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학식 먹을래 8화. "저 모태솔로 맞는 거죠?"

건국대학교.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익숙한 풍경이다. ‘데자뷔 인가?’ 했더니 <두번째 스무살> 촬영지라고. 이상윤이 왜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지 알겠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커.
보통 학식이 있는 학생식당은 정문 근처인데 건대는 특이하게 호수를 지나야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호수를 지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척추를 타고 땀 한줄기가 흘렀다. 음… 지하철 건대입구역부터 걸어서 그런 거겠지. 절대 호수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 수많은 커플들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은 아니겠지.

l 건국대 ‘학생식당’ 치즈오븐스파게티와 돈까스 (각 4,000원 3,5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학교에서 데이트하기 너무 좋겠던데? 호수도 있고…”
“태어나서 데이트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 저 모태솔로 맞는 거죠? ]
‘첫사랑 이란?’ 정의하기 어렵다. 한 달은 고민해봐야 객관식 보기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패스. 그렇다면 조금 더 쉽게 가보자. ‘나의 첫 연애는 언제였나?’ 유치원 때 동요시간에 율동을 핑계로 매일같이 끌어안던(또는 안기던) 짝꿍? 초등학교 소풍 때 길 잃을까 손잡고 다니던 그 아이?
만약 ‘추블리’ 사랑이가 나중에 대학생이 되었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유토가 나의 첫 남자친구였어요” 라고 말할까? 만약 사랑이가 남자친구 유토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공부에 집중하느라 스무 살이 넘도록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면 사랑이는 ‘모태솔로(이하 ‘모솔’)’인 걸까?
약간은 뜬금없고 기상천외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건 계속클거양(*키가 몇이야?라고 물었는데 모르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잰 게 170cm라는데 친구들이 볼 때마다 키가 컸다고 한다며. 그녀의 성장판은 무한대?) 때문이다.
친구들이 언제 처음으로 연애를 해봤는지 물어보는데 유치원 때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그렇다면 나는 모솔인 게 맞지 않느냐며. 스물이 넘었는데 모솔이라 부끄럽다며.

“웃긴 말이지만 대학이 인생의 목표였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어요. 친구들이 공부 안하고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는 거 보면서 오히려 걱정했어요. 친구들을요. 그런데 지금은 그 친구들이 오히려 걱정해요. 저를요.
인생의 목표가 대학이었어요. 대학에 가면 연애든 여행이든 뭐든 저절로 다 될 거니까. 그래서 공부만 하자고 마음먹었고 올해 대학에 입학했어요. 고등학교 때 제가 걱정했던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저는 대학이 인생의 목표였고 그 친구들은 아니었는데 결국 같은 학교에 온 거예요. 회의감이 심하게 들었어요. 1학기는 그렇게 흘러 보낸 것 같아요. 그리고 2학기가 됐는데 아직도 싱숭생숭해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더니 저만 연애를 못해본 것 같은 거예요.
[ 밥 먹으면 썸 인가요? ]
계속클거양이 대학에 온 지 7개월이 지났다. 입학하자마자 학과 동아리에 가입했고 단체로 MT도 갔다 왔다. 아르바이트도 2번 정도 해보고 외국인 학생을 도와주는 교내 활동도 했다. 같은 학교 타과 남학생들과 과팅도 해보고 다른 학교 공대랑 미팅도 3번 정도 했다. 최근에는 60명 정도가 함께 활동하는 마케팅 대외활동도 시작해 매주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안 생겼다. 이 많은 활동을 하게 된 제 1의 이유가 솔로탈출이었는데 아직도 안 생겼다.
“’썸’도 없었어?”“네!”“남자랑 둘이서 밥 먹은 적이 없어?”“밥 먹으면 썸 인가요? 그런데 썸이 정확하게 뭐예요?”
말 끝나기 무섭게 썸이 없다고 해놓고는 나에게 썸이 뭐냐고 물어본다. 밥 먹고 톡하는 거라고 했더니 그런 거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며 말을 번복했다.
작년 겨울 가수 정기고와 소유의 노래 <썸> 이후로 대한민국에 썸 열풍이 불었던 건 틀림없는데 그것의 정체는 아직도 불분명 한 것 같았다.
“밥 먹고 톡하는 건 서로를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표현이니까 그게 썸 아닐까?”“그러면 같이 수업 듣는데 중고책 구해주는 건요?”
“저번 학기에 혼자 듣는 교양수업이 있었는데 친구가 다른 과 친구를 소개해 줬어요. 그날 제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더라고요. 적극적인 친구구나 했죠. 다음 날부터 톡이 자주 왔어요. 사교성이 좋은 친구구나 했죠. 그 교양수업이 교재가 필요한 수업이어서 사야 되나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중고로 구할 건데 제 책까지 구해 준다는 거에요. 정말 착한 친구다 싶었죠. 밥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 바빠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에는 같이 먹게 됐는데 밥 먹으면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나 잘되고 있는 여자애 생겼어’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다가 그 말을 듣는데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어요.”
[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데 남자 만날 때 뭘 보냐고 물어봐요. ]
그 후로 계속클거양은 ‘이런 게 바로 ‘썸’이구나’ 어렴풋하게나마 알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친구들이 눈 낮추면 만날 수 있데요. 근데 저는 눈이 없어요. 아직 눈 뜨지도 못했는데 뭘 낮춰야 하죠? 물론 제가 키가 크니까 저보다 키가 작으면 남자로 안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그거랑 눈 낮추는 건 좀 다른 문제 아닐까요?”
이상형이라도 같이 찾아보자 싶어 쌍꺼풀 홑꺼풀? 슬림 덩치? 남자다운 꼼꼼한? 이런 저런 타입을 들어가며 3번 정도 물었더니 결국 머뭇머뭇하며 휴대폰을 꺼내 든다. 사진 하나를 보여주는 데 그 속에 가수 성시경을 닮은 남학생이 있었다. “이런 타입?”


