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진의 재테크 편지] 주식은 피라미딩, 펀드는 애버리징

추세를 믿어 → 피라미딩, 종목을 믿어 → 애버리징

지난달에 이어 실전 트레이딩(trading) 기법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딩(pyramiding)’과 ‘애버리징(averaging)’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앞서 주식을 처음 배운다면 ‘주가가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파는’ 피라미딩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식 투자도 결국 습관의 산물이기에 피라미딩을 매매 습관으로 익히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애버리징 기법 역시 많은 투자자가 이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도박판에서는 ‘마팅게일 시스템(martingale systems)’이라고 해서 애버리징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테크닉이 존재합니다. 가령 도박판에서 1달러씩 베팅해 돈을 잃었다면 다음엔 2달러로 판돈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또 졌다면 이제 4달러로 판돈을 2배 키웁니다. 또 지면 어떻게 하냐고요? 예상했다시피 8달러짜리로 게임을 키웁니다. 이렇게 판돈을 키워가면서 도전하다가 어느 순간 딱 1번 승리한다면 앞서 잃었던 손실금을 단박에 만회할 수 있게 됩니다.

속칭 ‘물타기’라고도 불리는 애버리징도 기본 개념은 ‘마팅게일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각도로 분석한 후 성장성이 확실한 종목을 골랐다면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도 개의치 않고 계속 투자하는 것이죠.

주가가 더 많이 떨어졌다고요? 오히려 좋은 기회로 생각해 자금을 더 투입합니다. 이렇게 애버리징은 평균 매수단가를 낮추면서 따라붙다가 어느 순간 이 종목이 상승으로 전환한다면 대단한 수익을 올릴 수 있죠.


주가의 ‘추세’를 살펴볼 것

이렇게 보니까 피라미딩도 애버리징도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투자자들은 둘 중 어떤 기법을 선택해야 할지 헷갈려 하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각각의 매매기법을 활용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개별 주식 투자라면 피라미딩,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펀드 투자라면 애버리징 기법을 권해봅니다. 왜냐고요? 이에 대한 답변은 증권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추세(trend)’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추세가 나타났다” 또는 “상승 추세가 꺾였다” “추세가 형성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때 ‘추세’는 주가의 방향성인데요, 방향으로만 보면 상승과 하락 2가지가 존재하고 여기에 기간 개념까지 적용시켜 단기-중기-장기로 나누어 파악합니다. 장기 상승 추세, 단기 하락 추세 등과 같은 식이죠(뚜렷한 상승이나 하락 흐름이 없을 때는 ‘비추세’라고 부릅니다).

좀 더 자세히 정의해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승 추세라고 하면 연속적인 주가 흐름을 살펴봤을 때 상승 고점이 직전의 고점보다 높고 저점이 직전의 저점보다 높게 형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하락 추세라고 하면 연속되는 하락 고점이 직전 고점보다 낮고 저점이 직전 저점보다 낮게 형성되는 상태를 말하죠.

이때 개별 종목의 추세는 일반인이 절대 만들지 못합니다. ‘큰손’ 또는 ‘메이저 세력’ 등으로 불리는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자들이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기아차’라는 종목이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자 등과 같은 큰손들이 이미 몰려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이들이 만든 추세에 올라탈 수밖에 없고, 결국 피라미딩이 최선의 대응책이 되는 것입니다.

A라는 종목(기업)이 정말로 1~2년 내에 급등할 것 같다고요? 정말 그런 잠재력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주가의 흐름은 여러분이 만들 수 없습니다. 해당 종목에 메이저급 투자자가 들어와야 주가는 본격적인 추세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 재산을 털어놓고 애버리징을 했다고 해도 투자는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그냥 주구장창 마음 졸이면서 기다릴 뿐이죠.

하지만 대한민국 증시 전체를 놓고 보면, 즉 코스피 200을 벤치마크로 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다면 애버리징을 통해 따라붙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의 추세는 수많은 개별 종목 추세가 모아져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적립식 투자가 효과적입니다. A라는 개별 종목에 비해 시장의 추세는 사이클이 길고 진폭도 작기에 긴 호흡으로 물타기를 하면서 따라붙으면 실패 확률은 크게 줄어들죠.

‘큰손’들이 A라는 종목만 매수할 확률과 국내 증시의 대형주 200개를 매수할 확률을 비교하면 쉽습니다. 따라서 펀드는 애버리징을 하는 것이 더 우월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을 듣고 여러분 중 일부는 어쩌면 ‘가치투자’를 떠올렸을 것 같네요. 엄청난 잠재력과 놀라운 가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에게서 외면받아 저평가 상태에 놓인 A라는 종목을 그냥 둔다면 어떻게 가치투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치투자는 굳이 구분을 한다면 애버리징과 관계가 깊습니다. 제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향후 보안주가 주목받을 것이란 소신과 분석에 따라 ‘000 연구소’라는 종목을 3년 가까이 애버리징하는 투자자가 있는데요, 이 기간 동안 시장이 100% 넘게 오른 것에 비하면 수익률은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디 끝까지 가보자’라는 심정으로 계속 따라붙고 있죠.

그러고 보면 ‘피라미딩’과 ‘애버리징’의 선택 저변에는 본인의 성향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식을 즐기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스타일은 ‘피라미딩’이 적합한 반면, 주식 투자를 일종의 전쟁처럼 생각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스타일은 ‘애버리징’을 고수하죠.

하지만 주식 투자라는 것을 인플레이션을 이겨내고 은행 정기예금 이자보다 좀 더 많은 수익률로 현명하게 돈을 모으는 재테크라 생각한다면 ‘피라미딩’을 권해봅니다. 무엇보다 피라미딩을 하면 주식으로부터 영혼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주식을 좀 더 해보면 알겠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수익률로 설명될 수 없는 정말 큰 장점이거든요. 우리가 골치 아프게 주식을 하는 것도 결국 인생의 행복이라는 자유로움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A라는 종목을 반드시 선택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물타기’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요컨대 “‘추세’를 믿는다면 피라미딩을, ‘종목’을 사랑한다면 애버리징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정철진 경제 칼럼니스트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자로 9년 동안 일했다. 2006년 펴낸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로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올랐다. ‘1,013통의 편지-그리고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작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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