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어깨거지’가 ‘관상가’로 신분 상승한 사연은? 한국민속촌 관상가 민정대

지능 발달 정도를 나타내는 IQ. 감성 지수를 나타내는 EQ. 그리고 꼴통 지수를 나타내는 ‘꼴Q’. 흔히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이 페이지에서만큼은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 정의하도록 한다. 용기, 패기, 똘끼로 단단하게 굳어져 남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에도 흔들림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꼴Q'를 찾아서…. 당신의 ‘꼴Q’는 얼마인가요?



한국민속촌 ‘거지’알바. 졸리면 그늘에 누워 한숨 자고, 배고프면 구걸해서 먹으면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꿀 알바’다. 민정대 씨는

얼마 전까지 민속촌의 ‘어깨거지’로 활동하며 팔자 좋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누더기 입은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구걸하며 살던 과거는 청산하고 ‘관상가’로 신분 상승했기 때문. 요즘 그는 여성 관람객들의 관상을 봐주며 작업 멘트를 날리고, 커플 관람객들을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 있소. 머리카락부터 눈썹까지 윤기가 흐르는 것이 귀티를 타고 났구려. 눈이 맑고 흑과 백의 구분이 분명하며, 코가 높이 솟아 있고, 입술 또한 붉고 옆으로 긴 것이…. 딱 내 스타일이오.”

영화 ‘관상’ 속 송강호 못지않은 포스를 자랑하는 민속촌 관상가 민정대(31) 씨. 얼마 전 관람객의 관상을 봐주면서 뻔뻔스럽게 작업 멘트를 날리는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며 민속촌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몇 가지 준비한 레퍼토리가 있어요. 여자 분들이 오면 관상을 봐주는 척하다가 ‘예뻐, 내 스타일이야’라고 말해요. 그러고는 부적을 써준다며 손바닥에 제 연락처를 적어주죠. 사실 여자친구가 있어서 전화번호 뒷자리는 일부러 알아볼 수 없게 흘려 적어요.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연락처 제대로 적어 달라’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웃음)



퀴즈쇼 우승하며 ‘거지’에서 ‘관상가’로 신분 상승
그가 민속촌에 입성한 것은 지난 4월. ‘꿀 알바’로 소문난 ‘거지’ 알바 오디션에 합격하면서다. 방송 쪽에 흥미가 있어 보조 출연부터 시작하던 차였는데, 당시 몸무게가 100㎏ 정도 나가다 보니 생각만큼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연기 실력도 키우면서 살도 뺄 수 있는 다른 일을 찾던 중, 민속촌의 거지 알바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 그는 큰 체구 덕에 ‘어깨거지’라는 별명을 얻었고, 능청스런 연기력으로 민속촌 최고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거지 알바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죠. 관람객들이 먹을 것을 많이 나눠줘서 배불리 먹을 수 있긴 하지만 그만큼 활동량도 많거든요. 생각보다 구걸이라는 게 에너지 소비가 많더라고요.”

거지 알바로 민속촌을 누비며 구걸하고, 낮잠도 자며 그야말로 ‘팔자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좋았다’며 ‘거지 알바’를 칭송했다. 평일에는 거지와 사또,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해 극과 극의 신분을 오가기도 했다. 주말에는 워낙 관람객이 많아 거지 알바를 2명 뽑았지만, 평일은 관람객이 적다 보니 서로 번갈아가며 한 번씩 사또 역할을 담당했던 것.

“사또는 거지에 비해 제약이 많아요. 체면이 있으니, 관람객이 주는 음식도 잘 안 받고 관아에만 앉아 있어야 하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더운 날씨에 챙겨 입을 옷도 많고, 근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렇게 거지와 사또 생활을 오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KBS 퀴즈쇼 프로그램 ‘1대 100’에 출연해 우승을 하게 된 것. 거지 대표인 그를 비롯해 사또, 무사, 광년이 등 민속촌 캐릭터 알바 4명이 함께 출연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최후의 1인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거지의 위엄’을 자랑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7단계까지 가서 최후의 1인이 됐어요. 상금은 32만 원이었죠. 아직 통장에 들어왔는지 확인은 안 했는데, 아이스버킷챌린지에 일부 기부하고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함께 출연한 민속촌 친구들과도 치맥 한잔하려고요.”

상금을 받고 어깨춤을 추던 그에게 또 하나의 특별 혜택이 주어졌다. 민속촌에서 ‘저런 인재를 거지로 두긴 아깝다’고 판단해, 유례없는 신분 상승의 혜택을 준 것. 그는 10월 시작된 민속촌 ‘사극 드라마 축제’ 시즌을 맞아 ‘거지’에서 ‘관상가’로 신분이 업그레이드됐다.



밝은 피부의 여자, 이런 상은 분명… 21호일세!
“거지가 편하긴 하지만, 관상가가 훨씬 더 재밌어요. 준비한 것을 보여줄 때 관람객들의 반응이 바로 오잖아요. 말을 많이 하고 같은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 게 약간 힘들긴 하지만요.”

그는 영화 ‘관상’을 보며 캐릭터 연구에 들어갔다. 또 진짜 관상을 봐줄 생각으로 관상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의 위치가 몇 센티만 달라도 관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쿨하게 공부를 포기했다. 진짜 관상 대신 코믹 관상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자용, 남자용, 커플용, 부부용 등 관람객에 따른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준비했다.

“커플이 오면 처음에는 안 좋은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관상이 좀 안 좋아도 둘이 만나면 천생연분이라며, 시간이 흐르면 결혼까지 할 수 있다고 하죠. 커플이 좋아하고 있을 때 강조해서 한 마디 덧붙여요. ‘따로, 따로’라고요. 피부가 밝은 여자 분들의 경우는 맑고 고운 피부를 가졌다며 칭찬하다가 이런 상은 대체로 21호를 쓴다고도 하고요.”

관람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마지막 반전에 큰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가끔 난처할 때도 있다. 여자 관람객만 연이어 관상을 보거나, 커플들이 줄지어 관상을 보면 준비한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 그럴 땐 즉석에서 애드리브로 관상을 봐주는데, 미리 준비한 것만큼 반응이 크지 않아 고민이라고 한다.

또 가끔 술 취한 관람객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 관상을 보러 온 관람객들이 재밌게 관상을 보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제대로 좀 관상을 봐 달라”고 요구하는 것. 그럴 땐 솔직히 ‘관상’의 ‘관’자도 모른다고 고백을 하지만, 막무가내로 관상을 봐달라고 할 때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살을 더 빼서 방송 일을 더 해보고 싶어요. 민속촌 알바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해야죠. 탐나는 역할이요? 사실 거지가 최고예요. 그런데 얼마 전에 잠깐 거지를 했었는데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못하겠어요. 창피해서요.”(웃음)


글 박해나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한국민속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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