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의 고군분투 캠퍼스 적응기



빨간 공갈 폴라티에 고리바지를 입고 동서남북 점을 봐주겠다고 다가오는 복학생, 입으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종이사진기를 들이대는 복학생. TV에서 “똥칼라파워” 를 외치던 복학생 유세윤을 볼 때만 해도 그저 저 멀리 웃긴 얘기인 줄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당신 옆에서 아직 채 자라지 못한 짧은 머리를 하고 수업을 듣고 있는 예비역의 이야기이며, 언프리티 랩스타의 치타 뺨치는 눈화장을 하고 왔지만 사실 신입생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공을 숨기는데 여념이 없는 복학생 언니의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도 선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때가 있었는데’, ‘마음만은 아직 파릇파릇한 새내기인데’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복학생들 이대로 영원히 '아싸'의 길을 갈 수는 없다.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은 지금까지 캠퍼스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복학생들을 위해 성공적인 대학생활 중인 복학생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외로운 복학생들이여, 주목하시라!




반갑습니다. 세 분의 휴학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하경 휴학 후 처음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맘껏 했어요. 하루에 한 권씩 책 읽기, 고전 영화 보기, 늘어지게 낮잠 자기와 같이 규칙적이고 얽매였던 생활패턴을 벗어났죠. 그렇게 충분히 쉰 후에 유통, 회계, 서비스 등 전공분야에서 다양한 알바를 하다가 제가 판매에 흥미가 있고 적성에도 잘 맞 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블로그 쇼핑몰을 시작한 것이 이때입니다. 옷을 판매하면서 여대생들이 좋아할 만한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을 같이 포스팅했어요. 포털사이트 메인에도 오르고 단골 고객들도 많아지면서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수익금을 전부 불우 아동들에게 기부하고, 알바로 마련한 목돈으로 유럽여행을 떠났어요.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었고 혼자 하는 여행동안 고초도 많았지만 우연한 기회로 관광안내소에서 잠시 일하는 덕에 수입이 생겨서 처음 계획보다 경비를 훨씬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지현 저는 사실상 강제휴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웃음) 나라의 부르심을 받아 군대에 다녀왔거든요. 하지만 2년 간의 군복무 기간동안 정말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요. 뻔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군대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이 정말 소중했다고 느껴요.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면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던데 그 말에 어느정도 공감하는 편입니다. 입대 전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통해 깨달았고 함께 값진 시간을 보냈어요. 또 무엇보다 남자로서 필요한 것들을 제법 갖추게 된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른들 대하는 법이라던가 운전, 공구 다루는 법, 그런거요. 또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도 충분히 갖게 되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4년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깨달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이 몸에 잘 배었다는 것입니다.
화정 저는 휴학한 이유 중 가장 컸던 것이 워킹홀리데이였어요. 비용마련을 위해 평소 관심이 많았던 회사에서 인턴쉽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이것저것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여비를 아끼려고 비자발급부터 모든 준비과정을 에이전시 없이 혼자 준비했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다 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결심과 함께 백만원을 손에 쥐고 편도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고 돌아올 수 있었어요. 사실 영어공부가 일순위였지만 호주에서 모은 돈은 어학원에 등록하는 대신 여행을 하는데 투자했어요. 대신 생활 속에서 영어를 많이 쓰려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항상 노력했어요. 그 덕에 영어실력이 남들이 모두 인정할 만큼 좋아졌어요. 이런 가시적 결과 외에도 휴학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많이 변화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내 안의 한계를 이겨내고 내가 보다 강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세 분 다 정말 값진 휴학생활을 보내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돌아온 캠퍼스 생활은 어땠나요? 하경 저는 일단 다시 규칙적이고 제한된 생활 패턴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막막했어요. 또 저를 무엇보다 힘들게 했던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척박함이었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던 동기들은 벌써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를 하거나 이미 취업을 한 모습을 보면서 괴리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휴학 후에 일명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을 쌓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도 저는 그저 놀고 먹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좇아온 것 같아서 한동안은 한없이 불안하고 울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현 스펙 없기로는 군생활만한 것도 없죠. 선배들이 군대 갔다오면 바보가 돼서 전역을 한다고들 했었는데 정말 전공과목으로 공부 했던 것들을 너무 많이 잊어버렸어요. 전공과목에서 기초가 되는 지식들에도 구멍이 생겨 버렸으니, 다시 공부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려면 몇 배의 힘이 드는 것 같아요. 또 이건 예비역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울 복학생 오빠가 교수님들께도 자꾸 ‘다나까’ 말투를 쓰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후배들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아요. 정말 외롭습니다….
화정 3년간의 휴학 후 돌아온 저에게 외로움 같은 것은 이미 사치예요. 혼자 수업 듣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도서관 가는 정도는 겸허히 받아들였죠. 다만 늦깎이 복학생의 과열된 열정이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신차려보니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어요. 열정만으로 벌려놓은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지, 오랫동안 책상 앞을 떠났다 보니 공부를 하려고 해도 내용이 머리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그 느낌,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라 공감이 되네요. 그래도 새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이 다 돼가는 지금은 세 분 모두 복학생활에 잘 적응하신 것 같은데 본인만의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하경 제 자신에게 꽤나 예민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휴학하고서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복학 후 슬럼프에 빠지지 않으려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암시’ 예요. 나의 도전을 후회하지 않고, 이제는 아름다운 경험이 된 지난 날의 두려움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거죠.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많은 돌봄과 관리 속에서 성장해 온 우리는 어쩌면 애벌레처럼 여리고 약한 모습이었을지도 몰라요. 휴학생활이 진정한 성인, 즉 나비가 되기 위해 보낸 시간이라 자주 되뇌었더니 나의 가치가 향상되고 생활에 활기가 생겼어요.
지현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하루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전공 공부에 매진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비로소 강의시간 교수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할 뻔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새로운 것을 쭉쭉 흡수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잖아요.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아니까 공부가 훨씬 재밌어졌어요. 전공수업에 맨 앞자리에 앉아 대답도 더 열정적으로 하다보니 후배들이 저를 보는 눈빛도 사뭇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는 제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화정 비결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의 구분을 명확히 지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커피를 마시려고 해도 팔팔 끓는 채로는 혀만 데이고 마실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기다린답시고 방치했다가는 식어서 맛이 없는 커피가 되는 것이 다반사구요. 복학생의 열정으로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려면 스스로가 보온병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당장 해야 할 전공공부를 성실히 따라가면서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지금을 노려 오픽 AL을 성취했어요. 한편으로는 졸업이 코 앞인 만큼 잊지 못할 캠퍼스의 추억을 남기고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입해서 얼마 전 공연을 올렸답니다. ‘화석’이라 불릴까 걱정했지만 귀엽고 착한 후배들과 친해져서 학교생활이 훨씬 즐거워졌어요.


