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동행 체험] 홍보맨? 플래너·프레젠터·프로듀서·영업… 동시에 다 하는 멀티플레이어!

홍보 전문가 24시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홍보대행사 미디컴의 사무실. 기업과 브랜드의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대행사 사무실이라는 점에서 뭔가 색다르고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이기를 슬쩍 기대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빼곡한 파티션과 컴퓨터, 쌓여 있는 서류뭉치.

여느 사무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기둥에 걸린 벽걸이 텔레비전이 뉴스를 보여주고 있는 정도. 하긴 이곳에서 일하는 홍보 전문가들의 실제 업무를 보면 기자가 엉뚱한 이미지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홍보 전문가, PR AE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홍보대행사나 광고사의 PR(Public Relation)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기업의 명성이나 이미지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자산을 그 조직의 특성과 성격에 맞도록 전문적으로 홍보하는 일을 담당한다. 주로 기업의 언론 홍보 대행이나 홍보 행사 기획 및 집행, 사외보 제작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이 보통 AE(Account Executive)라 지칭되는 이유는 그들의 역할이 단순 홍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보 전문가는 홍보 전략 수립부터 광고 제작까지 전체적인 관리와 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보통 전반적 홍보 전략을 짜는 플래너, 홍보 전략과 제작물에 대해 광고주를 잘 설득하는 프레젠터, 마케팅·제작·매체에 이르기까지 사내 스태프를 리드하며 홍보 업무를 추진하는 프로듀서, 고객사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사로부터 홍보대행권을 얻어내는 영업원의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장황하게 사전적인 설명을 해봐야 백문이 불여일견일 터. 이날 미디컴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종원 대리를 만난 것은 오전 10시다. 오늘의 일견(一見)을 안내할 4년차 홍보 전문가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그는 오전 8시 30분 시작한 팀 회의를 마치고 뉴스 모니터링을 하던 중이라고 했다.

“팀 회의는 보통 9시 이전에 해요. 다들 약속이 없을 시간에 회의를 하는 거죠. 홍보맨들은 업무 성격상 외근이 많아 소집이 어렵거든요. 오늘 회의는 다음 주에 있을 홍보 계획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8시께 출근해 팀 회의 후 고객사에 대한 뉴스 모니터링, 보도자료 작성이 보통의 오전 일과다. 뉴스 모니터링은 고객사, 즉 그가 담당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보도된 그날의 뉴스를 찾아 정리하는 업무다. 신문 스크랩 프로그램을 통해 일간지와 주·월간지는 물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한다. 취합한 기사는 정리해 고객사에 간단한 형식으로 보고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사 기사뿐 아니라 관련 업계 기사를 전부 훑기도 한다.

10시가 넘어 뉴스 모니터링을 끝낸 정 대리는 보도자료 작성을 시작했다. 언론사에서 기사의 기초 자료로 쓰이는 보도자료의 형식은 신문 기사와 거의 같다. 따라서 특유의 문장과 문체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정 대리는 “좋은 기사를 많이 보기 위해 팀원과 그런 것을 공유하면서 기사의 문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0시 30분. 정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주에 한 번씩 있는 미디컴의 전체 회의 시간이었다. 정 대리 역시 회의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나간 지 얼마 안 돼 돌아온다.

“회의가 취소됐어요. 임원분들이 많이 자리를 비우신 것 같아요. 원래 홍보 전문가들의 스케줄이 굉장히 유동적이거든요.”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중단한 보도자료 작성을 마저 끝냈다. 11시 정도가 되자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이OO 기자님이시죠? 저는 OOO 홍보하는 미디컴의 정종원이라고 합니다. OOO 관련해서 보도자료 좀 보내드리려고요. 이왕이면 한 번 만나서 소개도 시켜드리고 싶고요. 네. 네. 네 감사합니다.”

“김 기자님, 미디컴 정종원입니다. 잘 지내셨죠? 점심 약속 언제가 괜찮으세요? 네, 그날 좋습니다. 그럼 그날 뵐게요.”

언론사와 점심 약속을 잡는 전화다. 많은 홍보가 언론사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언론사와의 네트워크는 홍보 전문가에게 필수다. 특히 점심시간을 이용해 언론사와 미팅을 갖는 경우가 많다. 평균 일주일에 1~2일, 많을 때는 일주일 내내 기자와 약속을 잡는다. 거칠다고 알려진 언론사를 상대하는 것이 어렵진 않을까.

“생각보다 언론사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지 않아요. 다들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시작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요즘엔 젠틀한 분들도 많고요.”


12시 점심시간. 정 대리와 회사 앞 식당에서 국밥을 먹으며 업무 때보다는 비교적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홍보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AE도 만능이 돼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홍보의 의미는 넓어졌다. 특히 인터넷, SNS를 이용한 홍보가 늘면서 기존 언론 일변도의 홍보에 변화가 생긴 것. 블로그 홍보 하나만 해도 기획, 홍보 대상, 고객사의 취향까지 새로운 과제가 수없이 생긴 셈이다.

“연구해야 할 게 많아졌어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건 저희 입장에서는 더 다채로운 홍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예전에는 정해진 틀의 보도자료만 쓰면 됐는데, 이제는 온라인에 올릴 사진이나 이미지 등 멀티미디어 능력도 필요하고요. 한편으로는 홍보와 관련해 자기 특기를 살릴 범위가 넓어진 것이니 기회가 많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죠.”

정 대리 역시 틈틈이 시간을 내 포토샵, 파워포인트, 일본어 등을 배우는 중이다. 이렇게 다각화한 접근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은 매우 크다. 정 대리는 “그러나 마케팅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모델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고객사 취향에 따라 결과물의 가치가 저평가되기도 한다”며 “그럴 때는 정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오후 1시. 졸음이 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 대리는 휴게실로 향했다. 쉬러 가는가 싶었더니 비치된 신문과 잡지를 펼친다.

“오전에 모니터링한 고객사 기사 말고도 전체 기사를 훑어봐요. 혹시 우리가 활용 가능한 기사의 형식이나 아이디어가 있을까 찾아보는 거죠.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이 직업이 연구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자료 찾고 평가하는 일이니까요.”

그때 한 무리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새로 뽑은 직원에게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했다. 엿들었다.

“워낙 터프한 일이라 가족이 이해를 많이 해줘야 할 거예요.”

어느 정도길래 새로 들어오는 직원에게 저런 말을 할까. 정 대리를 쳐다봤다.

“야근이 많아요. 고객사나 언론사에서 언제 찾을지 모르고, 새로운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한 제안서 작성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제안서 작성 중이라고 담당하는 기업의 홍보 임무를 등한시할 수는 없잖아요.”

한 시간 후 정 대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3시에 있을 고객사와의 미팅을 준비하는 것이다.


미팅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후 5시, 미팅이 끝나지 않았지만 정 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론 인터뷰가 잡혀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홍보 담당자는 인터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인터뷰 도중 나오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인터뷰 전후 관련 자료를 언론사에 제공하는 것도 홍보 전문가의 임무다.

오후 6시가 돼서야 인터뷰가 끝났다. ‘공식적인’ 퇴근 시간이지만 정 대리는 인터뷰 전 중단한 미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늦은 시간이라 미팅은 간단히 마무리됐다. 그러나 정 대리는 다시 회사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어쩌죠. 오늘 회의 내용을 정리해야 해서요.”

기약 없는 야근. 24시 체험이라 해도 더 이상 있을 수는 없었다.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야근을 앞 둔 그를 두고 기자는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을 만들기 위한 홍보맨 정 대리 책상의 불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글 함승민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취재협조 미디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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