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유학생 서울 적응기] 오늘도 나는 사투리와 편견에 울고 웃는다

대학 진학으로 ‘독립’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기쁨도 잠시, 낯선 대도시에서 외롭고 쓸쓸한 것은 물론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이가 수두룩하다.
설상가상으로 윤진이처럼 귀엽지도 않고, 쓰레기처럼 멋있지도 않다면? 그들의 삶은 상상 밖으로 고달플 수밖에 없다.
서울로 유학 온 촌놈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충남의 아들’ 노홍철에게 꿀밤 한 대 주고 싶어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왜 사투리 안 쓰냐”고 물어봐요. ‘~했어유’ 같은 사투리는 어르신들이나 쓰지,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쓴다고요. 특히 충청도 사람은 모두 느릿느릿 말하는 걸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아버지 돌 굴러 가유’ 같은 우스개와 개그맨 노홍철이 만들어 낸 이미지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 같아요. 충남에서도 말 빠른 사람은 정말 빠르다고요! 노홍철을 만난다면 꿀밤 한 대 먹여 드리고 싶네요.

- 충남 서산 출신 이세련(국민대 전자공학 4)


아직도 지역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니!
유학 생활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에요.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니 부쩍 외로움을 타게 되더라고요. 자취를 하면서 밥 챙겨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신경 써야 할 게 하나둘이 아니라 고달프기도 하고요. 정붙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자취생활이 더 힘든 것 같아요. 다행히 동기들은 지역에 대한 편견이 없지만, 간혹 정치 이슈가 터지면 불편해요. 출신 지역 때문에 편견을 가지는 이들이 꽤 많거든요.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에게 선입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껴요.

- 광주 출신 최재영(중앙대 신문방송 2)


‘대구리쉬’ 쓴다고 무시하지 마!
지하철에서 어떤 아주머니께서 길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요오서 일로 가시가지고, 3호선으로 바까 탄 담에, 거서 내리시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드렸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제 옆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똑같은 질문을 하시더군요. 잘 못 알아들으신 거죠. 제 입장에선 사투리 때문에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아요. 교양수업 발표시간에 제 딴에는 안간힘으로 경상도 억양을 죽여 가며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는 거예요. 제가 입만 열었다 하면 웃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영어도 사투리로 쓰고, 일본어도 경상도 억양으로 말한대요. 언제쯤이면 서울말을 마스터할 수 있을지, 우울해요.

- 대구 출신 김명준(국민대 정치외교 3)


제주도에도 스타벅스, 맥도날드 다 있거든!
‘너희 동네에도 0000이 있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너무너무 짜증이 나요. 제주도에도 있을 건 다 있는데,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취급하니까요. 여러분이 즐겨 소비하는 그것들, 제주도에도 다 있습니다! 사투리 때문에 놀림이나 오해를 받는 일도 많아요. 어느 날 강의실에 들어가니 친구들이 “왔어?”라고 인사했어요. 저는 무심코 “기여 왔져(그래 왔다)”라고 했죠. 근데 친구들이 진짜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는 거예요. 알고 보니 ‘기어서 왔다’라고 들은 거예요. 그래도 요즘엔 제주도 사투리를 가르쳐 달라는 친구도 있어서 서울생활이 재미있어요.

- 제주 출신 정지나(인천대 일어일문 3)


영서지방은 수도권이나 다름없거든!
강원도는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영서지방은 대개 수도권과 연결되어 있어 사투리 강도가 약한 것 같아요. 억양이나 표현에 큰 차이가 없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강원도드래요’와 같은 사투리는 일상 속에서 전혀 접해보지 못했어요. 서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도 없어요. 그런데도 친구들은 제가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놀라곤 해요. 얘들아, 강원도라고 다 같은 강원도가 아니란다!

- 강원도 홍천 출신 노지은(국민대 경영정보 3)


글 박혜민(국민대 정치외교 3)·정지나(인천대 일어일문 3)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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