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도 시즌에 채용? 갈수록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

이슈체크좁아지는 취업문

18일 SETEC에서 열린 서울시 청년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희망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918


이제 ‘공채 시즌’이란 무의미 한 걸까. 과거 대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하반기 공채 시즌에 중소·중견 기업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의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얼핏 보면 숨통이 트이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정작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근심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게다가 이들 중소·중견기업의 채용전형도 갈수록 다변화되고 있다. 필기전형, 이색면접 등 대기업과 비슷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경제상황 만큼이나 중소·중견기업의 2015년 채용시장 역시 쉽사리 봄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
대기업 일자리 큰 폭 감소
보통 연간 대기업 공채는 상·하반기 두 차례로 나뉘어 실시된다. 상반기 공채시작은 3월. 대개 이맘때쯤이면 많은 대기업이 채용공고를 내고 일제히 대규모 신입채용에 들어간다.
하지만 올해는 이 채용규모가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100인 이상 377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 신규인력 채용동태 및 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기업(300인 이상) 채용규모가 지난해 0.5% 증가에서 2015년 3.4% 감소로 전환됐다.
또 올해 ‘신규인력 채용계획이 있거나 이미 채용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59.1%로, 최근 5년 내(2011~2015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해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을 반증했다.
또 다른 조사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해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175곳의 채용 규모는 1만402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1만5610명)보다 10.1% 줄어든 수치다. 설문에 답한 316곳 중 77곳은 올해 신규 채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64곳은 채용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채용규모 감소세는 3~4월, 대학 캠퍼스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까지 채용설명회 등으로 분주했던 대규모 강의실이 올해는 비교적 한산했던 것. 연세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찬영 씨는 “몇 달 동안 상반기 공채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삼성을 제외하고는 많은 기업이 아예 뽑지 않거나 석?박사 대상 R&D 장학생만 뽑더라”며 “작년보다 채용행사에 방문할 수 있는 기업이 줄었다는 점에서 취업난을 실감했다”며 씁쓸해 했다.
중소·중견기업이 그 자리 대체, 두 마리 토끼 어떻게?
이 같은 대기업의 취업난을 톡톡히 경험한 구직자들은 대개 시즌이 끝나면 자연히 중견이나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소·중견기업도 대기업 공채시즌과 맞물려 진행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취업문이 더욱 좁아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공개한 올 3월 기업 채용일정 중 일부. 사진=사람인 자료 캡처


한 취업포털 업체가 제공한 3월 한 달 간 기업 공채 일정을 보면, 대기업 공채 외에도 수시채용 및 경력채용, 중소중견기업 채용도 꾸준히 진행됐다. 대기업의 상반기 공채가 몰리는 3월의 전체 채용공고 중 30대 그룹 이외의 중견 및 중소기업의 채용도 약 절반에 달했다.
채용절차 역시 점점 까다로워지는 모양새다. 최근 이색면접, 스펙초월 등 신입채용에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는 가운데 중소 및 중견기업들도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매일유업의 제로투세븐은 1~3차 면접을 진행한다. 1차는 실무진 및 팀장면접, 2차 임원진면접에 마지막으로 대표면접도 실시한다. 태평양물산도 까다롭다. 태평양물산은 1,2차로 나뉘는데 1차면접이 선배사원평가, PT면접, 집단면접으로 구성된다. 선배사원평가는 입사 2~4년차 선배사원들이 면접관과 배석해 지원자를 관찰하는 시험이다.
쿠팡은 1차 테크인터뷰, 2차 쿠팡 핏 인터뷰로 나눈다. 테크 인터뷰에서는 코딩문제부터 쿠팡의 인재상과 연결 짓는 문제를 출제한다. 유풍 역시 인적성검사와 함께 면접을 3차로 나눈다. 실무진면접에 이어 임원진, 대표까지 순차적으로 면접에 참여한다.
지원단계에서 토익 기준을 제시한 곳도 있다. (주)세화아이엠씨는 정규직 채용의 경우 토익 750점 이상, 전 학년 평점 3.0점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 잡기 어려워… 일정 조정 필요
이렇다 보니 구직자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트이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채용일정을 분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많은 기업의 신입채용 시기가 몰려있다 보니 구직자들은 어렵게 각 전형을 합격하고도 시험 일정이 겹쳐 일부 기업은 포기해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취업준비생 한승혁 씨는 이번 상반기, 대기업의 인적성검사와 중소기업 면접전형 일정이 겹쳐 한동안 갈등에 휩싸였다. 주변 친구나 선후배에게도 물어보고 취업센터에도 찾아가 계속 조언을 구했다. 그만큼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잘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인적성검사와 중소기업 면접전형 두 결과의 가능성을 분석했어요. 예를 들어, 인적성검사는 몇 배수가 합격했으니 최종 합격할 확률을 몇 퍼센트인지, 중소기업은 면접인원이 몇 명이니 합격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와 같이요. 최종적으로 대기업을 선택했는데 인적성검사에서 결국 탈락하고 말았어요. 정말 허무했죠.”
올 상반기 경영지원 직무에 지원한 김민아 씨 역시 마찬가지다. 김씨는 한 중소기업의 까다로운 채용절차로 인해 고민에 빠졌다.
“경영지원 직무였는데 PT에 게임면접까지 포함돼 있었어요. 마침 한 대기업 면접과 일정이 비슷했는데 이 중소기업의 면접을 준비하려면 대기업 면접을 제대로 대비할 수 없었죠. 둘 다 놓치는 건 아닌지 매우 걱정했던 기억이 나요.”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 선별이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원동기가 뚜렷한 구직자를 뽑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근 각 계열사의 채용일정을 전부 통합해 눈길을 끌었던 한 대기업 그룹사의 채용팀 관계자는 “지원자들의 무작위 지원을 방지하고, 정말 우리 회사에 입사를 원하는 구직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일정을 통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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