“대외활동에서 만난 오빤데 시험 끝나고 호수 보러 학교에 온데요. 같이 밥 먹자고 했어요. 이거 썸 이에요?”
지금까지는 줄곧 관심 가는 사람도 없다던 계속클거양이 사진까지 꺼내 들며 보여주는 순간. 고민은 해결되고 있는 듯 했다. 이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그 때부터가 관계의 시작 이니까.

“이래서 모태솔로 인가 봐요. 나는 어떤 유형?”
키도 크고 예쁘고 애교도 있는, 한 마디로 매력 넘치는 계속클거양을 보면서 왜 애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와 모태솔로 유형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유형에 흠칫 놀라 공유해본다.
유형 1 처음이니까 제대로! - 신중파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첫 연애는 정말 잘 맞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외치는 유형. 그래서 썸을 타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겨도 이것저것 따지다가 금 같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유형 2 24시간이 모자라 - 자기관리파이벤트 준비, 데이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 나한테 쓰기도 아깝단 말이다! 대외활동도 많이 하고, 스터디도 하고 동아리도 하며 썸이 생길 수 있는 곳에는 항상 있으면서 왜 애인이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면 아마 그는 자기관리파가 아닌가 싶다.
유형 3 내겐 너무 어려운 그대 - 이성울렁증파이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유형. 남중?남고?공대 혹은 여중?여고?여대라는 지옥의 쓰리 콤보를 맞았다면 이 유형일 확률이 높다. 최근에는 날 때부터 남녀공학을 이어왔지만 낯가림과 부끄러움으로 이성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유형 4 사랑보다 우정이 중요해! - 의리파자신이 좋아하는 이성과 죽마고우가 물에 빠졌을 경우 고민 없이 죽마고우를 구하는 유형. 그만큼 이성보단 친구를 우선시하며, 이성과의 만남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고 즐거운 타입이다. 이 타입은 주변 친구들이 모두 커플이 된 경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유형 5 나도 여자(남자)랍니다 - 넌 그냥 친구파 주변에 이성 친구가 많지만 그들에게 이성이 아닌 그냥 친구로 여겨지는 타입이다. 천생 여자임에도 그녀의 남자 친구들은 그녀를 군대 동기만큼 가깝다고 생각하고, 상남자임에도 그의 여자 친구들은 그저 여자보다 편한 친구나 어장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유형 6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거늘 - 미루기파대학 입학하면 CC라도 되겠지, 동아리 들어가면 생기겠지, 군대 갔다 오면 생기겠지 하면서 미루다 모솔이 된 타입.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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