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싣구론(論)]겨울 맛, 눈이 오네

자고 일어났는데 첫눈이 내렸다고 했다. 나는 누워서 눈만 뜨고는 보지 못해서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밖은 어떨까.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을까. 다 녹고 땅만 젖은 건 아니겠지. 창문 열어 확인하면 될 것을, 소식만 듣고 창밖 풍경을 멀뚱하게 그려본다. 눈이 내렸지만 눈으로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야만 볼 수 있으니까. 잠시 눈 감고 있으면 하늘만큼 깊은 저 밑에서부터 선명하게 올라온다. 눈보다 무거운 것들.



하늘색 첫 봄비, 초록의 첫 순. 따지고 보면 처음인 것 많을 터인데 유독 하얀 첫눈에는 각별한 심정이 있는 것 같다. 날이 추우니까 마음이라도 따뜻하라고 하늘이 보낸 선물일까. 해마다 내리는 눈이지만 그해 첫눈이 내릴 때면 생전 처음인 것처럼 들뜨고 반갑다. 훈훈한 기분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거기도 지금 눈이 오고 있느냐고. 눈 오는데 뭐하고 있느냐고…. 눈도 갑자기 왔으니, 난데없는 안부라도 묻고만 싶다.

지금이야 출근길이니, 입고 나갈 옷이니 이런 걱정이 먼저지만 어렸을 때는 마당에 뛰는 개처럼 눈 오는 것을 좋아했다. “왈왈왈.” 나도 개처럼 짖었겠지 아마. 눈이 오고 있다고. 내리는 눈만큼 나도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알렸다. 그러면 나만한 동네 녀석들이 나와서 만들거나 던지거나 했다.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추운 줄 모르고 짐승같이 놀았다.

머리 커갈수록, 눈 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분명 내 마음은 차분한데 지난 기억들이 뒤엉켜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내렸던 눈만큼 한 해 한 해 내 기억도 마음 어딘가에 쌓였나 보다. 잊을 법도 한데 놀랄 만큼 추억이 생생하게, 기어코 기억을 해내고 있는 걸 보면 내 몸뚱이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

분명 가슴 아프려고 만든 기억은 아닌데, 지금은 왠지 먹먹한 기분이다. 웃음이 날 듯 말 듯한 이상한 슬픔. 이렇게 내 머리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착잡한 기분이 든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분명 그런 것 같은데…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지.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이 참 차다.

첫눈이 오던 날 만났던 친구 생각이 난다. 우린 기념으로 서로 선물을 교환했는데 그때 나는 가죽장갑과 털모자를 받았다. 당시 선물받은 털모자가 머리에 맞지 않아서 쓰고 다닐 수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눈만 오면 그 털모자,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때 그 털모자가 내 머리에 꼭 맞았다면 어땠을까.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는 가죽장갑처럼 기억도 녹아 없어졌을까.

마무리되지 않은 것들이 자꾸 남아서 눈처럼 쌓인다. 기억이라도 태워서 마음을 데워야겠지 싶다.




마음을 데워주는 겨울 음식
바람이 참 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따뜻함을 나누자.



갯벌의 진주

한 솥 가득 담긴 푸짐한 조개찜. 비주얼부터 따뜻하다.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웃으면서 먹기 좋은 곳. 이곳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있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본점은 조개구이가, 분점은 조개찜이 유명하다. 키조개, 가리비, 홍합과 같은 조개류와 살이 꽉 찬 꽃게, 새우, 오징어 같은 해산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찜을 다 먹고 나면 찜으로 만든 진국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먹을 수 있다. 그 맛 또한 일품이니 잊지 말고 먹어보도록. (조개찜 2인 3만9000원, 3~4인 4만9000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1동 163-5 / tel : 02-544-8862






진옥화할매 원조 닭한마리

동대문 근처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항상 이곳을 찾는다. 1978년부터 2대째 운영하고 있는 40여 년 전통의 닭한마리 칼국수 집. 허름한 1층 집이었거늘 몇 년 전 건물을 허물고 3층짜리 빌딩을 세웠다. 저녁 시간 20~30분 웨이팅은 기본이지만 진국인 국물을 맛보고 나면 역시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메인 메뉴 닭한마리 칼국수는 닭이 통째로 나오는데 셀프로 잘라 먹어야 한다. 고춧가루 양념소스가 처음엔 자극적이지만 중독될 만큼 그 맛이 강렬하다. 칼국수 사리는 추가 주문이 불가하니 첫 주문에 고심할 것을 권한다. (닭한마리 칼국수 2~4인 1만8000원)


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 265-22 / tel : 02-2275-9666





부산 씨앗호떡

어느 CM곡처럼 추운 겨울바람을 맞고 있으면 저절로 생각난다. ‘호’ 씨 성을 가진 호빵, 호떡. 뜨거우니 호~ 하고 불어 먹어야 해서 ‘호’ 자가 붙은 건 아닐까. 지난겨울 부산에 내려갔을 때 호떡을 먹었는데 호떡 안에 견과류를 넣어주더라. 일명 ‘씨앗호떡’이라 불렀다. 지금도 부산 생각하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이 ‘씨앗호떡’이 가장 먼저 생각날 만큼 인상적으로 남았다. 추운 이 겨울에 호떡만큼 어울릴 만한 음식이 있을까. 뜨거운 그 맛을 보고 있으면 이 겨울을 살려고 그들도 한 해를 기다린 것 같다. (씨앗호떡 900원)

부산시 중구 남포동 피프(PIFF) 광장






김씨도마

후루룩~ 하고 넘기는 것이 밥알 씹는 것보다 좋다. 여름엔 얇은 면, 겨울엔 넓죽한 면의 온기를 입술부터 해서 몸 안에 담는다. 그래서 겨울엔 면이 넓은 칼국수가 다른 면 요리보다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김씨도마는 정갈한 안동식 전통 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친인척이 운영한다 하여 일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으로 작은 가게지만 한옥에 들어와 있는 운치 속에서 멸치육수, 닭육수를 제대로 뽑아낸 깔끔한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도마국수(멸치육수), 도마곰국수(닭육수) 모두 7000원)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74 / tel : 02-738-9288





김삿갓(김필범)
맛있는 일상을 블로그로 전하는 남자. 2010, 2011 NATE(싸이월드) 선정 파워블로거, 2011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KBBA) TOP100 블로거. 제철음식 농수산물 커뮤니티 '삿갓유통(www.sgmarket.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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