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 청년 사장이 만든 '빵'과 '낮술'의 완벽한 케미

성다인 뉴욕베이커리 경기의원점 대표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빵을 하나 주문하더니 그 자리에 서서 맥주 한 잔과 받아든 빵을 ‘호로록’ 마셔버리는 손님, 선반 위에 떡하니 놓인 ‘산부인과’ 간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베이커리’와 ‘백반’이 한 단어로 쓰여 있는 메뉴판까지. 6평 남짓한 작은 매장을 둘러보고 뉴욕B&C 경기의원점의 대표 성다인 씨와 마주앉는 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 뉴욕B&C 경기의원점 성다인 대표

대학가 근처임에도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 앞 거리. 하지만 구석구석 뒤져보면 재밌는 콘셉트의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다인(23) 씨가 운영하는 ‘뉴욕B&C 경기의원점’도 그중 하나다. ‘장사의 반은 목’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을 빵집 터로 잡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눈에는 가게를 낸 경기대 앞 충정로 거리가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만큼이나 예뻐 보였다고.
△ 뉴욕B&C 경기의원점“원래 가게 터가 1967년에 세워진 ‘경기의원’이라는 병원 자리예요. 들어보니 경기의원 원장님에 대한 미담이 무척 많았어요.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은 사람에게 직접 유자차를 끓여주고 귤을 손에 쥐어준다거나, 데모하던 학생들이 쫓겨 들어오면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고요. 경기의원이라는 이미지도 좋고, 또 그 원장님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충정로점’이 아닌 ‘경기의원점’이라는 이름을 달았어요.”
그녀는 우물이 있던 병원 주차장을 다듬고 꾸며 2013년 가게 문을 열었다. 사실 처음 문을 열 때 그저 두 청년창업가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었지만, 2014년 1월 두 대표 중 한 명은 취직을 위해 떠나고 나머지 한 명은 서울 신촌에 새로운 지점을 오픈하기 위해 떠나면서 대표를 맡게 됐다.
△ 뉴욕B&C 경기의원점
“두 청년창업가가 저희 친오빠와 오빠의 친구였어요.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사업자 명의가 제 이름으로 바뀌었죠(웃음). 신촌점을 맡은 오빠와 함께하니 듬직하긴 한데, 각자 치열하게 사느라 남매의 정이라기보다 전우애가 느껴져요.”
△ 성다인 대표가 만든 '베이커리 백반' 메뉴
청년 대표라는 점 외에 뉴욕B&C 경기의원점에 주목할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술’이다. 분명 상호는 ‘베이커리 & 카페’인데, 카운터 뒤에는 ‘낮술’이라는 뜬금없는 메뉴가 적혀있다. 인터뷰를 위해 한낮에 점포를 찾았을 때도 ‘낮술’을 들이켜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빵’과 ‘맥주’의 조합은 성 대표의 취향에 따라 마련한 메뉴다.
“빵과 술을 함께 먹어보라고 권해요. 피카소나 헤밍웨이는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잖아요? 카페에서 술을 판매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 끝에 메뉴에 넣었어요. 처음에는 손님들이 황당해 했는데, 보시다시피 이제는 다들 즐기세요. 간혹 소주와 마른안주를 찾는 손님이 계셔서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손님들께도 ‘낮술’이라는 콘셉트가 재미있는 듯해요.”
△ 성다인 대표가 만든 '베이커리 백반' 메뉴
‘낮술’ 외에도 성 대표가 주력으로 내놓은 메뉴가 또 있다. 상품특허를 받았다는 ‘베이커리 백반’이다. 빵과 사이드 메뉴, 샐러드를 한 그릇에 내는 메뉴다. ‘오롯이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보겠노라 고민한 끝에 고안한 메뉴다. 물론 일반 백반처럼 메뉴는 매일매일 다르게 준비한다.
같은 빵도 특별하게… 톡톡 튀는 마케팅으로 입소문 가게 운영을 맡은 지 2년. 상권 특성상 학생보다 주민이 더 많은 편이다보니 거리를 한 번 지날라치면 10번 이상의 인사는 기본이다. ‘빵’을 파는 만큼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가게를 찾는 연령대도 다양하다. 지난 5월 가게를 자주 찾던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기 위해 가게 앞에 가판대를 설치했던 ‘어린이날 이벤트’도 충정로에 자리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어린이날 이벤트
“문을 연 지 두 달쯤 됐을까요? 어떤 손님이 단팥빵 10개, 소보로빵 10개 값을 계산하시고는 하나만 가져가시더라고요. 노숙자나 노인분들께 나눠드리라고요. 그래서 가게 앞에 적어놨더니 다른 분이 오셔서 또 그렇게 돈을 내고 가셨어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후로도 경기의원 원장님의 고운 마음씨가 계승되기라도 하듯, 뉴욕B&C 경기의원점에는 훈훈함이 넘쳐났다. 감신대 학생들이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겠다기에 원가에 제공했고, 세월호 사건으로 마음이 아플 단원고 학생들에게도 빵을 전달했다. 매력적인 동네에 푹 빠져들어 주민들의 사진을 받아 동네신문을 제작해 배포하는 일도 자처했다. 욕심이 많아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성 대표의 프로젝트는 ‘어린 장사꾼’과 주민들의 유대를 형성하는 데 탁월한 방법이었다.
가게 홍보물에서도 그녀의 신선한 아이디어는 끊이지 않았다.
“구인광고를 낼 때는 ‘잠깐 봅시다’라면서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생과일주스를 판매할 때는 생과일주스를 찾는다며 구인광고처럼 홍보하기도 했어요. ‘오늘을 발굴하고 내일을 무시하자’ 같은 문구를 써서 동네 곳곳에 붙이기도 했죠. 사실 홍보 목적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예술을 한답시고 생각해낸 아이디어예요.”



