양이 서울쥐가 되어가는 건가 싶었다.
[ ‘노잼’ 서울살이 ]
서울살이 4년차. 일 년의 휴학과 두 번의 광고홍보대행사 인턴, 두 번의 연애. 마카롱 양의 서울생활 전적이다. 스물, 스물한 살 때는 학원 간다는 핑계로 방학 내내 서울에 있었다. 지금은 방학만 되면 부모님 계신 부산으로 내려가서 두 달 꽉꽉 채우고 올라온다. 올 추석에는 일주일 넘게 부모님 곁에 있었다. 서울에 올라 오기가 싫었다.
“저는 원래 홍보 일 해보고 싶었는데 해보니까 정말 힘들어서 뭘 해먹고 살아야 되나 싶더라고요. 그때 배우고 같이 일했던 분들한테는 너무 감사한데 막상 또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으- 너무 고민돼요”
“서울쥐로 남고 싶진 않아?”
“워낙 작은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서울에 살면 즐길 것도 누릴 것도 많아서 좋은 점이 더 많을 줄 알았어요.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쉽게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근데 남들보다 일찍 경험을 한 탓인지 취업 준비 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것 같아요. 서울에 연고도 없는데 앞으로 혼자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동기들은 마지막 학기라 다들 취업 준비 하는지 거의 못 봐요. 소꿉친구도 서울로 대학 와서 일주일에 하루는 꼭 같이 자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미국에 어학연수 가서 매일 밤 보이스톡 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고.”

[ ‘할부지’ 품 찾아 부산으로 하산 ]
진주에 줄곧 살던 마카롱양 가족은 몇 년 전에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방학 내내 부산에 다녀온마카롱 양은 진주와 다르게 부산은 크고 먹거리도 많다고. 홍대에서 유행하는 가게는 6개월 안에 부산에도 프랜차이즈가 생길 정도로 빠르다고. 그래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부산에 사시는데 제가 간다고 하면 톡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보내주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세요. 손녀딸이 길 못 찾을까 봐서요. 이 복잡한 서울에서 4년을 지하철 타고 다녔는데 말이죠.”
“할아버지 눈에는 마냥 어린 손녀딸이니까?”
“그렇겠죠? 이상한 건 그런 챙김, 보살핌이 너무 그립다는 거예요. 다시 시골쥐 되고 싶은 저, 이상한 건가요?”

처음에 하던 이솝우화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서울쥐가 부러워 올라온 시골쥐는 음식을 먹으려 할 때마다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도망 다니기 바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만 곯게 된다. 결국 “맛있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여기보다, 초라하더라도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시골이 더 낫다.”고 서울쥐에게 말하고는 돌아간다.
어제도 마카롱 5개 사서 냉장고에 얼려놨다는 마카롱양은 과연 서울쥐로 남을까?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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