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라떼 한 잔 값도 못 받는 알바…“최저임금, 현실성 없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실

“내년 최저임금이 458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불볕더위가 시작된 7월 말, 서울 대학가 주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연일 치솟는 수은주에 그렇지 않아도 불쾌한데 더 기분 나빠지는 뉴스라는 짜증 섞인 반응이 이어진다.

“4580원으로는 생활은커녕 일의 보람조차 느낄 수 없다” “최저임금으로 등록금 마련해 졸업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이다” 등 격한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온라인에서도 성토가 이어졌다.

한 트위터리안은 “최저임금이 ‘최저임금’이라는 이름으로 있는 이상 현실성은 없을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했고, 어떤 이는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임금으로 하자”는 독설을 날렸다.

물론 모든 대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 시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대학생들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르바이트’라는 이름 아래 저임금 노동의 최일선에 서 있는 대학생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그가 합정역에서 홍대역까지 걷는 이유

용돈 벌이를 위해 홍대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윤원(21) 씨는 “눈물 젖은 햄버거 드셔봤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가 받는 시급은 4800원. 근무 시간은 평일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9시간이다.

“야간 근무를 하면 시급의 1.5배 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그런 제도가 있었어요?”라며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가 생각하는 적정 급여는 시간당 6000원 정도.

“야간 근무는 물건도 날라야 하고, 취객도 상대해야 해요. 한번은 제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서 반말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상당히 불쾌했어요.”

김 씨가 사는 곳은 5호선 화곡역 근처다. 조금 먼 거리가 아니냐고 묻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근무 중인 편의점은 홍대입구역 근처. 하지만 그는 바로 전 역인 합정역에서 내린다. 홍대입구역까지 가면 100원이 더 나오기 때문.

“‘나 자신을 너무 독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적은 돈 받고 일하니 이것저것 다 따지게 되더라”며 “다이어트하는 셈치고 기분 좋게 걸어다닌다”고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는 근무하는 중에 새우버거가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일 끝나고 런치타임까지 2시간 반 넘게 기다렸죠. 그때만 할인이 되잖아요. 햄버거를 받아들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또 다른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마츠오카 유미(22) 씨. 타지에 유학 와서도 ‘용돈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는 그는 “시급 수준이 너무 차이 난다”며 불만을 토했다.

“한국은 음식만 짠 것이 아니라 급여도 짜다”고 말하는 그가 일본 편의점에서 받았던 시급은 1200엔. 원화로 환산(100엔=1340원 기준)하면 1만6000원 정도다. 비슷한 노동 시간과 업무 강도지만 한국 편의점에서 받는 돈은 3분의 1이 채 안 된다.

학비는 그나마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마츠오카 씨에게 “대단하다”고 하자 “저야 (일본에)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이 정도 돈을 받으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한국 대학생이 더 대단한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 보니 일본으로 유학 갔던 기자의 지인 중 한 학기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1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던 사람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얘기다.


짜디 짠 시급만큼 눈물도 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앉아서 쉴 수 있고, 책·신문을 읽거나 DMB를 통해 몰래 TV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식점 아르바이트는 일도 고되고 임금도 높지 않다.

한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황정인(23) 씨가 받는 시급은 4800원. 법정 최저임금보다 480원이 높지만 업무 강도는 웬만한 중노동에 가깝다고 얘기한다.

“쉬려고 하면 손님이 부르는 통에 앉아서 쉴 틈이 없어요. 잠시 쉴 수 있을 때는 식사 시간뿐인데 빨리 먹어야 해서 그나마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힘들어요.”

근무 시간은 오후 5시부터 식당이 문 닫는 밤 10시 30분까지. 밤늦게 집으로 가는 길에 이틀에 한 번꼴로 꼭 사는 것이 있다. 바로 ‘파스’다.

“5개 들어 있는 파스를 사서 발목, 허리에 하나씩 붙이면 좀 괜찮아져요. 계속 서 있어야 하니까 가끔 다리가 붓기도 하더라고요. 가끔은 ‘차라리 좀 위험해도 돈 많이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시급이 낮다 보니 높은 급여를 주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는 역시 과외. 시급으로 환산하면 보통 5만~8만 원으로 상당히 높을 뿐 아니라 특별히 몸이 힘들거나 준비하는 데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을 선호하는 부모가 많아진 데다 상위권 대학 재학 중인 학생을 고용하기 때문에 과외 자리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전 영역 1등급으로 소위 ‘명문대’에 재학 중인 Y씨는 “학생과 면담까지 하고 나왔는데, 결국 더 잘나가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뺏겼다”고 말했다.

몸을 많이 쓰는 아르바이트도 학생들이 많이 찾는 자리다. 대형 마트, 주유소뿐 아니라 일용직 건설 현장에서 대학생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아르바이트도 꺼리지 않는다.


소위 ‘마루타 알바’로 불리는 의약품 생동성 실험에 참여했다는 H씨는 “익명 처리해준다는 보장이 없으면 인터뷰 안 하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이틀간 병원에 누워 잠자고 만화책도 뒤적이며 총 18시간을 보낸 대가로 받은 돈은 45만 원.

별다른 노동 없이 매 시간 피만 뽑히면 됐다. 안전성이 입증된 약품들로 실험하기 때문에 몸에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무슨 약을 투여했는지 알려주지 않거든요. 나중에 들은 바로는 ‘어린이용 식욕 증강제’라는데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지는 모르겠어요. 약 기운 얼른 빠지라고 며칠간 사우나에 가서 땀도 빼고 물도 많이 마셨죠.”

그는 “부모님께 죄송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돈은 쉽게 벌었지만 부모님 얼굴 뵐 때마다 몸을 함부로 한 것 같아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세상이 원래 이런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사진 한국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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