아직 힘들어하고 있는 복학생이나 갈팡질팡하고 있는 휴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하경 큰 기대와 계획으로 시작했지만 결과가 그에 못 미쳤던 것 같아 후회하고 있는 복학생이 있다면 속상해하지 마세요. 휴학은 말 그대로 학업을 잠시 쉰다는 의미잖아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기에 휴학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당신은 이미 휴학을 멋지게 마무리했음을 믿습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휴학생 여러분도 엉망진창일지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코 이 시간을 재미없는 일을 하고 참고 견디며 보내지 마세요. 복학 후에 그런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모든 복학생,휴학생 여러분께 제 좌우명인 괴테의 시 한 구절을 바칩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라” 도전하세요. 우리는 청춘입니다.
지현 군입대로 휴학 중에 계신 분들께 감히 조언할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군장병 여러분 힘내십쇼! 다만 이제 제대하고 복학한 전우들에게 군생활을 통해 얻은 것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지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모두 다른 모습,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얻은 것들이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버릴 것 하나 없는 귀한 것들임을 잊지 마세요. 또 혹시 다른 명목의 휴학생이 이것을 보게 된다면 이것 하나 명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휴학은 방학이 아니라는 것. 학기를 쉬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공부를 놓지 마세요. 영어공부, 자격증공부가 아니라도 삶 곳곳에서 나를 위한 지혜를 구하는 공부를 계속하세요. 복학 후 당신도 핫한 ‘뇌섹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정 복학생의 오랜 애환, 혼자 밥 먹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누가보면 어쩌나 편의점에서 후다닥 삼각김밥에 우유를 먹고 나오거나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상큼한 후배들 사이에서 복학생이 살아남으려면 길러야 할 것이라면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 아니겠어요? 오늘도 당당하게 맛있는 점심 드세요. 휴학한 분들에게는 휴학할 때 가진 목표를 이루려면 구체적인 계획을 꼭 세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휴학한 동안에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가거든요. 정신차려보면 복학신청서를 내고 있고 또 정신차려보면 수강신청하려고 마우스를 잡고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소소할지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것이 훗날 보람 있는 휴학생활을 했구나 하고 웃을 수 있는 바탕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글 한소영 대학생기자(서울여대 국어국문 4)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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