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의 빵 굽는 인문학] 아웃소싱된 사생활, 즐기고 계신가요?
입력 2013-11-11 09:54:49
수정 2013-11-11 09:54:49
저는 30개월 된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이름은 ‘윤하’입니다. 윤택할 ‘윤(潤)’에, 여름 ‘하(夏)’를 쓰지요. 한자 뜻을 풀어보자면 ‘아주 풍성하고 윤택한 여름’이라는 뜻이죠. 아이의 태중 이름이 ‘여름’이었어요. 아이가 여름에 잉태되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여름은 계절의 뜻 말고도 ‘열매’의 사투리이기도 하잖아요. ‘아주 풍성하고 윤택한 여름에 열매 맺힌 아이’라는 속뜻이 담긴 셈이죠.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꽤 많은 이들이 어느 작명소에서 지었냐고 묻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아이 이름을 작명소에서 ‘아웃소싱’하는 부모들이 꽤 많더라고요. 물론 명리학적으로 아이 사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름을 짓고자 하는 부모의 바람 내지 욕심이겠죠. 다만 자기 아이 이름인데 부모의 고민과 정성이 좀 더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상적으로 쓰게 된 말 ‘감정노동(Managed heart)’을 고안한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신간 <나를 빌려드립니다>는 사생활을 아웃소싱하는 미국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에선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미혼이 늘고 양부모 가정이 해체되면서 가족의 모습도 퍽이나 다양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복지 정책은 ‘꽝’입니다. 사회 안전망도 거의 작동하지 않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생활에 시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죠. 연애에서 결혼, 출산과 육아,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것 등 완전히 사적인 영역을 아웃소싱하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손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혹실드는 아주 극단적인 예로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라는 신종 전문가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인 ‘선택’을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개개인의 선택마저 시장의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사회를 거의 유일한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생활의 영역을 시장이 급속하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은 시장의 개입을 막아야 하는 영역에 대해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도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수많은 전문가의 손을 빌려 해결하고 있지 않나요? 샌델이 말한 이슈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시기가 우리에게도 이미 찾아온 것 같습니다.
나를 빌려 드립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류현 옮김|이매진
사생활 서비스 시장을 움직이는 미국의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실체를 밝히는 책. 무너진 공동체 영역을 사생활 시장 서비스로 무마시키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세밀히 분석했다. 실제 다양한 사생활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를 인터뷰하여 사례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사생활 서비스 시장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거리 사랑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새물결
지구화가 현재 우리 세계의 사랑과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책이다. 장거리 사랑, 세계 가족, 세계 사회 등의 흥미진진한 개념을 제시하며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혼란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원정 출산이나 장기 거래 등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이런 혼란이 어떻게 일상이 돼 가는지 보여준다.
눈에 띄는 책
[정치/사회]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곽은경, 백창화 지음| 남해의 봄날
팍스로마나 사무총장 국제연대활동가 곽은경의 책. 파리, 제네바 등지의 국제 NGO에서 활동한 25년간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나들며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이들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저자의 단단한 삶이 인상적이다.
[역사/문화]
인도는 힘이 세다
이옥순 지음|창비
국내 저자가 쓴 흔치 않은 인도 관련 책이다. 변하지 않는 인도, 새롭게 변하는 인도의 양 측면을 균형 있게 살피며 인도의 역사와 문화, 사회를 들여다본다. 9가지 주제로 나눠 소개하며, 인도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통찰한다. 델리대학에서 인도사를 전공한 인도통, 이옥순 교수의 시선으로 본 인도의 현주소.
[경제/경영]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열린책들
‘톰슨 로이터스’의 편집장 크리스티아 프릴랜드가 전 세계 상위 0.1퍼센트 신흥 갑부들을 심층 취재했다.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이란 뜻. 2012년 <파이낸셜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된 역작.
허영진(교보문고)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걸 아직도 믿는 서점 직원. 인문학이 우리를 구원의 언저리쯤엔 데려다 주리란 희망을 품고 있다.
제공 : 교보문고 북뉴스 (news.kyobobook.co.kr)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꽤 많은 이들이 어느 작명소에서 지었냐고 묻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아이 이름을 작명소에서 ‘아웃소싱’하는 부모들이 꽤 많더라고요. 물론 명리학적으로 아이 사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름을 짓고자 하는 부모의 바람 내지 욕심이겠죠. 다만 자기 아이 이름인데 부모의 고민과 정성이 좀 더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상적으로 쓰게 된 말 ‘감정노동(Managed heart)’을 고안한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신간 <나를 빌려드립니다>는 사생활을 아웃소싱하는 미국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미국에선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미혼이 늘고 양부모 가정이 해체되면서 가족의 모습도 퍽이나 다양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복지 정책은 ‘꽝’입니다. 사회 안전망도 거의 작동하지 않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생활에 시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죠. 연애에서 결혼, 출산과 육아,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것 등 완전히 사적인 영역을 아웃소싱하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손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혹실드는 아주 극단적인 예로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라는 신종 전문가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인 ‘선택’을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개개인의 선택마저 시장의 전문가에게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사회를 거의 유일한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생활의 영역을 시장이 급속하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은 시장의 개입을 막아야 하는 영역에 대해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도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수많은 전문가의 손을 빌려 해결하고 있지 않나요? 샌델이 말한 이슈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시기가 우리에게도 이미 찾아온 것 같습니다.
나를 빌려 드립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류현 옮김|이매진
사생활 서비스 시장을 움직이는 미국의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실체를 밝히는 책. 무너진 공동체 영역을 사생활 시장 서비스로 무마시키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세밀히 분석했다. 실제 다양한 사생활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를 인터뷰하여 사례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사생활 서비스 시장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거리 사랑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지음|새물결
지구화가 현재 우리 세계의 사랑과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책이다. 장거리 사랑, 세계 가족, 세계 사회 등의 흥미진진한 개념을 제시하며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혼란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원정 출산이나 장기 거래 등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이런 혼란이 어떻게 일상이 돼 가는지 보여준다.
눈에 띄는 책
[정치/사회]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
곽은경, 백창화 지음| 남해의 봄날
팍스로마나 사무총장 국제연대활동가 곽은경의 책. 파리, 제네바 등지의 국제 NGO에서 활동한 25년간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나들며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이들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저자의 단단한 삶이 인상적이다.
[역사/문화]
인도는 힘이 세다
이옥순 지음|창비
국내 저자가 쓴 흔치 않은 인도 관련 책이다. 변하지 않는 인도, 새롭게 변하는 인도의 양 측면을 균형 있게 살피며 인도의 역사와 문화, 사회를 들여다본다. 9가지 주제로 나눠 소개하며, 인도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통찰한다. 델리대학에서 인도사를 전공한 인도통, 이옥순 교수의 시선으로 본 인도의 현주소.
[경제/경영]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열린책들
‘톰슨 로이터스’의 편집장 크리스티아 프릴랜드가 전 세계 상위 0.1퍼센트 신흥 갑부들을 심층 취재했다.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pluto’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o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이란 뜻. 2012년 <파이낸셜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된 역작.
허영진(교보문고)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걸 아직도 믿는 서점 직원. 인문학이 우리를 구원의 언저리쯤엔 데려다 주리란 희망을 품고 있다.
제공 : 교보문고 북뉴스 (news.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