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길] “깊고 넓은 삽질이 그대를 즐거운 인생 으로 인도하리라”
입력 2012-06-22 18:14:01
수정 2012-06-22 18:14:01
‘삽질정신’의 빡씬 그녀 박신영
“아무것도 아니라서 무한한 사람, 빡씬영입니다!”누가 공모전 여왕 출신의 기획의 달인 아니랄까봐 자기소개부터가 남다르다. 스스로의 표현처럼 빡씬 청춘을 보내고 그 덕분에 빡씬 프로필을 만든 그는 공모전 세계에서 2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화성인’ 스타. 공모전 도전 과정과 노하우를 담은 책 ‘삽질정신’은 대학에서 부교재로 채택할 정도로 많은 이가 읽고 있다.
그쯤 했으면 한숨 돌리고 두 다리 쭉 뻗을 만한데, 여전히 그는 빡씬 삶을 자청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회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 광고·마케팅 기획자에서 교육 콘텐츠 개발 및 강의 전문가로, 남들이 전혀 예상 못한 변신을 했다. 그에게 ‘안주(安住)’란 다른 세상 이야기인 셈. 오히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게 되었고, 이제 그 일을 하기로 했을 뿐”이라며 두 눈을 반짝였다.
인터뷰는 대학생 팬 2명과 함께 멘토와 멘티의 대화처럼 시종일관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2시간여가 지나고 장신혜(한국외대 일본어 3) 씨가 가방에서 모서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책 ‘삽질정신’을 꺼냈다. “이야~” 하는 탄성이 이어지고 잠시 후 책 속지는 정성 들여 쓴 문장으로 채워졌다. “당신의 깊고 넓은 삽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박신영 Dream.”
폴앤마크 콘텐츠사업팀 소장
전 제일기획 AP(Account Planner), AE(Account Executive)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졸업
2004~2007년 광고·마케팅·컨설팅 부문 공모전 23관왕
(제28회 제일기획 기획서 부분 대상(Yepp/개인참가), 제27회 제일기획 기획서 부문 대상(애니콜/개인참가), 제19회 LG애드 기획서 부문 대상(대한항공/개인참가) 등)
저서 : 삽질정신(2008, 다산북스), 렛츠 그루브(2010, 이민아 공저, 웅진윙스)
대개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출전하는 제일기획 공모전에 혈혈단신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2년 연속 대상 수상. 제일기획과 함께 공모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LG애드 공모전에 혼자 참가해 또 대상 수상. 이 밖에 한국능률협회 연구공모전,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람회, 대홍기획 공모전, 금강기획 공모전 입상….
박신영 폴앤마크 콘텐츠사업팀 소장이 공모전 세계에서 ‘레전드’라 불리는 이유다. 광고, 마케팅, 컨설팅 부문에서 웬만해선 깨지기 힘든 23관왕의 기록을 세우면서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만나고 싶은 대학생’ 1위에 오르는가 하면 대학가에서 ‘박신영 기획서 스터디’가 유행하고, 강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2008년에 펴낸 책 ‘삽질정신’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통하며 ‘경쟁자가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 번도 어려운 공모전 입상을 밥 먹듯 하고, 선망의 직장 제일기획에 어렵지 않게 입사하니 그가 평탄하기만 한 길을 걷고 있다고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하늘이 내린 재능 덕에 별 힘 들이지 않고도 성공하는 것이라고 지레 추측하는 식이다. 이런 선입관은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그의 20대는 ‘삽질(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나온 말로, 헛된 일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네이버 국어사전)’의 연속이었다. 경북 포항의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03학번인 그에게는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게 더 많았다.
“옷을 좋아해서 예쁜 옷을 많이 사고 싶은데 어머니는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않으셨어요. 스스로 등록금과 체면유지비를 벌어야겠다, 생각하고 공모전에 참가하기 시작했죠. LG애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때 심사위원이 혼자서 참가한 이유에 대해 물었어요. 솔직하게 답했죠. 나누지 않을 상금이 필요했습니다라고.”
약점은 또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감성이 지나치게 충만해 실생활이 불편할 정도라는 게 그에겐 큰 고민이었다. 슬픈 노래 한 곡을 듣고 하루를 망칠 정도였다니 알 만하다. 문제를 깨달은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어요. 감성이 아니라 논리 흐름(logic flow)을 보려고 애썼죠. 어느 순간이 되자 남들보다 더 냉철해지더라고요. 논리에 집중하니 나중엔 논리적인 기획서 쓰는 것까지 좋아졌어요.”
