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청년] ‘마추픽추 등정’ 열혈 4인방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슈팅이 없다면 득점 따윈 100% 불가능하다.”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이다.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멈추지 말라는 이 말은 특히 요즘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등 저성장시대에 갇히고, 취업난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도전은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애를 딛고 마추픽추에 당당히 오르고, 통학의 불편함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개선한 청년들에게 도전은 ‘젊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페루 마추픽추. 해발 2430m에 위치한 이곳은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로 유명하지만,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곳으로도 이름을 떨치는 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이 험난한 마추픽추 등정은 물론이고 리마, 쿠스코 등을 돌아보는 빡빡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네 명의 장애 청년들이 화제다.



Q. 어떻게 페루까지 다녀올 생각을 했나요?
호종윤 : 다들 자주 보고 친하게 지내요.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장애 청년들이 킬리만자로를 등정한 것을 보고 ‘평생에 한 번쯤은 우리도 저런 거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했죠. 저도 그렇고 다들 처음엔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갔다가 그냥 내려오더라도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게 됐어요.

안태운 : 힘들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더욱 보람이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요.

진세영 : 시간이 나면 주로 기숙사에 누워 있던 편이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페루행에 동의했어요. 다녀온 이후로 확실히 활동 반경이 넓어졌죠.

안태현 : 집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는데 도전하고 나서 성격이 꽤 밝아졌어요. 내년엔 배낭여행을 계획할 정도로요.


Q.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안태현 : 고산병이 심해서 일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평소에 운동을 좀 하는 편이라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도 힘들더라고요. 어지럽고 손발이 찌릿하면서 부어오르고…. 아, 심한 변비로 고생하다 한 번 신호가 왔는데 화장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30분 내려가서 일을 보고 다시 30분 올라온 적도 있지요.

호종윤 : 아무래도 마추픽추에 올라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에요. 버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3~4일간 계속 걷기만 하는 등 저희들로서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어요.


Q. 고학년이라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바쁠 것 같은데요.
진세영 : 2년 전 친형과 함께 실내포차를 창업했어요. 현재도 성업 중이고요.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기보다는 원래 제 관심 분야인 마케팅이나 인사 쪽 업무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학점 관리, 영어, 공모전 등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호종윤 : 정부에서 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장애청소년이나 저소득층 멘토링 사업,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토크콘서트 등을 진행하는 일이죠. 사실 최근 내로라하는 한 대기업에 합격했어요. 바라던 기업이기도 해서 기쁘지만, 장기적으로는 마케팅과 CSR을 접목한 업무를 하며 사회적 기업가로서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안태현 : 학업 연장, 취직, 사업 등 여러모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비장애인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고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성인이 된 후 후천적 장애를 겪은 터라 제겐 심사숙고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Q. 부모님과 주변에서는 어떤 조언들을 해주나요?
진세영 :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 선택을 지지해주시는 편이에요. 취업이든 창업이든,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저를 지켜봐주시는 거죠. 주변에서도 제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조언을 해주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게 더 이상하죠. 사실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데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안태현 : ‘남들은 어디에 취업했다더라’, ‘연봉이 얼마더라’ 등의 주변 얘기에 부모님도 점점 걱정을 하시긴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 잘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저를 대해주세요. 그리고 건강이 제일이라고 등을 두드려주시고요.


Q. 기업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호종윤 : 인턴과 대외활동, 봉사단 등 비교적 많은 경험을 해봤어요. 기업들의 성향 차이가 확실히 존재하더라고요. 그런데 ‘내부 구성원들이 말하는 회사’가 그 회사의 본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이런 정보가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에게 쉽게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또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한 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패자부활전’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말이에요.

안태현 : 요즘 취업 재수·삼수생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인문계 전공자들이에요. 기업 입장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을 뽑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겠지만 인문 소양을 강조하는 만큼 인문계 학생들에게 취업문을 넓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태운 : 기업 인턴 합격자들이나 신입사원 서류 합격자들끼리 만나보면 열에 일곱은 이공계 학생들이에요. 남은 세 명 중 두 명은 상경계고요. 저는 비록 상경계지만 인문계 학생들에 대한 취업 지원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들의 상황이 이런데 장애인들은 어떻겠어요.


Q.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호종윤 :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에요. 취업에 있어서도 그저 다른 것일 뿐이죠.

안태현 :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해요. 또 아무리 취업이 급해도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고요. 솔직히 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쉽게 좌절하는 걸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진세영 : 저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그래서 지금 바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화두는 취업이잖아요.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 하는 거예요.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 공모전, 영어점수, 인턴 등 차근차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뭐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으면 좋겠어요.

안태운 : 장애 청년들은 자신만의 아픔이 있어서 소극적인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밖으로 나왔으면 해요. 찾아보면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아요. 나와서 같이 어울리다 보면 사회에 조금 더 부드럽게 융화될 수 있어요.


글 박상훈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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