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 ‘늦었다 실망하지 마’…꿈꾸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취업 의지를 꺾는 요인 중 하나. 바로 ‘나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은 점차 의문으로, 회의로, 자괴감으로 그 이름을 달리한다. 기업에서 나이 많은 구직자를 선호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지레 겁먹기 쉽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늦깎이 구직자들이 반가워할 만한 이를 만나봤다. 정재은 씨는 30세에 처음 기업에서 인턴십을 경험했다. 그리고 32세 취업문에 골인했다. ‘뭐든 다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원했고, 결국 원하던 바를 손에 쥐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정재은 씨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원서 내면 합격하겠지 했는데 어느 순간 시대가 바뀌더라고요. 스펙이 중요해지면서 이것저것 갖춰야 할 게 많아졌어요.”

정재은 씨는 이 대목에서 소리 높여 말했다. 그는 99학번. 시대 흐름을 제때 타지 못한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했다. 정 씨는 졸업 후 언어영역 강사로 뛰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과외를 하고, 4학년 때부터 틈틈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였다.

“아르바이트하던 학원에서 추천해줘 본격적으로 강사 일을 시작했어요. 취업 준비에 올인해야 하는데 돈을 벌다보니까 절실하게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취업을 권유했지만 정 씨는 활발한 성격상 말하는 직업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한때는 기자를 꿈꾸다가 한 케이블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7년. 어느 순간 20대가 훌쩍 지나버렸단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몇 시간씩 서서 강의하니까 목소리도 잠기고, 학원 강사일도 계속 자기 계발을 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야 성공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방송작가도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잘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아니었죠.”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아닌 안정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 씨의 가슴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하고 있는 일이 평생직장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은 ‘너는 왜 진작 안정된 직장을 알아보지 않았느냐’ 하셨고요. 늦었지만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 씨는 ‘공단, 공사’를 목표로 했다. 연령, 학력 등이 철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침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인턴십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었어요. 그런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국민연금 제도에 관한 자료를 찾아 달달 외워서 갔죠. 다행히 질문에 답변을 잘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나이 30세,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힘들게 잡은 인턴십, 신입사원 자세로 임해

정 씨는 인턴십에 모든 것을 걸었다. ‘뭐든지 다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좋은 평판을 확실히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누가 봐도 열심히 했다고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죠. 시키는 일이 없을 땐 선배들 책상 서류 정리라도 했어요.”

주로 담당한 업무는 민원 상담이었다. 정 씨는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간혹 국민연금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얘기를 듣다 보면 위축되기도 해요. 화가 나도 절제하면서 신뢰감을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통화를 했죠. 빨리 끊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한 시간 이상 얘기한 적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난 이곳에 들어올 사람이다’는 목표 의식이 있어서였다고. 어떤 허드렛일도 ‘회사에 들어오면 신입사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배들에게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사람도 나한테 마음을 열고 기회나 여러 팁을 줄 것 같았어요.”

인턴 생활 5개월, 그 후 1년 동안 직원 추천을 통해 계약직으로 일했다. ‘적성에 맞고 비전도 있다’는 확신이 들어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필기시험 공부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공사나 공단은 공채 계획이 예산이 확정된 후에 정해져서 언제라도 공채가 뜨면 합격하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준비했어요.”

2011년 상반기 공개 채용. 정 씨는 인턴십 경험으로 서류 통과가 됐고, 필기에선 1년 반 동안 준비했던 기량을 펼쳤다. 면접에선 연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인턴십 경험을 되살려 얘기했다.

“인턴 때부터 조직에 가졌던 목표 의식을 말했고, 민원 상담만큼은 자신 있다고 어필했어요.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상담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결과는 ‘합격’. 이미 1년 반 동안 수습 아닌 수습 과정을 거친 정 씨는 신입사원 351명 중 유일하게 본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제가 그렇게 합격해서인지는 몰라도 인턴십 기회를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1년에 100명 가까이 뽑으니까 한번 경험해보세요. 지사에서 꾸준히 계약직 상담원도 뽑고 있고 기회는 계속 있어요. 그 밖에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이쯤해서 한 가지 궁금한 것, 늦깎이 신입사원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

“아니요. 10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꾸준히 출퇴근을 하니까 감개무량해요. 제가 완전히 늦깎이는 아니에요. 신입사원들 나이가 다양해요. 88년 생부터 30대, 40대, 50대까지 있어요. 나이보다는 성실성, 봉사 정신, 인턴십 경험 등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정 씨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마지막으로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불안하진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사뭇 진지해졌다.

“친구들이 대학원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는 시기에 많이 힘들었어요. 20대 후반엔 잠이 안 와서 밤에 책을 그렇게 많이 봤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에게 언젠가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을 붙들었어요.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를 뿐이지 반드시 온다고요. 꼭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주어지겠지 생각했어요.”

일찍 적성을 찾지 못해서 또는 의도치 않게 취업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왜 나만 늦는 걸까’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길을 돌아서 왔기에 얻은 소중한 것들이 있다.

“졸업하고 바로 들어왔으면 이렇게 기쁘게 일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20대엔 뚜렷한 목표가 없었거든요.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올인한 적도 없고요. 바닥을 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된 것 같아요. 더 꼼꼼해졌고 예전엔 없던 습관도 생겼어요.”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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