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고수들이 만났다] 고대 슈바이처와 연대 나이팅게일이 말하는 봉사 이야기

고려대 의과대학 노준수·연세대 간호학과 허수현

연말연시. 따뜻한 미담이 생각나는 때다. 시험과 취업에 지친 대학생들도 트렌드에 맞춰 사회공헌이나 봉사활동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부푼 뜻과는 다르게 여윈 실행력은 늘 발목을 붙잡기만 한다. ‘봉사의 고수’들은 어떻게 착한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고대 슈바이처라 불리는 노준수 씨와 연대 나이팅게일 허수현 씨를 한자리에서 만나 그들이 나누는 진솔한 봉사 이야기를 들었다.


노준수 씨는 고려대 의과대학 본과 2학년이다. 의과대학 내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 무료 진료소에서 진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 청소년 해외자원봉사단에 참가, 네팔에 다녀왔으며, 이후 방학 때마다 에티오피아, 필리핀 등을 돌았다. 최근에는 ‘유니세프 대학생 자원봉사회’ 등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사회봉사 활동을 지속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MSD 청년 슈바이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 씨가 청년 슈바이처라면 허수현 씨는 청년 나이팅게일이다. 연세대 간호학과 4학년으로 2008년 진료봉사 동아리를 통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료봉사를 했고, 방학 기간에는 농촌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2011년 영국으로 떠나 ‘캠프힐’ 커뮤니티에서 9개월간 장애인과 함께 살며 선진국의 사회공헌활동을 익혔다. 연세대 사회봉사상 진리상을 수상했고, 현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사회사업부 활동을 지원하며 봉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잡앤조이 두 분 다 봉사활동 이력이 화려하네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노준수 고등학교 때 처음 봉사활동을 접하긴 했는데 본격적인 시작은 대학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같아요. 진료소에 학생으로 참여했는데 의사가 돼서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더라고요. 여길 통해서 다른 봉사활동도 접하게 됐고요.

허수현 저도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했어요. 어릴 때 불치병 어린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고서 기회가 된다면 저런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대학 와서 ‘이거다’ 싶어 바로 시작했죠.

잡앤조이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봉사왕이라고 하면 뭔가 남다를 것 같은데.

허수현 적극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사람과 편한 분위기 만들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까다롭기도 하고. 그냥 평범해요.

노준수 저는 좀 조용한 편이에요. 차분하고. 원래는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봉사하다 보니 차츰 좋아져서 지금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요.

잡앤조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성격이 바뀐 거네요.

노준수 그런 셈이죠. 저도 몰랐는데 사실 다짜고짜 봉사를 가면 그쪽에서 거부하기 쉬워요. 내가 돕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 좋아할 거란 생각은 착각이에요. 그들의 상황이 있고, 도움을 준다고 해서 늘 달가워하진 않아요. 진심으로 다가가서 얘기하고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저도 대화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허수현 맞아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지만 무턱대고 ‘도와줄게’ 했을 때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어요. 동정하느냐는 식으로. 그걸 느끼지 않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잡앤조이 두 분 모두 해외 봉사 경험이 있어요. 계기가 있다면.

노준수 제가 한국에서 꾸준히 간 곳이 외국인 노동자 진료소예요. 그분들이 오셔서 고향 얘기를 많이 하세요. 그래서 그곳 상황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하다가 해외 봉사활동을 지원했어요.

허수현 전 영국으로 갔는데요, 주위에서 다들 의아해 해요. 선진국으로 가는 게 무슨 봉사냐고요. 저는 사회복지가 잘돼 있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뭔지 보고 싶었어요. 어떤 시스템으로 소외 계층에게 다가가고 지원하는지요. 실제로 가보니 정말 많은 게 다르고 한국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고요.

잡앤조이 해외 봉사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허수현 영국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한국에서 대학생이 봉사를 가면 ‘봉사하러 왔어요? 하세요’가 끝이에요. 그런데 그곳은 봉사를 하려 해도 내가 먼저 자격을 갖춰야 해요. 정부에서 자격을 요구하거든요. 교육도 이수해야 하고요. 심지어 신체 장애인을 들어 옮기거나 먹이고 씻길 때, 긴급 상황일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하나하나 매뉴얼이 있어요. 그것에 맞춰서 과학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에요.

노준수 저는 주로 개도국을 다녔어요. 한국에서 봉사하는 것과 다른 점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거예요. 놀랐던 데가 에티오피아예요. 거기서 건강증진센터를 지었는데 아무도 안 오는 거예요. 주민들은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거나, 물질적으로 가져가려고만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먼저 태권도나 바자회 같은 문화 활동으로 거부감을 줄여나가는 게 필요했어요.