처음부터 공모전에 관심이나 남다른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다. 먼저 관심을 쏟은 분야는 영화였다. 영상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13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콧노래를 부르다’라는 작품으로 영화제까지 출품한 후에야 ‘내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멈췄다고. 공모전은 그 다음에야 발견한 영역이다.
“남을 이길 자신이 있고 능력이 넘쳐서 도전하는 게 아니에요. 1학년 하반기에 공모전을 시작해 1년 넘게 삽질만 했죠.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데도 멈추지 않았어요. 3학년이 돼서야 하나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내로라하는 공모전에서 대상도 탔죠. 그때 알았어요. 후달림(체력 따위가 부족할 때 또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힘이나 양이 부족하거나 미치지 못할 때 주로 쓰는 표현-네이버 국어사전)을 생까고,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액션 플랜을 짜고 실행하기. 이게 정답이라고요.”
천재를 이기는 유일한 무기 ‘100번 정신’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파는 게 박신영표 삽질의 특징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엔 담담하다고.
“‘삽질정신’ 저자이지만 무조건적인 삽질은 싫어합니다. 목적 없는 삽질은 삽질 자체로 끝나고 말기 때문이죠. 전략적인 삽질이 필요해요. 여기 조금 파고, 저기 조금 파보세요. 힘은 드는데 별 성과가 없고, 그러니 억울하기만 하죠.”
그가 말하는 ‘전략적인 삽질’의 첫 번째 조건은 ‘깊고 넓게 파기’. 뭐든 한번 시작하면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파고들라는 이야기다. 스스로 그 효과를 체험했기에 후배들을 만나면 늘 강조하고 있다.
“도전 첫 해에 20여 개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몽땅 떨어졌어요. 논리적인 사고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걸 깨닫고 한 가지 목표를 정했죠. 100개의 기획서를 읽어보자! 10개, 30개, 70개를 지나면서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논리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 다음엔 다른 사람이 만든 PPT 100개 보기, 경영전략책 100권 보기, 동화책 100권 보기 등으로 옮겨갔어요. 사실 공모전을 휩쓴 비결이 여기에 있답니다.”
이른바 ‘100번 정신’이다. 그는 “반복해서 100번 하기야말로 천재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힘줘 말했다. 결국 그의 화려한 프로필은 100번 정신의 산물이었던 것. 또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보너스이기도 하다.
‘사람 브랜딩’에 도전하다
그는 졸업과 함께 제일기획에 입사했다.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제치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광고쟁이들만 모인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 금융, 항공, 화장품, 식품, 생활용품, 관광, 건설 등 브랜드 경쟁 PT와 전략 기획 업무를 맡으며 명실상부한 ‘프로’로 성장했다.
그러다 운명적 순간이 갑자기 찾아왔다. 신라호텔에서 16시간 기획 및 PT 교육을 하면서 난생처음 느끼는 감동과 재미를 맛보았던 것.
“처음에 PPT 파일에 화살표 하나 못 넣던 사람들이 나중에 자신이 만든 기획서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는 걸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었죠. 자연스레 교육 콘텐츠와 강의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지난해 말 그는 제일기획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교육 콘텐츠 기업인 폴앤마크로 이직했다. 그를 아는 많은 이가 놀랐지만 정작 그는 새로운 도전이 신나기만 한 표정이다.
“광고회사 일이 제품을 브랜딩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사람을 브랜딩하는 셈이죠. 제품에 콘셉트를 부여하고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거든요. 내가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요즘 그는 각종 기관, 학교, 단체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펴는 한편 독창적인 교육 콘텐츠 만들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형 강연콘서트, ‘청년, 청와대를 만나다’ 투어 프로젝트 등에 멘토로 참여해 환호를 받고 있기도 하다. 7~9시간 동안 내리 기획만 공부하는 ‘빡씬기획스쿨’ 진행도 맡았다. 이런 일 폭탄도 그에겐 즐거운 일상이다.
“얼마 전 코이카, 에콰도르 교육부와 협력해 에콰도르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교수법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에콰도르는 위도, 경도, 적도가 모두 제로(0)라고 해요. 그런데 에콰도르의 별명이 ‘세상의 중심’이래요. 이런 역설(Paradox)이! 하며 무릎을 탁 쳤답니다. 남들은 움직이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아 불안할 때 에콰도르의 역설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멈춰 있는 내가 사실은 세상의 중심이다!”
