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고깃집 ‘육덕’ 사장님 이미환

[나의 꿈 나의 인생]
서울대 통계학과 출신 고깃집 사장님 이미환“공부보다 좋은 게 있으면 그걸 하면 되죠”
여기,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고깃집을 차린 만 스물아홉 청춘이 있다. 서울 관악구청 옆 ‘육덕’의 이미환 사장(29)이다. “만약 나중에 아들이 똑같이 서울대를 그만두고 장사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당연히 응원해야죠. 제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걸요.”

지난 6월 22일, 사장님 이미환 씨(29)를 서울 관악구청 근처의 그의 고깃집 '육덕'에서 만났다. 학교에 적응을 못해 어쩔 수 없이 자퇴를 해야 했지만 그는 학교를 나온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승재 기자.


[PROFILE]이미환1986년생서울대 통계학과 중퇴제주 흑돼지 전문점 ‘육덕’ 사장



지난 2월, 서울 관악구청 근처에 독특한 콘셉트의 고깃집이 문을 열었다. 카페를 연상시키는 모던한 인테리어에, 센스 있는 문구 디자인이 여기저기에 스며있는, 이 곳의 사장 이미환 씨는 서울대 통계학과 출신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해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뒀는데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고깃집 사장님’이 된 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꿈을 접고 서울대 입학
중학교 때였다. 특별활동 부서를 정해야 하는 시간, 이미환 씨는 당시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빈자리가 있던 요리부를 반강제로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 이씨는 이 곳에서 적성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했는데 할머니의 음식솜씨를 물려받았는지 요리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예요. 스파게티를 만들고 도넛을 구우면서 이게 제 길이구나 싶었죠. 그래서 고등학교도 제과제빵 학교를 희망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생각보다 완강했다.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그는 매일 쪽잠을 자가며 공부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문제는 입학 후였다. 학교도 전공도 원하던 곳이 아니었기에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 보니 학교에서도 겉돌았다. 결국 한 학기도 채 다니지 못하고 1년 간 휴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복학을 해서도 여전히 학교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또다시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딱 학교를 다닌 6학기만큼 학교를 쉬었던 그는 3학년이 끝나갈 무렵, 결국 자퇴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나왔다. 3학년 자퇴, 고깃집을 차리다
자퇴 후 그가 선택한 제 2의 삶은 ‘고깃집 창업’이었다. 고기를 워낙 좋아해 교내 커뮤니티인 ‘스누(SNU)라이프’에서 멤버를 모아 ‘고기번개’를 꾸리곤 했던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고깃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다. 고기도 마음대로 먹고 새로운 사람도 늘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틈틈이 학원, 과외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씨는 여기에 부모님의 지원금을 보태 지난해 2월부터 본격 사업 준비에 돌입했다.
자리는 단골집만 수십 곳이라 친숙한 모교 근처로 결정했다. 인테리어는 모던하고 깔끔한 신림동 가로수길, 이른바 ’샤로수길’ 콘셉트로 잡았다.
고기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했다. 축협이 운영하는 식육학교에 등록해 기본적인 유통과정부터 발골, 해체작업을 배웠다.



재학 중 소모임 형태로 운영했던 ‘고기번개’를 이번에는 창업 밑천으로 활용했다. 가게 오픈 전, 음식의 맛을 평가받기로 한 것이다.
“동문들에게 고깃집을 오픈할 예정이니 와서 많이 먹고 의견을 내달라고 부탁했어요. 회비도 만원씩만 받고 나머지는 수업료로 생각하겠다고 했죠. 나중에는 맛 평가 외에도 다양한 도움을 받았어요. 워낙 여러 전공자가 모이다 보니 이미 창업에 성공한 동문도 있고 세무나 상표등록 관련 종사자도 있어 여러 가지 조언을 받았죠.”
업계 전용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1만2천여명의 회원이 모여 있는 이 곳에서 그는 고기납품업자부터 칼 등 소품업자까지 다양한 전문가를 만났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사장인 그를 이른바 ‘호갱’ 취급하며 무시하는 거래처 업자도 많았다. 그럴수록 이씨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이른바 ‘배운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도 애썼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진정으로 믿을 만한지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가게를 차리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어요. 맞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도요.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처음에는 당장의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웬만하면 맞춰주고 수용해주려 했어요. 그렇게 친해지면서 신뢰를 쌓아가기로 한 거죠.”
요즘 사람 만나는 재미에 ‘흠뻑’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 지 딱 일 년 만인 올 2월, 이씨는 마침내 모교 근처에 제주 흑돼지전문점 ‘육덕’을 오픈했다. 가게 이름 ‘육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기로 덕을 베푼다’는 것과 ‘가게의 여섯 가지 덕목’이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 매장 안에 여섯 가지 덕목을 새겨 넣으려고 했어요. 무조건 많이 준다, 외부 주류 반입 환영한다, 반찬 무한리필 같이 무조건 ‘퍼준다’는 콘셉트였죠. 안타깝게 여섯 가지나 더 퍼줄 게 없어서 포기했지만요.”



그는 요즘 손님 만나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간혹 합석을 요청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일대의 고객 대부분 20~30대 또래가 많다 보니 손님에서 친구로 발전한 경우도 종종 있다.
공부를 내려놓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그는 뜻밖에 “조금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후배가 있다면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 대신 다른 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후에 또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때 조금은 후회할 것 같기도 해요. 학교는 지식 외에도 ‘관계’라는 큰 선물을 주거든요. 제가 가게를 열 때도 ‘고기번개’ 멤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세무나 법률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었거든요.”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반드시 혼자 헤쳐 가라’는 것. 서빙부터 주방, 배달까지 전체 과정을 직접 알고 있어야 그만큼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발품도 중요하다. 이씨 역시 적합한 고기 납품업체를 찾기 위해 제주에만 7번이나 다녀왔다.
“딱 맞는 거래처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수십 수백 통 쓰는 것처럼 말이에요.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배우세요. 대신 도움은 받되 마지막에는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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