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문경에서 도쿄까지 문화 나누러 왔소이다~ 청년 조선통신사


1404년, 조선 국왕과 일본 막부 장군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사절을 파견했다. 이때 조선에서 파견한 사절이 바로 ‘조선통신사’다. 그리고 2015년, 한국에서 정식 파견한 적은 없지만 자신들을 스스로 ‘청년조선통신사’라 부르는 청년들이 모여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2040km의 대장정에 나섰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배웠던 조선통신사를 2015년 청년 버전으로 부활시킨 주인공은 문현우(28) 씨. 그는 아리랑, 한글 등 다양한 문화기획물로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문화 갈등을 해결하는 ‘아리랑유랑단’의 단장으로 활동하는 ‘한국문화기획꾼’이다. 그동안 그는 가야금·해금·서예·한국무용 등을 배울 수 있는 아리랑스쿨을 열고, 프리절·한복런·갓파티·전국대학생제기차기챔피언십 등 한국의 문화와 청년을 잇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리고 한일수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청년조선통신사’.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문화로 소통해 풀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일본의 <닛케이>와 한국의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상대방 국가에 호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더 많았던 연령층은 양국 모두 20대가 유일했다고 해요. 이런 20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한?일 관계가 점차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비교적 열린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거예요.”
민감한 주제임이 분명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부쩍 반일감정이 고조되던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조심스러운 프로젝트에 7명의 청년이 선뜻 나섰다.
부사(부단장) 김영진(27), 가야금 연주자 박정은(24), 해금 연주자 김신영(21), 한국화 전공자 신은미(29), 영상과 사진으로 여정을 기록할 이준호(24), 일본어 통번역 전공자 박지민(24), 일본학 전공자 봉민균(24) 씨까지.
여기에 영천시·일본정부관광청·노스케이프·다음카카오·문경시의 후원과 협찬이 더해졌다.
“지원서를 받고 면접을 통해 최종 멤버를 꾸렸어요. 비록 함께하지 못했지만, 은행에 다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 그만두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죠. 그만큼 우리 젊은이들이 한일 문화교류에 관심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꾸려진 청년조선통신사는 8월 24일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해 충주·문경·안동·영천·경주·부산 등 국내 7곳과 대마도·후쿠오카·시모노세키·히로시마·오사카·교토·나고야·도쿄 등 일본 8곳을 13박14일간에 걸쳐 걸었다.
정확히는 각자의 전공을 살려 ‘공연’을 열었다. 행렬이나 답사로 끝났던 조선통신사에서 한 단계 진화한 방식!
공연을 위해 8명의 청년은 가야금, 해금으로 다양한 ‘아리랑’ 가락을 편곡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한국의 멋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일본의 미를 상징하는 꿩 등을 20분 동안 흘러나오는 가야금·해금 선율에 맞춰 그리는 드로잉쇼를 준비했다. 역사공부도 철저히 했다.
하지만 계획을 실천하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걱정은 경비. 14일간의 교통비·숙박비·식비는 만만찮았다. 더 만만찮았던 건 이 모든 경비를 단장인 문현우 씨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해결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경비를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 여기에는 ‘단장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
“돈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야 더 열심히 할 듯싶었거든요. 지원금을 받으면 덜 아끼게 되니까요.”

문 단장의 고귀한 희생(?)으로 드디어 시작된 통신사의 여정! 이들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공연을 알아주는 사람들 덕분에 무료로 숙소를 해결하기도 하고, 공연 기회를 얻는 등의 호의를 입으며 한 발씩 나아갔다.

“문경에서는 뿌듯함이 배가 됐어요. 아리랑의 고장인 문경은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지나는 지역이거든요. 문경을 지날 때 지역 주민들께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처음 알았다. 알게 해줘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공연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도 있었어요.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도 추고….”





청년조선통신사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발길을 향했다. 일본에서 종종 혐한시위가 일어난다는 흉흉한 소식을 접한 터여서 걱정이 컸다. 혹여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달걀이라도 투척하면 어쩌나 해서였다.
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판’을 펼치는 곳마다 이들을 응원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드로잉쇼에서 그린 미흡한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일본인도 있었다.

“일본에 머무르는 한국사람들은 국적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저희의 활동을 보고 힘을 얻었나 봐요. 또, 일본인들 중에서도 한국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어요. 일본학을 전공한 친구와 인연으로 한 선생님과 가까워졌는데, 이틀 동안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면서 응원해주셨어요. 이 선생님 소개로 전통가면을 공부하는 일본인 친구들과 문화를 교류하며 부쩍 가까워졌죠.”

청년조선통신사의 활동 핵심은 ‘우리 문화가 좋으니 들어봐’가 아니다. 문화를 매개로 꽁꽁 얼어버린 관계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 반기를 드는 이도 적지 않다.
현재 문 단장은 다음뉴스 펀딩을 통해 다음 조선통신사의 여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뉴스 밑에 달린 댓글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스펙 쌓기용 활동’이라며 혀를 차는 정도는 약과. ‘국가 망신’이라면서 상스러운 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 단장은 “이 또한 하나의 관심”이라며 “앞으로 프로젝트를 1년에 한 번씩, 총 12차례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후 조선통신사 행렬이 12회였던 것에서 착안한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가 한?일 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하고, 또 기대하고 있어요.”




글 김은진 기자(skysung89@hankyung.com)사진제공 아리랑 유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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