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라는 글자에 담긴 이야기 - 이다하 그래픽디자이너





온라인에서 좀 놀아봤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다하 디자이너의 작품과 마주쳤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마주쳤다면 ‘저장’을 누르거나 ‘스샷’을 찍었을 거다.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정체(?)를 알고 나면 분명 찾아볼 터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에 한 번, 스물다섯 청년이라는 것에 또 한 번 호기심이 생길 테니 말이다.
이다하 디자이너는 캠퍼스를 누비는 현직 ‘대학생’이다. 그리고 현재 SNS 조회 수 200만을 돌파한 핫한 작품의 작가이기도 하다. 평범한 경영학과 전공 대학생이 디자이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흥미가 있어 틈나는 대로 포토샵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낸 작품들이 우연한 계기로 잡지에 실리면서부터다. 그는 디자인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잠시 학과공부를 제쳐놓고 1년간 디자인 작업에 몰두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 신기했어요. 코카콜라 로고를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읽듯, 제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제 디자인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요. 처음에는 디지털아트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래픽디자인 영역 자체에 대한 관심이 짙어졌어요.”
그래픽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램, 레터링으로 범위가 좁아진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다행히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짬을 내 디자인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는데, 대신 빨리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이 따랐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한글 레터링’이었다.
그렇게 한두 개씩 한글 레터링 작업을 해서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했다.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개인기록 보관용이었다. 시간이 지나 제대하고 복학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디자인’이라는 세 글자가 떠나지 않았다.
“2학년으로 복학했는데 정말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급하게 시험을 준비해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전공이 싫은 것은 아닌데,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보니 그랬던 듯해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가 심적 고통을 겪는 동안 그의 팬은 늘어갔다.
그가 작품을 업데이트하기만 기다리는 팬도 여럿, 그의 작품만 자신의 블로그에 모아두는 이들도 생겼다. 그 결과 그는 ‘SNS 글자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됐고, SNS 조회 수 200만을 기록하며 최근에는 전시회,책, 음반, 포스터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다하’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작가나 디자이너로 불리는 데 대한 확신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디자인에서 전공자와 엄연한 차이가 보일 뿐 아니라 내공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탓이다. 그저 디자인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일 뿐이라고. 이런 그의 고민은 그래픽디자이너, 글자작가, 대학생, 그리고 빈칸이 적힌 명함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다하의 작품 이야기




01. 단순하지 않은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작업처음 작업할 때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점점 작품에 반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해석의 여지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은 생각의 여지를 주기 위한 작업을 한다. 한두 번 생각해야 할 내용을 일차원적으로 푸는, 예를 들어 ‘삶’ 같은 작품.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02. 아이디어의 원천은 잡생각작업은 잡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완성한다. 특히 자기 전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한다. 생각의 주제는 매일 다르지만, 내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연애할 때는 연애를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 고민은 항상 작업으로 풀린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작업인 셈이다. 작업할 때만큼은 오롯이 나만 바라볼 수 있어 좋다.

03. 작업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은 나의 기준작업을 올리는 기준은 나다. 내가 봤을 때 이해돼야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독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지가 아닌 글자로 인식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기준을 채웠다고 생각하고 올렸는데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릴 때도 있고.

04. 경영학과 디자인의 연결고리태어나 처음으로 전문분야에 대해 공부한 것이 경영학이다. 거창하지만, 대학 수업이 그런 것 아닌가? 경영학과에 진학 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경영학 또한 포기할 수 없는 부문이다. 4년 동안 배운 것을 썩힐 수 없다는 생각에 디자인과 접목할 수 있는 부문을 찾아봤다. 결론은 마케팅이었다. 상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마케팅이고, 또 그 전략 중 하나가 디자인이니까. 둘 다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05.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좋아실험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를 좋아한다. 지금은 아이디어를 2D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지만,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되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해보고 싶다. 작업의 표현에 한계를 두지 않고, 기회가 닿는다면 모션그래픽?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6. 이다하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다 무슨 일을 하든 내가 만든 것들이 재밌고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앞으로 더 경험을 쌓고,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진로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광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자격증도 없고, 공모전에 나가본 적도 없어 취업이 걱정되지만 우선 남은 학기 성공적인 학점을 받는 것이 목표.

7. ‘관심종자’와 ‘아티스트’는 한 끗 차이재밌는 콘텐츠가 많이 나온다. 좋다. 우리 세대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누리는 세대다. TV 앞에 앉아 화면에 나오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상을 찍어 SNS를 통해 공유하지 않는가?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콘텐츠를 ‘남의 입장’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팬을 확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도 괜찮고, 상대방도 괜찮은 선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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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은진 기자 skysung89@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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