마케팅·홍보 역량이 돋보이는 성 대표의 전공은 분명 ‘경영’이리라는 예상은 ‘예술’ ‘문학’ ‘문화’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성 대표는 현재 국어국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뉴욕베이커리 운영을 위해 휴학한 상태.
“사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얼결에 가게를 맡아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지만, 대학생활에 아쉬움이 남아요. 대학생활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대학에서 사귄 친구도 거의 없고, MT나 동아리 같은 대학생이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겪지 못했거든요. 캠퍼스 안에서 연애도 해보고 싶은데….”
얼결에 ‘사장님’이 됐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계나 세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했고, 자신이 팔고 싶은 상품이나 하고 싶은 마케팅이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즉 상품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무척 힘들었다. '대표'로서의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그녀의 가게가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려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할 때 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물론 지금도 이런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매출도 매우 신경 쓰이죠. 감사하게도 주변의 몇몇 사무실에서 매일 아침 빵을 주문해서 고정수입도 있고, 단체주문도 있어서 매출은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쑥스럽지만, 제가 관리하면서 매장 매출이 2배로 뛰었더라고요. 매장에 걸어놓은 작은 메뉴판 앞으로 내놓기, 입간판 기울이기, 문 활짝 열어놓기 같은 사소한 변화들이 가져온 결과인 듯해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롱런할 수 있어 해맑은 표정으로 그동안의 성과를 자랑하던 성 대표는 창업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은 일”이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 못 벌면 당연히 어렵죠. 그게 현실이에요. 아침에 문 열고 청소하고 문 닫는 일이 전부여서 지루하기도 하고 자칫 게을러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금방 표가 나요. 귀신같이 손님 수가 떨어지고 그 손님은 절대 다시 오지 않죠.”
성 대표는 뉴욕B&C를 ‘매장’이 아닌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거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공간으로 쓰고 싶어서다. 지난 28일 충정로의 청년창업자들이 모여 프리마켓, 전시회, 공연 등을 기획해 진행한 ‘충정로 섬시장’도 뉴욕베이커리를 ‘공간’으로 쓰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여력이 안 되지만, 나중에는 제빵 클래스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프로젝트나 이벤트를 기획해 예술가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INFO 뉴욕B&C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43-1문의 070-8692-7713 운영 시간 9:00~24:00




글 김은진 기자 skysung89@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뉴욕B&C 경기의원점 제공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