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게임 ‘내꿈은 정규직’, “그래도 서류전형은 없잖아요”

‘내꿈은 정규직’ 게임 개발자 이진포씨사장 되면 비밀 엔딩 있어“난이도가 너무 높다고요? 그래도 서류전형은 없잖아요”





‘저 지금 98번째 회사입니다’ ‘전 야근하다가 체력 떨어져서 자진퇴사…’ ‘차장까지 됐다가 잘렸는데 경력 채용에서 계속 서류 탈락이네요’
돈 없고 빽 없는 취업준비생을 사장까지 승진시키는 모바일게임 ‘내꿈은 정규직’은 출시 2주 만인 지난 4월 13일, 이용자 수가 27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마켓에만 출시한 상태이며 4월을 목표로 곧 애플 스토어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면접문턱에서 수 없이 탈락하고 또 입사 후에도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을 보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불평이 쏟아질 때마다 개발자이자 퀵터틀 대표 이진포 씨(28)는 “그래도 게임에는 서류전형이나 인적성검사는 없지 않냐”며 되묻는다.
3년간 세 번의 권고사직을 경험하며 그가 몸소 느꼈던 ‘직딩’의 애달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게임 ‘내꿈은 정규직’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잘려본’ 개발자가 만든 ‘잘리는’ 게임
‘내꿈은 정규직’은 무차별하게 잘려 나가는 직장인을 사장까지 승진시키는 게임이다. 사장이 되기 전, 주인공은 잘해도 잘리고 못해도 잘린다. 대신 잘릴수록 생존확률이 늘어난다. 부딪히고 수없이 잘리면서 단단해지는 것, 그게 개발자 이진포 씨가 몸소 겪은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었다.
예고 졸업 후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이진포 씨는 2010년 게임회사에서의 첫 직장생활 후 2014년까지 3년 동안 세 차례의 권고사직을 경험했다. 업계 특성상 사업부나 회사 자체가 통째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31일, 세 번째 회사를 퇴직하던 날, 짐을 든 채 회사 앞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데 문득 당시 유행하던 게임인 ‘살아남아라 개복치’의 돌연사하는 개복치가 떠올랐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개복치와 역시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잘린 자신이 다를 게 뭔가라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 순간, ‘어?’하는 단발마와 함께 그의 머릿속에 ‘내꿈은 정규직’의 얼개가 펼쳐졌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직접 개발해보고 싶다는 꿈도 꿨어요. 그래서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월급에서 10~20만원씩 떼어 자금을 마련했는데 세 번째 회사를 퇴직하던 시기에 마침 제 원룸 안에 컴퓨터며 기반들이 마련 돼 있더라고요. 그날로 본격적으로 꿈을 이뤄보기로 결심한 거죠.”
그렇게 여자친구와 단둘이 3개월간 꼼짝없이 작업에 매진했다. 프로그래밍은 여자친구가 맡았고 나머지 기획이나 그래픽, 테스팅 등 전반적인 부분은 이씨가 담당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행 요소가 필요했다. 그때 떠올린 게 스토리텔링이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키워드를 스토리로 엮어 사용자의 공감을 끌어내기로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취재도 했다.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직장생활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원래 다 그렇잖아’였어요. 아무리 잘리고 직장이 바뀌어도 다들 ‘원래 힘들잖아’라는 식이었죠. 문득 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회사를 세 번이나 옮기면서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던 거죠. 마치 노예가 된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무차별하게 잘려나가는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잡고, 사용자들이 자신의 캐릭터가 잘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비로소 ‘왜 잘리는지’에 의문을 갖고 스스로에게도 대입해보길 원했던 거죠.”





주말 특근? “역시 일은 주말에 해야 제 맛이죠”
주인공은 취업준비생부터 시작한다. 면접에 합격하면 인턴이 되고 이후 계약직까지 거쳐야 비로소 정규직 신입사원이 된다. 대리부터는 부하직원에게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일주일 전에는 ‘갈굼’ 패치도 추가했다. 차장 이상이 되면 특정 부하직원을 지목해 온 몸을 불살라 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부하직원이 열심히 일하면 주인공의 통장잔고도 올라간다.
요즘 화두인 승진체계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각 단계별로 승진기회가 주어지는데 계약직은 두 번의 기회 안에 승진하지 못하면 잘린다. 계약직의 최대 가능계약 기간이 2년인 점을 반영한 것이다. 정규직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후에도 승진하지 못하면 스스로 눈치가 보여 자진 퇴사하게 된다.
직장인의 삶이 조금 더 생생하게 녹아있는 카테고리도 세 개 있다. 모험과 스펙업 그리고 알바다. 모험은 주인공이 유일하게 스스로 잘못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 후 잠깐 존다든지 사내연애를 하다가 걸리면 곧바로 권고사직이다. 전날 연차를 신청하거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켜도 잘린다.
“전에 팀장님이 한 턱 쏘겠다며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는 자장면을 시킨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탕수육이 먹고 싶던지… 결국 시키지 못했지만 게임 주인공을 통해서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죠.”

