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공동기획] “스리랑카에서 움튼 세상 향한 꿈, 이제 시작입니다”

해외봉사에서 천직을 찾다 (1)

“위대한 일의 대부분은 청년기에 이루어진다.” 영국의 정치가 디즈렐리가 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청년은 실책, 장년은 고투, 노년은 회한”이라는 말을 남긴 것을 떠올린다면, 청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실책이 두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씨앗을 심는 시기. 그가 말한 청년기의 위대한 일이란 어쩌면 ‘도전’이 아니었을까.

여기 20대에 세계를 누비는 도전으로 성공의 씨앗을 키운 사례가 있다. 소셜 벤처 기업 ‘업스타트’의 CEO 유영석 씨의 이야기다. 그는 2004년부터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에서 생활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8년 UN 우주사무국에서 근무했고, 현재 소셜 벤처 기업 ‘업스타트’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유영석 씨가 KOICA와 인연을 맺은 것은 스물다섯 살이던 2004년의 일이다. 미국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던 그는 우연히 KOICA 국제협력봉사요원 제도를 알게 됐다. (국제협력봉사요원 제도는 입영 대상자 중 전문지식·기술을 보유한 자가 30개월간 해외에서 활동하며 군복무를 대체하는 제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해외 무상 원조가 궁금했어요. 왜 한 나라의 국민이 세금을 모아서 다른 나라에 줄까? 제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는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기부 문화를 알기 위해, 그리고 자신도 그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먼저 기부했다.

“그때는 스리랑카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단지 내전 중이라는 얘기에 많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죠.” 석 달간 현지 적응 훈련을 받고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옆에 있는 도시 끼리밧고다에 정착했다.

그의 첫 임무는 한국과 스리랑카 정부가 함께 만든 직업훈련원에서 전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일을 배우러 온 학생들이 기술자가 되어 사회에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뿌듯한 경험이었다.

“학생들이 고부가가치 산업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컴퓨터그래픽과, 오토캐드(AutoCAD)과를 만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변화가 필요한 곳이었기에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성과도 빨리 낼 수 있었죠.”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며 깨달은 점이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다 보면 어디 가더라도 ‘내 자리는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2004년 스리랑카에 닥친 기록적인 쓰나미는 그의 역할을 바꿔놓았다. 한국에서 온 긴급구호팀과 함께 피해 지역에 가서 현지 안내를 맡았다. 피해 현장에서 구호작업을 지켜보며 재난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그의 가슴속에는 경영인이 되겠다는 기존의 꿈 외에 ‘국제 개발’이라는 키워드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능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변화시킬 게 많을수록 재미있는 곳이라 느껴졌죠.”

이듬해 그는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 선발에 도전했다. (국제기구 초급전문가 제도는 정부가 선발한 인재를 UN 등 국제기구에 1~2년간 파견해 국제적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제도) 외교나 국제 관계에 대한 수업은 한 차례도 들은 적 없었던 그가 국제기구에 취업한 데에는 해외봉사 활동으로 쌓은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선발 시험에서 국제 원조가 왜 필요한지 질문을 받았을 때 스리랑카에서 보고 느꼈던 걸 얘기했죠. 국제 개발의 개선점에 대해 물어봤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쌓은 경험은 대학에서 들은 수업보다 훨씬 유용한 공부가 됐다.


‘글로벌 커리어’로 이어진 해외봉사의 경험

UN 우주사무국에서의 근무는 국제원조에 대한 시각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그가 속한 재난관리팀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피해 지역의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었다. 중국 스촨성 지진, 미얀마 나르기스 태풍, 아이티 지진 등 수많은 재난을 경험했다.

“과학기술은 발전했는데 구호 절차가 갖춰지지 못해 도움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국제적인 구호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느꼈죠.”

다음 도약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싱귤래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으로 이어졌다. (싱귤래러티 대학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과 국제우주대학 설립자 피터 디아만디스(Peter Diamandis)가 세운 대학).

첨단 과학 분야의 박사과정 학생,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사회적 기업 CEO 등 세계 35개국에서 모인 80여 명의 학생이 가난, 질병, 환경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한국을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고 불러요. 맑은 공기에서만 살 수 있는 카나리아로 탄광의 공기를 파악하듯, 한국에서 발달한 IT 문화가 장차 그 산업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뜻이죠.” 잠재력이 많은 한국에서 세계적인 IT 기업이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제가 그 가능성을 더 열어 보이고 싶었고,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지난해 10월 한국에 돌아온 그는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소액기부 및 투자) 사업을 시작했다. KOICA 해외봉사단과 UN 우주사무국에서 경험했던 모금 활동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사업이다.

미래 융복합 기술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공익 사단법인도 만들었다. 올여름엔 싱귤래러티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모든 개개인이 열정만 가지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고 환경을 조성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르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세계가 변화할수록 개인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과감하게 추진했으면 해요. 롤모델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길을 따라가기보다 내 길을 가겠다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 나이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해외봉사단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유영석 씨는…

2004년 미국 뉴욕 쿠퍼유니온(Cooper Union) 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2004~2007년 KOICA 스리랑카 해외봉사단 활동(국제협력요원)
2008~2010년 UN 우주사무국 재난관리팀 근무(국제기구 초급전문가)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귤래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 입학
2011년 소셜 벤처 기업 ‘업스타트(Upstart)’ 창업, 융복합 기술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 연구 사업(TIDE Institute),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귤래러티 대학 강사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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