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서 '헤븐조선' 꿈꾸는 외국인유학생 취업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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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청년들의 세상을 향한 한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헬(Hell=지옥)조선’이란 말이 머지않아 국어사전에까지 등재될 기세다. 20대라면 응당 누려야할 연애는 고사하고 치열한 취업전쟁 속에 던져진 청년들에게 한국은 그야말로 ‘헬’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청년실업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 모양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몇 년 새 중국경제도 주춤하면서 전 세계 청년들의 실업문제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 ‘헬조선’이 아닌 ‘헤븐(Heaven=천국)조선’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도 자신들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는 한국 청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한국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를 잡앤조이가 소개한다.
시작은 역시 ‘한류’수년째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은 외국 청년들의 발걸음을 한국으로 몰리게 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8월 27일 발표한 ‘2015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전년(8만4891명)대비 6441명(7.6%) 증가한 9만1332명을 기록했다. 교육기본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1965년 이래 사상 처음으로 9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국제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대학들의 유학생 유치 노력과 교육부가 학생 교육여건 관리 차원에서 2011년부터 인증제를 시행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외국 청년들이 한국을 알게 되고, 유학까지 결심한 데에는 여전히 한류의 몫이 컸다. 실제로 최근 기자가 만난 외국인 유학생들 대부분이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한국문화 콘텐츠를 접하면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바네사(26·스페인)양은 자타공인 ‘한국애정녀’다. 평소에도 개량한복을 즐겨 입는 그는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악마를 보았다’를 본 뒤 한국 문화에 푹 빠졌다고 한다. 바네사는 “한국문화를 접할수록 한국을 배우고 싶었고, 무작정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부터 교환학생으로 한국외대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바네사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교환학생이 끝나는 올 초에 이미 스페인에 돌아갔겠지만 스페인 역시 경제위기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한국에서 더 머물고 싶었다. 향후 통번역 공부까지 마치면 한국과 스페인을 잇는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만난 교환학생 가브리엘라(21·프랑스)양도 “K-POP과 한국음식을 사랑한다. 실제로 프랑스에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다”면서 지난달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파리의 에펠탑이 ‘태극기’로 물든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실 아직까지 한국 취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에서 프랑스 관광객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여행전문가로 일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한류로 시작된 애정이 이들에게 한국 행 유학으로, 나아가 한국에서의 삶까지 꿈꾸는 계기가 된 셈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 취업 꿈꿔이와 달리 최근에는 단순히 한류에 대한 관심이 아닌 애초부터 한국 취업을 목표로 한국유학을 선택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본지가 법무부로부터 확보한 ‘최근 5년간 국내대학 졸업 후 전문직종에 취업한 외국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취업에 성공한 외국인 유학생은 744명에서 이듬해에는 1054명, 2012년에는 1156명, 2013년에는 1183명, 2014년에는 1116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8월 현재까지 1062명으로 한국 취업을 꿈꾸는 외국인 유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거나 한국과 자국을 잇는 통역사의 길을 꿈꾸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의료, 미용, 대중문화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를 습득해 한국 내 창업을 꿈꾸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가패(21·중국)군은 “중국에서도 성형열풍이 거세다”며 “한국이 성형의술이 발달한 만큼 어렸을 때부터 한국 유학을 꿈꿨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향후 한국에서 성형외과 전문병원을 차리고 싶다. 사업이 잘 되면 중국에도 차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패 군처럼 전문직을 꿈꾸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국내 회사로 취업을 꿈꾸는 외국 유학생들의 취업 도전은 한국 청년들의 그것 이상으로 어려워보였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취준생과 마찬가지로 토익 등 다양한 스펙을 쌓는 것은 필수다. 더욱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한국 내 취업 등용 기회도 매우 적을뿐더러 구직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 중인 중국인 유학생 김춘권(25)군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취업에 성공한 주변 외국인 친구들이 많지 않아 스스로 정보를 찾고 있다”면서 “취업 관련 정보가 부족하니 그동안 전공 공부만 팠다. 이제야 이력서도 쓰고 각종 스터디도 하기 시작했는데 녹록치 않다. 분명 어려운 길인 걸 알지만 꼭 내가 좋아하는 한국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진짜 ‘한국’ 배워야 취업문 가까워져물론, 외국인 유학생들 중에서도 일반전형에 서류가 통과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한국 취준생들에게도 난제인 인·적성 검사와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기 십상이다.성균관대학교 국제교류팀 관계자는 “외국 유학생들이 한국 취업 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실력이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라며 “가령, 외국 학생들도 취업을 위해 한국 학생들처럼 스펙을 쌓는데 공을 들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면접에서 탈락한다”고 6일 말했다. 관계자는 “한국 학생들도 국내 기업에서 바라는 인재상에 맞춰지기 힘든데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외국 학생들에게는 더욱 난제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에서 취업을 꿈꾼다면 스펙만큼이나 한국 사람들과 다양하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7년 전 한국에 유학을 와 현재는 대형 로펌에서 일본 관련 번역 업무를 맡고 있는 일본인 C씨(32·여)도 “한국 내 취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C씨는 “매일같이 한국어 공부는 물론이고, 한국을 배우기 위해 각종 스터디나 취업상담회도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나는 운이 좋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취업 후에도 문화차이로 종종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가령, 일본에서는 일의 마감시한이 정해지면 그 전에 모든 일처리를 해두는데 한국은 마감시한과 별도로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생기더라. 지금은 많이 적응이 돼 괜찮지만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C씨는 그러면서 “외국 학생들이 취업의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직무에 대한 자질만큼이나 한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 속에서 융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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