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버스타고 잡지 만드는 그대 이창원〈매거진 파노라마〉발행인

지능 발달 정도를 나타내는 IQ. 감성 지수를 나타내는 EQ. 그리고 꼴통 지수를 나타내는 ‘꼴Q’. 흔히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이 페이지에서만큼은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 정의하도록 한다. 용기, 패기, 똘끼로 단단하게 굳어져 남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에도 흔들림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꼴Q'를 찾아서…. 당신의 ‘꼴Q’는 얼마인가요?


<매거진 파노라마>는 건축과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건축 잡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건축물의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보자는 콘셉트. 지난해 5월 창간해 2호까지 발행했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으로 1호는 완판되고, 2호는 지금도 절찬 판매 중이라고. 곧 나올 3호 얘기를 들어볼 마음에 <매거진 파노라마>의 발행인 겸 에디터 이창원 씨를 만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잡지 만들기에 지쳤다며 신세한탄만 한 가득이다.



“7011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아현역 웨딩거리가 나오죠. 거길 지나면 어느 순간부터 타일건물이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어요. 그 건물이 지어지던 때 타일 건물이 유행했거든요.”

“여기가 사실은 기찻길이었어요. 지금은 보도블록으로 덮여 있지만 이쪽은 5센티미터 정도 지대가 더 낮았죠. 여기 플랫폼이었던 흔적이 좀 남아 있죠?”

홍대를 거닐며 이창원(홍익대 건축 5) 씨의 설명을 듣다가 현실판 도민준의 등장이 아닌가 싶어졌다. 마치 서울에서 400년은 살았던 듯 ‘여기는 무슨 자리였고, 여기는 언제 생겼고’ 등등을 술술 읊어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정작 본인은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 건축학과 5년이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웃어 넘겼지만 말이다.


부산 사나이, 서울 버스에 반하다
서울에서 400년은 산 것 같은 포스였는데 알고 보니 2006년에 상경한 부산 남자였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감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웬만한 서울 지리는 꿰차고 있는 도시남이 되었단다.

“재수할 때 서울에 처음 올라왔어요. 그때 서울 지하철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지하철 노선도를 외워서 빠른 길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는 게 너무 귀찮더라고요. 서울 지리도 좀 익혔으니 그때부터는 버스로 이동수단을 바꿨죠. 그러면서 버스의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지하철은 좌우로 흔들리는데 버스는 앞뒤로 흔들리니 잠자기도 더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자다 깼을 때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안내 방송이 나올 때나 전광판에 다음 역 안내가 나올 때까지 불안해야 하고요. 하지만 버스는 창밖을 보면 ‘내가 어디쯤에 있구나’ 바로 감이 잡히죠. 또 제가 걷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 버스는 정류장이 촘촘해서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걸어야 하는 거리도 최소화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가 강조한 버스의 최고 매력은 창밖의 풍경이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지 않아도 버스에 앉아만 있으면 책에서만 보던 서울 건물들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막연히 생각했었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길 위의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재미있겠다고요.”

그의 꿈은 2013년 5월에 이루어졌다. 군대를 전역하고 ‘재미있는 게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몇 년 전 막연히 생각했던 그 프로젝트가 떠오른 것이다. 그는 친구들 몇 명을 꾀어 <매거진 파노라마>라는 건축 잡지를 창간했다. 건축과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5명이 십시일반으로 30만 원씩 투자하고, 소셜 펀딩과 서울시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았다. 콘셉트는 예전에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버스 노선 1개를 정하고, 그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창간호는 420번 버스, 2호는 273번 버스로 골랐다. 이왕이면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기존의 건축 잡지처럼 전공자조차 읽기 어려운 잡지는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하야 ‘엄마도 읽을 수 있는 건축 잡지’.

“항간에서는 엄마 비하 발언이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건축 잡지 읽을 수 있다’라면서요. 그래서 2호부터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건축 잡지’로 방향을 조금 바꿨어요.”


1호는 완판, 2호는 절찬 판매 중, 3호는?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작업은 하나도 없었다. 작업실도 없어 각자 집에서 글을 쓴 뒤 서로 돌려 읽으며 문제가 있거나 수정할 부분을 체크했다.

사진 촬영은 ‘몰래 찍기’를 고집했다. 심지어 2호에는 서울 중랑구 봉화산로의 한 가정집이 소개됐는데, 아직까지도 집주인은 촬영 여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잡지를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그런데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두 권을 만들고 나서 ‘죽어도 잡지 관련한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집 주인이 알게 되는 날이 올까요? 그냥 몰래 찍고 출판하는 거죠.(웃음) 건물 사진이라는 게 참 애매한 것 같아요. 저작권이 건물주에게 있는지, 건축가에게 있는지 말이죠. 그래서 그냥 찍는 거죠. 그런데 한 번은 모르고 지도를 하나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지도였더라고요. 이야기를 듣고 죄송하다고 사과했어요.”

저렴한 인쇄소를 찾고, 판매처와 접촉하는 일도 직접 발로 뛰며 진행했다. 최대한 저렴하게 인쇄를 하다 보니 발간된 책의 사진들의 초점이 흐려지고 인쇄 상태가 불량한 페이지들이 나왔다. 결국 인쇄소 사장님과 3번을 싸운 끝에 공짜로 재인쇄를 할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쇄 불량을 문제 삼기는커녕 원래 콘셉트라고 생각하고 있어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마지막으로 책을 포장해 가격표를 붙이는 일까지 가내 수공업으로 이뤄졌다.

“고생고생해서 만든 책이 나오면 뿌듯하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판매 준비하려고 포장하다 보면 진이 다 빠져 뿌듯하고 기쁜 마음은 금방 잊게 되더라고요. 정말 힘들어요.”

그들의 고생이 무색하지 않게 창간호는 발행했던 250부가 모두 완판되었다. 450부를 발행한 2호(판매가 : 1만2000원)는 현재 꾸준히 판매 중이다. 곧 3호가 발행되는지 물으니 이창원 씨는 머뭇거렸다. “3호가 발행됐으면 좋겠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잡지를 만드는 것은 재미있어요. 그런데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두 권을 만들고 나서 ‘죽어도 잡지 관련한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건 취미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6개월에 책 하나 내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할 수도 있는데 정말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교수님께 갖다 드렸는데 ‘수업은 안 듣고 이걸로 업을 할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절대 아니죠. 우리나라 잡지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말 신기하고 걱정될 정도였어요. 3호는… 개인적으로는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글 박해나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