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스펙보다 휴머니티를 위한 공부를 하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의 대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에겐 두 가지 별명이 있다. 첫 번째는 ‘장비 같은 조조’. 장비의 의리와 조조의 전략적 마인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기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두 번째 별명은 ‘어라매’. ‘청출어람’을 뜻하는 사자성어에 그의 성인 ‘어’를 붙여 만든 것으로 고려대 총장을 거쳐 국가브랜드위원장, KB금융지주 회장으로서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여온 그에게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런 그가 ‘대학생에게 인기 있는 CEO’라는 별명을 하나 더 갖게 됐다. 가 지난 5월 창간 1주년을 맞아 전국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득표로 ‘닮고 싶은 CEO’에 뽑혔기 때문이다.

성별·전공에 관계없이 대학생들에게 고른 지지를 받은 어 회장을 만나 KB금융지주의 성공적 혁신 과정과 이 시대 대학생에 대한 조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KB금융지주에서 열린 대학생 기자와의 대담에서 그는 친근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회장이라고 하지 말고 총장이라고 불러.”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한 대학생 기자에게 던진 첫마디에 긴장했던 대학생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담은 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대학생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 창간 1주년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이 닮고 싶은 CEO’ 1위로 뽑힌 것을 축하드립니다.

어윤대 회장 영광입니다. 아내가 대학교수인데 소식을 듣고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당신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얘기하더군요. 아마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동료 의식을 느끼고 뽑아준 것 같습니다.

대학생 기자 국민은행에서 운영하는 대학가 특화 지점 ‘락스타존(樂star Zone)’ 아이디어를 직접 냈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윤대 회장 국민은행의 총 고객수가 2600만 명이고, 활동 고객은 1300만 명입니다. 명실상부한 한국의 리딩 뱅크(leading bank)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3~4년의 추세를 보면 젊은 고객이 늘지 않고 있어요. 친근한 이미지는 있는데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가 부족했습니다.

젊은 고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학교 앞에 카페형 지점을 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모임 공간이 부족한 학생들이 은행에 와서 동아리방을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슬림형 TV를 벽에 설치해 게임도 즐길 수 있게 했죠. 금요일엔 인디밴드를 불러 공연을 열었습니다. 은행과 문화가 만난 복합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전국에 42개 락스타 지점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점장이 청바지를 입고 일합니다. 또 가능하면 그 학교 졸업생을 직원으로 배정합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직원과 고객이 정보를 주고받죠.

원래 KB금융의 로고는 황금색인데 락스타존은 실내디자인도 각 학교를 상징하는 색으로 했습니다. 지점 이름도 이화여대는 ‘배꽃지점’, 연세대는 ‘독수리지점’으로 학교를 나타내도록 했죠. 철저히 수요자 중심의 구성입니다.

대학생 기자 최근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구를 하게 됐나요?

어윤대 회장 마찬가지로 젊은 고객들에게 KB를 알리기 위한 노력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야구를 많이 좋아하죠. 젊은이들을 위한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KB국민프로야구예금’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야구 구단의 성적에 따라 우대 이율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야구연맹(KBO)에 기부를 하게 됐고, 그 중 1억 원이 ‘세이브 더 칠드런’으로 갔습니다.

두산과 롯데의 게임이 있던 날을 ‘KB금융데이’로 지정하고 기부식을 하면서 시구도 하게 됐습니다. 공을 던졌는데 운이 좋게도 스트라이크가 됐어요. 방송을 중계하던 허구연 해설위원이 “이게 시구다운 시구”라고 칭찬했다고 하더군요. (웃음)

대학생 기자 젊고 다이내믹한 KB를 추구하는 것도 고려대 총장으로 대학생들을 만났던 경험이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총장으로 재임하실 때 느꼈던 대학생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어윤대 회장 요즘 대학생들은 굉장히 행운아예요. 나는 63학번인데 그때는 세계적인 기업에 입사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젠 한국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이 됐습니다.

여러분이 삼성, LG 또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또 그곳에서 열심히 해서 최고 경영자가 되면 세계적 기업의 회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상상을 못할 정도로 행운아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우리에 비하면 지금 대학생들은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 수준도 매우 높아졌고요. 학교 수업에 적응하기 위해선 놀 시간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조금 게을러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죠. 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졸업 후 ‘행복한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그게 예전과 지금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대학생 기자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스펙 전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윤대 회장 취업하는 데 스펙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학교생활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지 스펙만 보고 뽑진 않습니다. 최소한 국민은행은 그렇습니다.

다만 어느 직장이든 해외 비즈니스가 많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외국어 능력은 꼭 필요합니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스펙이라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맞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과도하게 스펙 경쟁에 치우쳐서 필요 없는 자격증까지 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기자 오랫동안 학계에 몸담았다가 비즈니스계로 진출하셨습니다. 학문적 지식이 실제 경영에도 도움이 되나요?