스펙업은 말 그대로 스펙을 올리는 곳이다. 번 돈으로 승진확률을 높일 수 있는데 부하직원의 일 속도를 높일 수도 있고 화술을 올려 소위 ‘말발’로 승진할 수도 있다.
세 번째 메뉴는 알바다. 이 알바는 이씨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다. 알바를 클릭하면 동영상이나 팝업 형태의 광고가 뜨도록 했다. 최근에는 광고가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어 갯수를 조금 줄였다.
근무 중간 중간 대화 이벤트도 등장한다. 한창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상사가 와서 한 마디 건넨다. ‘돌잔치에 오라’든가 ‘주말에 특근을 하라’는 식이다.
이때 ‘역시 일은 주말에 해야 제 맛이죠’라며 제의를 수락하면 돈을 벌지만 거절할 경우 역시 잘린다. 조만간에는 ‘사장님과의 면담’도 추가할 계획이다.
대화이벤트 중에는 로또도 있다. 사용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당첨 확률은 실제치보다 조금 높게 해놓았다. 하지만 당첨이 돼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다니던 대로 회사를 다니고 역시 확률에 따라 잘리기도 한다. 이 역시 친구들과의 대화내용을 그대로 반영했다.
“친구들과 ‘로또에 당첨되면 뭘 할까’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결론은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한다’였어요. 로또가 돼도 집 한 채 사기 힘들다면서요.”
하지만 이씨가 무엇보다 공을 많이 들인 곳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멘트다. 자칫 그냥 ‘스킵’으로 지나치기 쉽지만 잘 들여다보면 99%는 그가 실제 면접 직전 다졌던 각오들이 녹아있다. ‘이 커다란 빌딩 안에 작은 내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와 같은 식이다.
“대구에서 면접을 보러 서울로 올라왔는데 마침 점심때쯤이라 근처 직장인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들이 목에 건 사원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면접을 보러 들어가며 ‘나도 저렇게 목걸이를 달고 밥 먹으러 가고 싶다’라는 꿈을 키웠죠.”
승진을 잘 하는 노하우도 있을까. “만약 알았으면 제가 이 게임을 만들었을까요. 하하하.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스펙을 올려도 주인공이 무적이 되는 건 아니에요.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고… 직장인에게는 다양한 변수가 있잖아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뭐.”
이렇게 어렵게 사장이 되면 이씨가 특별히 숨겨둔 비밀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3년의 회사생활동안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씨는 “아직은 공개할 수 없지만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모든 세대가 ‘취업난’에 공감할 수 있기를
업계에서도 매일 수백 개의 게임이 쏟아지는 가운데 홀로 승승장구하는 ‘내꿈은 정규직’의 인기는 이슈다. 2~3주전만 해도 통장잔고를 걱정했던 이씨 역시 지금의 인기가 얼떨떨하기만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대구에 계시는 그의 부모님이다. 부모님에게는 아직 게임 출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게임을 보시고 ‘우리 아들이 그동안 이렇게 힘들게 회사를 다녔구나’라며 마음 아파하실까 봐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고요. 다음 달 게임 수익이 입금되면 고향에 내려가 찾아뵙고 맛있는 거라도 사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게임시장의 주기가 워낙 짧다보니 이씨는 벌써부터 다음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사용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실제로 이씨에게는 하루에도 몇 통의 메일이 도착한다. 직접 다음 게임의 아이디어를 기획서로 만들어 보내주기도 한다. ‘내 꿈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댁식구와의 일거수일투족을 녹여보는 게 어떻냐”는 의견도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게임을 하다 울었다는 취업준비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애초 계획했던 주 타깃층인 2030세대 외에 최근에는 초?중?고등학생이나 장년층 사용자도 늘고 있는데 모두 ‘취업’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냐’고 반문하고 어른들은 ‘우리 아들딸이 이렇게 힘들게 일했구나’라며 안타까워해요. 제 게임을 통해 모든 세대가 취업이라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이씨가 이용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냥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격려도 불평도 모두 감사할 따름이죠. 다만 제 게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의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게임이 한번쯤 ‘왜 이렇게 힘들어야하지’라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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