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공포증 치료하는 5가지 특급 처방전] “원고에 의지 말고 키워드로 얘기하세요”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잠겨요.”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요.” “쉬운 단어도 더듬게 되고 목소리는 제멋대로 갈라져요.” “얼굴이 빨개지면서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요.”

증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병명은 하나. 밤새워 준비를 해놓고도 정작 칠판 앞에 서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당신의 증상은? 발표 공포증이다. 발표 수업이 두려운 대학생들을 위해 준비했다. 발표 공포증 자가 진단법부터 편안한 발표를 위한 준비 노하우, 발표 직전 긴장을 푸는 스트레칭까지 담은 단계별 처방전이다.


나는 발표 공포증일까?

아래 문항을 읽어나가며 ‘거의 없다(0점) - 가끔 있다(1점) - 대체로 그렇다(2점) - 항상 그렇다(3점)’로 자신의 상황을 체크해보자. 도합 40점 이상은 발표 공포증이 매우 심함, 30점대는 좀 심함, 20점대는 보통, 10점대 이하는 낮은 수준이다.

1.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 적이 있다.

2. 발표를 할 때 내용을 잊거나 멍해질까봐 걱정한 적이 있다.

3. 내가 발표할 때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발표를 할 때 호흡곤란을 느낀다.

5. 나와 지적 배경이 다른 청중 앞에서 발표할 때 불안해진다.

6. 내 발표를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내 발표의 결과가 중요할수록 불안해진다.

8. 내가 발표를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9. 발표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 청중이 많을수록 불안해진다.

11. 발표를 할 때 집중하기가 어렵다.

12. 내가 발표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가엾게 여긴다.

13.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불안하다.

14. 청중은 내가 말할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15. 내게 청중이 싫어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16. 발표를 할 때 당황한다.

17. 발표를 할 때 체계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18. 발표를 할 때 흠 잡히거나 공격당한다.

19.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 떨린다.

20. 발표를 할 때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다.

21. 내가 발표를 잘해도 청중은 잘못된 점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2. 발표를 시작한 후에도 불안감을 느낀다.

23. 실수를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4. 청중이 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5.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안절부절못한다.

* 참고: 피터 데스버그의 ‘스피치의 기술‘


1 발표 공포증 받아들이기

발표 공포증 극복의 출발점은 ‘발표는 떨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러운 증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의 방송 진행자 아소 켄타로는 ‘굿바이! 떨림증’이라는 저서에서 사고방식을 먼저 전환하라고 조언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땐 떨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한 뒤 “아무도 내가 완벽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세뇌하라는 것.

일단 발표 공포증을 인정하면 관심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지난번처럼 떨면 안 돼’ ‘침착하게 잘해야 해’ 하고 자신의 상태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면 이제는 ‘어떻게 청중을 이해시킬까’ ‘어떻게 청중을 즐겁게 할까’로 목표를 바꿔보자. 발표를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지 말고 상황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수월하게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2 과거의 실패 경험 분석하기

발표 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은 과거에 발표를 망친 경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규모 관중이 모인 곳이나 인생이 걸린 면접처럼 중요한 상황에 위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발표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있는 사람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항상 떨린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경우 과거의 실패를 분석해보는 것이 ‘발표 트라우마(trauma)’ 극복에 도움이 된다.

발표를 망쳤던 경험을 되살려보자. 언제·어디서·몇 분 동안 발표를 했는지, 어떤 내용을·몇 명 앞에서 발표했는지, 토론식 발표였는지, PT를 이용한 발표였는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보자.

비교적 성공적으로 발표한 경험이 있다면 두 상황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이 유난히 떨리는 상황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더욱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인지적 기반을 얻게 되는 셈이다.

3 원고 과감히 내려놓기

발표 공포증이 있는 이에게 원고를 내려놓으라는 말이 무정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은성 KBS 아나운서는 “발표 자료를 그대로 읽어서는 절대로 발전이 없다”고 말한다. 원고를 통째로 암기하지 말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법을 연습하라는 조언이다.

발표 원고가 완성되면 그 내용을 도입, 본론, 결론으로 압축해 몇 개의 핵심 키워드만 남기고 줄인다. A4용지 반 장 정도의 크기에 키워드를 적어 발표 개요서(일명 큐카드)를 만든다.

이 과정을 충실히 거쳤다면 이야기할 내용이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실전에서는 개요서를 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내용을 이야기하면 된다. 처음에 썼던 원고와 조금 다른 표현이 나오더라도 상관없다. 고개를 숙인 채 원고만 읽는 것보다 청중을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비결이다.

4 발표가 끝난 뒤엔 철저한 모니터링을

아나운서 지망생이나 기업의 CEO들이 스피치 훈련을 할 때 필수로 거치는 것이 바로 모니터링이다. 발표 역시 스피치의 일부이므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발표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는 것이지만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소형 녹음기 정도면 적당하다.

발표를 마친 뒤 말의 속도와 크기는 적절했는지, 안정되고 떨림 없는 소리를 냈는지, 상황과 맥락에 맞는 내용을 이야기했는지,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했는지 분석해보자. 자세와 제스처 사용, 시선 처리, 의상 및 메이크업 등 비언어적 측면을 분석하는 일도 필요하다. 오늘의 발표는 내일의 발표를 위한 가장 좋은 연습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5 발표 당일 기억하면 좋을 팁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지만 급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몇 가지 긴장 완화책이 있다. 첫째, 발표 장소에 미리 가본다. 발표 일주일 전 혹은 하루 전에라도 발표가 진행될 강의실을 찾아가 발표 진행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자. 발표 당일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원고를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으며 강의실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둘째, 근육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한다. 긴장하면 유난히 목소리가 갈라지는 사람이라면 발표 전 뒷목의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부위를 힘껏 누르며 지압을 해주자. 어깨를 돌리며 뭉친 곳을 풀어주는 것도 효과적인 마사지 방법이다.

양팔을 뻗은 후 고개를 돌려 양쪽 손가락 끝을 번갈아 보며 목 주변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발표 직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이 이완돼 안정적인 소리를 낼 수 있다.

[인터뷰] 김은성 KBS 아나운서

발표를 잘하려면? ‘상황 통제력’이 필요해!

발표 공포증을 극복하려면 평소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상황 통제력을 기르는 것이다.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7분 스피치 연습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1분 스피치나 3분 스피치는 단순한 암기나 요령으로도 가능하다. 직접 이야기 구조를 짜고 완급 조절을 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7분이다.

발표가 장황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표 내용의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평소 TV나 잡지를 보면서 내용을 요약, 압축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영화를 봤다면 그 내용을 키워드로 요약해보고,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의미 부여까지 해본다면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압축하고 풀어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대학생들이 수업에서 발표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면?

발표할 때 원고를 들고 나와 그대로 읽는 학생이 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발표가 아니라 단순한 ‘원고 읽기’다. 스피치 훈련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원고 내용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함축해서 키워드만 보고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중언부언하고 쓸데없이 늘어지는 말이 많다는 점도 발표를 잘 못하는 학생의 특징이다. 이것은 메시지를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일종의 ‘개념 트리’를 만들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구조화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발표를 잘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보전달 스피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들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뛰어난 ‘프리젠터(presenter)’인 이유는 그가 설명하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는 점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설명할 때 듣는 이들이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 정보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 어느 정도로 희소한지, 얼마만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부각시킨다면 신뢰감 있는 발표가 될 것이다.


* 김은성 KBS 아나운서는 국내 최초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최근 15년 방송 경험과 삼성경제연구소(SERI) CEO 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기 훈련법을 소개한 ‘이 남자가 말하는 법(2011)’을 발간했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