어윤대 회장 물론입니다. 고려대 총장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KB금융지주 회장이 됐을 때 “대학 행정만 한 사람이 어떻게 금융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난 40년간 국제금융을 가르쳤습니다.

대학교수이기도 했지만 금융계의 가장 큰 의사결정 기관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을 했고 공적자금 관리위원, 한국산업은행·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장도 거쳤습니다.

나만큼 여러 종류의 금융기관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해온 사람이 없습니다. 국제금융이라는 전공 분야에 이런 실무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에 KB금융지주에서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경영학에서는 리더십이 한 군데서 성공하면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되기 전 콜롬비아대학 총장이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엔 군대를 이끌기도 했지요. 네덜란드 ING그룹 얀 호먼 회장도 원래는 전자회사인 필립스의 최고재무관리자(CFO)였어요. 은행원은 아니었지만 지금 은행 쪽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기자 최근 농협 사례에서 보듯 정보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금융권 보안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보안사고 예방을 위해 KB금융지주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어윤대 회장 3개월 전 북한에서 디도스 공격을 했었죠. 금융기관 중에선 국민은행을 공격했는데 우리가 막아냈습니다. 대규모 금융기관인 만큼 KB는 전산화에도 많은 투자를 합니다.

지난 3년간 전산 시스템 현대화에 5000억 원을 썼습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앞선 투자를 합니다. 그만큼 전산 보안이 잘 돼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숫물에도 돌이 뚫릴 수 있듯 집중적으로 공격당한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문가들과 보안에 대해 시스템 회의를 하고, 우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는지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학생 기자 KB금융지주가 다른 금융그룹과 차별화되는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윤대 회장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습니다. 우리 직원 수가 2만6000명으로 해병대 숫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충성심은 해병대보다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응집력이 강하고 행동이 빨라서 의사결정이 되면 굉장히 빠르게 일을 집행합니다. 또 대부분의 직원이 착하고 순박합니다. 이런 것들이 KB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학생 기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로서 CEO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윤대 회장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선공후사(先公後私·사적인 욕심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함)’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나 또한 그것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지위가 높아졌을 때, 조직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할 때 그 자세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리더가 자신을 위해서만 일한다면 반발심이 생기겠죠. 물론 업계에 대한 전문지식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을 우선하지 않는 공명정대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기자 금융계열에 진출하기 원하는 학생들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요?

어윤대 회장 금융인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질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융기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신뢰감입니다. 나는 학교생활에 성실하고 기본에 충실한 사람에게 신뢰가 갑니다. 어떤 과목을 전공하든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력입니다. 좋은 직장일수록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인 JP모건에 갔다면 주말 없이 밤 11시까지 일해야 합니다. 기초체력 없이는 1~2년 견디기도 힘듭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큰 무기가 건강입니다.

대학생 기자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어윤대 회장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요약본을 읽으니까요.

그렇지만 중간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는 모릅니다. 책에 담긴 철학을 모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대화가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선진국 대학생과 한국 대학생의 기본적 차이입니다.

대학 생활을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만들 수 있는 기초 공부를 하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기초를 탄탄히 해야 깊이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스펙보다는 휴머니티를 위한 공부를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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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자 후기

백인화 _ 서울대 약학 4

지난 5월 6일 잠실에서 열린 야구 경기에서 인기 연예인이 아닌 KB금융지주의 어윤대 회장이 시구하는 모습은 내게 참신한 충격이었다.

어 회장과의 만남을 더욱 기대한 이유다. 이번 간담회에서 어 회장이 시구를 한 계기를 듣고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그의 리더십을 더욱 존경하게 됐다. 대학생들을 위한 문화 공간 ‘락스타존(樂star Zone)’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대학생들을 생각하는 어 회장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KB금융지주 회장이기 이전에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기 때문인지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스펙 전쟁’에 대해 “스펙만을 요구하는 회사는 없으며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나를 포함한 요즘 대학생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아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하지만 이력서를 채우기 위한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공을 쌓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연아_ 연세대 경제 2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경제학 전공을 살려서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꿈꿔왔다. 하지만 막연히 금융계 기업에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입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윤대 회장을 만나기 위해 KB금융지주 빌딩에 들어섰을 때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을 느꼈다. 어 회장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속에 권위가 있었다. “대학생의 기본은 건강과 전공 공부”라고 강조할 때 그동안 눈에 띄는 특별한 스펙만 찾았던 나는 ‘아차’ 싶었다. “회장이라고 하지 말고 총장이라고 부르라”는 말에선 학생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인터뷰 시간 동안 앞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함께 간담회에 참여했던 대학생 기자들도 “어윤대 회장의 말에 저절로 집중이 됐다”고 말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체계적으로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진행 김상헌 편집장 ksh1231@kbizweek.com│정리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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