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나온 김태평 씨, 같이 일해봅시다”
3월 8일, ‘주원앓이’의 주인공 현빈의 훈련소 입소는 TV를 통해 생중계될 만큼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년간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는 팬도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처럼 그의 결정을 극찬하는 사람도 있었다.현빈의 반듯한 이미지는 훈련병 ‘김태평’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동기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으로 맹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으며 ‘외적 자세가 우수하다’는 이유로 입소식 대표자 선서를 맡기도 했다.
만약 이런 현빈 씨가, 아니 김태평 씨가 제대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의 연예 경력과 유명세를 모두 제외한다고 가정해도 아마 성공적으로 취업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그가 해병대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투철한 협동 정신’ ‘강인한 체력’ 그리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갖추게 된 기간이라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밀리터리 스펙’이 뜨고 있다. 밀리터리 스펙이란 쉽게 ‘군 복무 경력’이라 할 수 있는데, ‘땅개·물개·참새’ 같은 평범한 군 생활이 아닌 해병대·해군 특수전여단(UDT/SEAL)·특전사와 같은 특수부대 출신 혹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동티모르 등 해외 파병 경험처럼 일반적으로 쉽게 할 수 없는 군 복무를 일컫는다. 물론 ROTC, 학사 장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1월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한 박종민(28·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씨. 800점대 초반의 토익 점수와 3점을 조금 넘는 졸업 학점 보유자로 결코 뛰어난 스펙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취업 전선의 막바지에 증권사 영업부 1곳, 대기업 2곳 중에서 ‘내 직장’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었다. 비결을 묻자 “나중에 생각해보니 최종 면접에서 ‘이라크 파병 경험’을 물었던 회사에는 다 붙었더라”고 대답했다.
2005년 2월 육군에 입대한 그는 상병과 병장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자이툰 부대 소속으로 이라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자이툰 지원 당시 가족의 반대가 있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군 생활을 하고 싶다”며 설득했고 별 탈 없이 무사히 귀국, 제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이툰 지원 당시에는 ‘취업’에 대한 생각은 못했다”면서 “파병 경험이 독특한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합격 소식과 함께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밀리터리 스펙을 가진 구직자들의 성공이 이어지자 해병대·특수부대·해외 파병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해외연수 경험이나 인턴십 경력, 자격증 다수 보유와 같은 휘황찬란한 스펙보다 2년여의 군 시절 동안 경험했던 것이 매력적인 스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내강외강(內剛外剛)의 증거’로 활용
기업에서 밀리터리 스펙 보유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강인한 체력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6일 코리안리재보험의 심층 야외 면접은 청계산 산행, 축구, 술자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됐다.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떠오른 재보험사의 인기만큼 고스펙을 자랑하는 구직자들이 지원했지만 정작 코리안리가 원하는 것은 ‘강인한 체력’이었다. 여기서 밀리터리 스펙을 갖춘 지원자는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코리안리에서 매년 선발하는 인재 중 10%는 해병대 출신. 서류전형 1위 통과자가 탈락하는 동안 밀리터리 스펙으로 무장한 구직자는 성공의 나팔을 분다.
밀리터리 스펙은 ‘뛰어난 협동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로 팀 단위로 이뤄지는 업무에서 협동 정신은 구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다. 구직자의 ‘인성’을 강조한 박무호 유진투자증권 인사팀장은 “군 복무 기간에 체득한 국가에 대한 높은 충성심은 회사의 건전한 조직 문화로 승화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는 다른 세대에 비해 개인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G세대(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선발 및 교육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이때 구직자가 갖춘 밀리터리 스펙은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전체를 생각하는 능력’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입사 후 승진에도 도움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협동 정신 외에 ‘이직률’과도 관계가 있다. 밀리터리 스펙을 갖춘 사원은 다른 사원에 비해 이직률이 낮다고 한다. 보통 신입사원을 ‘월급값’ 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우는 데 2년여 시간과 2억 원 이상의 지출이 필요하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써가면서 키워놓은 인재가 직장 2~3년차의 ‘이직 러시’ 시기에 회사를 옮겨버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헛수고한 셈이 된다. 이런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밀리터리 스펙 선호’인 것이다.
밀리터리 스펙은 특히 금융권에서 강세를 보인다. 이른 출근 시간과 밤늦은 퇴근의 연속인 금융 회사에서 강인한 체력과 협동 정신은 필수다. 밀리터리 스펙을 갖춘 인재는 영업팀에서 더욱 선호하는데, 영업사원은 발로 뛰어야 하는 업무가 많고 접대나 회식 자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모 증권사의 경우 장교 출신 신입사원 100%가 영업팀에 배치됐다고 한다.
밀리터리 스펙의 힘은 입사 때만 반짝 빛나는 것이 아니다. 입사 이후에도 회사의 중추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지도력)이 뛰어나고 책임감·자긍심 등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일반 대졸 출신보다 높다.
신한은행의 경우 해병대·공수특전단·ROTC 출신 간부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높은 영업 성과를 올려 업계 BIG 3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사진 한국경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