잡앤조이 봉사활동 중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노준수 에티오피아에는 죽는 아이가 정말 많아요. 그래도 먹을 게 있을 텐데 왜 죽을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피임이 문제였어요. 남존여비 문화가 만연해서 남자가 임신을 시켜놓고 여자를 버려두는 거예요. 아이를 낳아도 보살피지 않고요. 저희가 여성에게 영구피임 시술을 하기도 하고 남성에게 피임법 교육을 했는데, 정말 무지하더라고요. 남자는 피임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고, 여자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사회에서 고립될까봐 시술을 꺼리고요. 그걸 보면서 문화나 사회 교육이 있어야 기아 같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느꼈죠.

허수현 제가 돌보던 사람 중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가 있었어요. 일종의 지적·사회적 장애가 나타나는데, 쉽게 말해 주위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어요. 어느 날 같이 청소를 하는데 말을 안 듣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심지어 욕까지 하는 거예요. 결국 다퉜어요. 그래서 씩씩거리면서 멀찍이 떨어져 청소를 하는데, 멀리서 절 보더니 가슴을 문지르더라고요. ‘미안하다’는 뜻의 제스처예요. 순간 눈물이 왈칵 났어요. 내가 먼저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무시하는 게 티가 나서 투정 부린 걸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때는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었어요.

잡앤조이 봉사활동 중 가장 힘든 점은요.

노준수 봉사 동아리 회장을 했을 때 결정을 내리는 게 힘들었어요. 해외 봉사를 갈 때는 팀원의 안전까지 신경 써야 했고요. 저한테는 봉사 자체보다는 그런 쪽이 더 어렵던데요.

허수현 저도 봉사보다는 다른 부분이 힘들었어요. 자괴감이랄까요. 봉사자들 중에 정말 천사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난 왜 저렇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속이 좁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힘들었어요.

잡앤조이 의외의 답이네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노준수 처음은 호기심. 그런데 계속 하게 되는 건 배우는 게 많아서인 것 같아요. 봉사가 베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나누러 가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주러 간다기보다 배울 점이 분명히 있고 제 능력치 안에서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게 좋아서 꾸준히 하게 돼요.

허수현 그 말에 공감해요. 누군가 노숙자한테 코트를 왜 주느냐고 묻자 ‘내가 행복하려고 준다’고 답했다는 동화가 있어요.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잘 나오고 상 받을 때보다 봉사를 하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내가 행복하고 내가 돕는 사람이 행복한, 행복감을 공유하는 게 좋아요.


잡앤조이 봉사활동을 생각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허수현 사람이 망설일 때는 장애물이 있다기보다는 뭔가가 옭아맨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뭔가 하려고 하면 이게 날 붙잡고, 저게 날 붙잡는다면서 실행을 못해요. 한 번쯤은 생각 말고 시작을 해야 돼요. 그러면 거기서 추진력을 얻어 나아갈 수 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본인에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가치인지 더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노준수 요즘은 봉사활동을 기획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어떤 마을의 예를 들은 적이 있어요. 봉사자가 마을에서 백내장·녹내장 수술을 다 해줬는데, 수술만 하고 가버리니까 진료를 못 받아서 나중에 보니 그 마을 사람이 전부 눈이 멀었다는 거예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 생기는 일이죠. 그래서 이왕 봉사를 시작한다면 지속 가능하고 꾸준히 했으면 해요.

허수현 저도 지속성이 으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있던 곳에서는 짧게 머무는 사람은 받아주지도 않아요. 혼란만 준다는 거죠.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마음을 열려고 하니까 떠나버리는 셈이잖아요. 봉사를 계획한다면 책임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해야 돼요. 거기에 봉사 대상자에게 다가갈 때 약간의 기초 교육이 더해지면 완벽하지 않을까요. 아까 말씀하신 에티오피아의 예처럼 교육이 중요해요. 교육하러 온 봉사자가 교육돼 있지 않고 뭘 말해야 할지 모른다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잡앤조이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허수현 앞으로는 학생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지식을 기르고 전문적으로 봉사에 다가가고 싶어요. 학생 땐 배웠다면 전문가로서는 적용하는 과정이랄까요.

노준수 2013년부터 실습에 들어가야 해서 바빠지겠지만 틈틈이 봉사를 이어가야죠. 제가 아직 학생이고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면허를 따고 나면 봉사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변화에 맞춰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나가려고 합니다.


글 함승민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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