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우리 동네 어디까지 가봤니? 본격 동네 투어 프로젝트 '다님'


꼭 비행기를 타야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트레이닝복차림으로 거닐던 동네 골목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의 자격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보라(경희대 관광 4) 씨가 동네를 거닐며 들으면 좋은 노래 리스트를 만들고, 직접 동네 지도를 그려내는 ‘다님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다님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동네를 다른 구성원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으로,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나간다. 지난 4월 서울 회기동을 시작으로 의정부·신이문·신림·망원·혜화·창경궁 등 동네 투어를 마치고 7월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누구든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유럽도 아닌 서울의 평범한 동네. 이보라 씨가 ‘동네’를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서울 서촌을 소개하는 잡지 <서촌라이프>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서다.
“내 손으로 직접 <서촌라이프> 같은 잡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는 서울 회기동을 둘러봤어요. 사실 회기동은 살기에 좋지 않은 동네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흥이 넘치는 곳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곳에 사는 저 조차 좋게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서촌라이프>에는 서촌의 안 좋은 모습까지 긍정적인 면을 살려 싣는 반면, 제가 사는 동네에 대해서는 좋은 면까지 나쁘게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부터 회기동은 '이보라가 사는 특별한 동네'가 됐다. 그녀는 ‘회기동처럼 다른 곳도 재발견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본격적인 투어 계획을 세웠고, 먼저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여행 커뮤니티 ‘여행대학’을 찾았다.
함께할 구성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9명의 구성원을 만났고, 본격적으로 일을 벌였다.
이름하여 ‘다님 프로젝트’. 일상 속에서 여행하기, 내가 사는 동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이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에 맞게 평범한 동네의 이야기에서 콘텐츠를 발굴해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블로그의 문을 열고 콘텐츠를 저장할 공간도 마련해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어요. 포털 사이트의 지도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닐며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지도를 그리는 것이죠. 자신만이 아는 아지트도 있을 테고, 남들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맛집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나씩 그려나가다 보면 자신만의 지도가 되는 거죠.”
그렇게 완성한 지도에 더해진 것은 BGM! 동네를 여행하며 들으면 어울리겠다 싶은 음악을 찾아 ‘동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세 번째 콘텐츠는 특정시간에 맞춰 동네에서 있었던 일 기록하기. 이를테면 12시 1분에 망원동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행지와 여행자 간의 거리를 좁혀 모두가 자신의 동네로 느끼게 하기 위해 마련한 콘텐츠다.

우리 동네 정 느끼며 같이 들을래? 다님 프로젝트가 족적을 남긴 곳은 회기·망원·시청·혜화·돈암·과천·인사동·창경궁·목동·성산·의정부·이태원·신의문·신림까지 모두 15곳.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구성원들이 잘 아는 ‘동네’를 찾아다닌 결과다. 자신의 동네를 소개할 때면 직접 가이드가 되어 나머지 구성원들을 이끄는 방식. 투어는 2주에 한 번 진행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같이 좋아해주면 더 좋잖아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동네에서 제가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감성 공유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소개하고 나면 또 동네가 새롭게 보이고요.”
첫 투어 장소를 자신이 사는 회기동으로 정하고, 이씨는 직접 가이드에 나섰다.
우선 경희대 캠퍼스 투어를 한 뒤 학교 옆의 오래된 절을 찾았다. 그곳에서 쌓은 추억을 들려주고 있노라니 스님이 다가와 그녀 일당의 정체를 물었다. 프로젝트를 소개하자 스님은 팔찌를 선물로 주며 아빠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후 다른 곳에서도 다님 프로젝트를 소개할라치면 떡볶이 떡을 하나 더 얹어주는 등의 정이 쏟아졌다.
동네 투어의 참맛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투어는 올림픽공원 옆에 사는 친구의 동네에 갔을 때예요. 동네 구석구석을 설명하던 가이드 친구가 다음 코스라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더라고요. 오래됐지만 정말 예쁜 집이었어요. 친구는 자신의 집에서 요리를 해주고 앨범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그 친구와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안됐을 때인데, 추억을 공유하며 엄청난 교감을 했어요.”


하지만 낭만에만 젖을 순 없었다. 혼자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젝트였기에 구성원 간의 의견을 조율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열정의 크기가 달랐다. 열정을 가지고 참여했던 사람들도 지쳐 갔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기획자로서의 무게감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게 ‘돈’이라는 것을 깨닫자 부담은 더해졌다.

“식비·교통비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커피라도 한 잔 해야 하는데, 대학생이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을까 해서 프로젝트 내용을 담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교수님을 찾아뵙기도 했죠.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좋자고 한 일인데, 어느새 돈을 위한 일이 되어버린 듯해서 씁쓸하더라고요.”
가만히 놔둬도 잘 커나갈 아이에게 돈을 벌어오라며 등을 떼미는 심정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습으로 세상에 내보내는 듯한 느낌.
마침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게 된 그녀는 서둘러 시즌 1을 마무리했다. 그녀의 다음 목표는 스페인에서 시즌 2를 시작하는 것.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가우디투어’에 참여하고 나서 투어 프로그램에 푹 빠졌어요. 스페인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다님 프로젝트를 또 한 번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한국에서도 물론 하고 싶고요.”(웃음)











글 김은진 기자(skysung8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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