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강박적 여행을 ‘뉴 타입’의 여행으로

오늘날 여행은 일종의 강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여행 갈 생각을 하고 조금이라도 짬이 생기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니 강박에 가깝죠. 일상에 기댈 게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친 사람들에게 여행은 실마리요, 돌파구이자 단서인 셈입니다.

다만 여행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해외로 나가 국내에서는 맘대로 써보지 못한 돈이나 실컷 쓰겠다는 식의 소비주의 환상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의심될 때가 많거든요. 최소한 삶을 되돌아보기 위한 방편으로 떠나는 여행은 소비 주체로서 전 세계를 쇼핑몰화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 테지요.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긴다’는 인상적인 저자 소개의 주인공 윤여일(33)은 ‘여행의 사고’라는 세 권의 여행기를 한꺼번에 펴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몇 권의 책과 번역서를 펴낸 이력이 있는 그의 여행기는 과연 어떨까요.

먼저 ‘여행의 사고·하나’에서 피력하는 그의 여행관을 살펴볼까요. 그는 “경치나 풍물을 눈에 바르는 여행, … 현지 사회의 역사와 고유한 맥락을 무시하는 여행, 그래서 꼭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다녀왔어도 되는 여행, 이리저리 난폭하게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여행, … 그래서 결국 자신이 바뀌지 않는 여행”은 꺼린다고 합니다.

“나라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생활 감각을 체험하는 여행, 자신의 감각과 자기 사회의 논리를 되묻게 만드는 여행, … 카메라를 사용하되 그 폭력성을 의식하는 여행, …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여행, 마지막으로 자기로의 여행”을 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 책에서는 자신의 여행관을 실천한 여행의 원형을 엿볼 수 있어요. 여행지라는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고 공부해서 텍스트 속에 숨어 있는 역사나 삶의 방식, 또는 여행 자체에 대한 철학 같은 숨은 행간들을 끄집어내지요.

그렇다고 여행이나 여행지에 대한 사유나 사고의 흐름만을 담아낸 것은 아니에요. 저자의 실제 체험도 적잖은데, 그 또한 읽는 재미가 썩 괜찮습니다.

마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저자의 경험담은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책을 아주 유연하게 해줍니다.

저자는 “소비가 된 여행에서 소비되는 것은 시간과 돈만이 아니다. 여행이 품고 있을지 모를 어떤 가능성 역시 소비되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묻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여행이 강박적이 된 것은 여행이 품고 있을지 모를 어떤 가능성을 잊고 있었거나 애당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여행의 사고
윤여일 | 돌배개

나라 단위가 아닌 마을 단위에서 생활 감각을 체험하고, 자신의 감각과 자기 사회의 논리를 되묻게 하는 여행, 마음의 장소에 다다르게 하고 물음을 안기는 여행, 길을 잃게 하고 친구가 생기는 여행, 마지막으로 자기를 향해 떠나는 여행을 다룬 책. 여행의 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꼭 읽어야 할 새로운 인문 감각의 여행기다.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 열린책들

라틴 아메리카 명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각국과 유럽 각지를 누비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에 대한 소회를 담은 여행기. 가난으로 꿈을 잃은 아이들, 독재의 억압에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부터 허세로 가득 찬 지식인들에 대한 조소와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의 손길에 대한 분노까지 작가의 연민과 비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눈에 띄는 책

폴 스미스 스타일
폴 스미스 | 아트북스

세계적인 영국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직접 자신의 일상과 디자인 철학, 취향을 담은 책이다. 일종의 폴 스미스 ‘감성 사전’으로 부재에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폴 스미스 A to Z’라고 붙어 있다. 실제로 사전처럼 A부터 Z까지 폴 스미스가 직접 고른 단어들을 통해 그가 얻는 영감의 원천을 보여준다. 또한 직접 찍은 사진과 디자이너 노트, 스케치 등을 최초로 공개했다.



속물 교양의 탄생
박숙자 | 푸른역사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세계문학은 교양을 재는 잣대 역할을 했다. 비싸고 두꺼운 양장본 세계문학전집 한 질은 가지고 있어야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문제는 자신의 교양을 자랑하고자 소유하려고 했을 뿐 실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문학의 가치를 수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왜곡 수용된 세계문학전집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속물적 교양으로 자리 잡았는지 파헤친다.



내 책상 위의 천사 1·2
재닛 프레임 | 시공사

뉴질랜드의 국민작가이자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재닛 프레임(1924~2004)의 자전적 소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바 있는 동향의 여성 감독인 제인 캠피언의 영화 ‘내 책상 위의 천사’의 원작 소설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자전 소설”로 평가받는 책으로, 작가가 남다른 개인사를 거쳐 대작가로 성장해가는 인생 역정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제공 : 교보문고 북뉴스 (news.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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