‘빡씬영’이 앞으로 어떤 분야에 도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금 하는 모든 일이 목표를 정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녀의 빡씬 삽질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빡씬영 노트 ①
‘전략적 삽질’을 위한 3가지 포인트
POINT 1 깊고 넓게 파라
지금 당신은 성(城)의 기둥 자리를 파고 있다. 얇고 좁게 파면 성은 작고 낮아지고, 깊고 넓게 파면 웅장한 성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둥 자리를 파기 때문에 그 무엇도 예상할 수 없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 불안한가? 당신만 불안한 게 아니다. 남들도 다 불안하다. 관건은 누가 그 불안함을 생까고 끝까지 깊고 넓게 파느냐다.
POINT 2 눈 딱 감고 100번만 파라
처음은 늘 어색하고 서툴다. 성의 기둥 자리를 파는 삽질이 버벅대는 건 당연하다. 당신만 서툰 것 같아 걱정인가? 남들도 서툴다. 딱 100번만 파보자. 100번을 파고 나면 무슨 일이든 못하고 싶어도 못할 수가 없다. 100번의 삽질로 익숙해진 능력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도움이 된다. 인생에 헛 삽질은 없다.
POINT 3 See the unseen! 바라고 믿어라
100번을 향해 삽질을 해도 성과가 쉬 보이는 건 아니다. 당신만 안 보이나 싶은가? 남들도 안 보이긴 마찬가지다. 청춘의 시기에는 뭘 잘하는지, 이 남자가 내 남자가 맞는지 모든 게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불변의 진리가 있다. 인생은 딱, 자기가 바라고 믿는 만큼 산다는 것. 3년 뒤, 5년 뒤 당신을 그려보라.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어보는 정신, 그게 청년정신 삽질정신 아닌가.
빡씬영 노트 ②
생각하는 방식 선택하기
연역·귀납·발상… 당신의 선택은?
흔히 생각하는 방식을 연역, 귀납으로 나눈다. 귀납은 한 가지의 구체적인 사실에서 일반적인 원리를 도출해내는 것이고, 연역은 일반적인 원리를 최초의 전제로 하고 거기에서 개별적인 경우를 추론하는 것이다. 삼단논법이 대표적인 연역법 중 하나다.
박신영 소장은 이 모든 생각 방식을 ‘발상’으로 바꾸어 보라고 말한다. 단계를 따르는 연역이나 하나의 사실에 근거하는 귀납 모두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한다는 것. 반면 ‘발상’은 여러 가지 결론으로 사방팔방 생각을 뻗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친구들끼리 모여 커피 마시면서 누가 더 못났는지 경연하는 건 아닌가 돌아보세요.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택하고 움직이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누구나 다 후달리면서 살아요. 후달림을 생까고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액션 플랜을 짜고 실행하느냐, 여기에서 승부가 갈리죠.”
빡씬영 노트 ③
역설(Paradox) = 인생 뒤집기 한판!
박신영을 말하는 키워드 ‘삽질’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역설, 패러독스(Paradox). 그는 자신의 청춘을 ‘역설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 도전의 세계로 가는 밑거름이 됐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 게 냉정한 논리가 빛나는 기획의 달인으로 만들었고, 광고로 유명해졌지만 그 성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으니 그 모든 과정이 ‘역설’이라는 것.
“역설은 ‘뒤집기’의 다른 말이죠. 약점이 많았기 때문에 극복 의지가 생겼고,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진 겁니다. 잘난 사람은 가지지 못하는 게 바로 약점이라는 무기입니다. ‘~ 때문에’라고 핑계대지 말아요. 끈질긴 삽질로 뒤집기 한판 해봅시다!”
인터뷰 후기
“전력을 다해 깊고 넓게 파리라”
이규현(을지대 의료경영 3)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박신영이라는 사람을 만든 원동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삽질. 어떤 일을 하든 전력 질주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뜨거운 열정으로 멘토가 되어 주는 그녀야말로 이 시대의 1%가 아닐까.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라”
장신혜(한국외대 일본어 3)
정신없이 바빠서 일에 치여 ‘빡씬’ 삶을 사는 사람일 것 같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뇌리에 남는다. 힘든 현실 탓만 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살라는 충고다. 요즘 20대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말이 또 있을까.
글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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