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찬]"수업 중에도 소설책 몰래 볼 정도로 독서광이었죠” 과학자가 꿈이었던 안철수가 정치인이 된 이유

과학자가 꿈이었던 소년 안철수, 의사 교수 CEO 정치인까지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
어릴 적 독서광 소설·SF·위인전 등 가리지 않고 다독
딸 덕분에 레이디가가 노래 듣고, 마라톤도 시작
정치하며 받은 상처 마라톤으로 치유···정치, 재미보단 꼭 해야할 일



[한경잡앤조이=강홍민/조수빈 기자] “MBTI해보셨어요?” “네. 저는 의사, IT전문가, 벤처기업CEO, 교수, 정치인까지···제 직업이 다섯 개였는데요. 직업을 바꿀 때마다 MBTI가 달라지더군요. 신기하게도 그 직업에 최적화되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근데 더 신기한 건 그 직업을 하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갔어요. 직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바뀌더라고요.(웃음)”

팔색조 기질의 영향이었을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정계 입문은 여느 정치인과는 사뭇 달랐다.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주축이 돼 학계에 몸담고 있던 안철수 교수를 2012년 정계 입문으로 이끌었다. 바로 ‘안철수 신드롬’이 생겨난 것이다. ‘정치 쇄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안철수의 등판을 원하던 이들의 바람이 결실을 맺게 되면서 그 해 가장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실정치 9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을 정치와 동행한 안철수 대표를 만났다. 그의 풋풋한 학창시절, 그리고 정치를 하는 이유까지 들어봤다.

어릴 적 ‘안철수’는 어떤 아이였나.
“어릴 땐 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방학 때마다 전집을 통째로 읽고, 학기 중에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서 봤다. 책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수업시간에 수업 안 듣고 다른 책을 읽을 정도였으니까.”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까지 과학자의 꿈이 있었는데 진공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면서 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었다. 전자공학분야에 취미가 있어 공대로 진학할까 생각도 했었다.”


△10대 시절 안철수 대표.


과학 분야 중 어디에 관심이 많았나.
“화학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딸도 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내심 딸이 아버지를 따라 의대에 지원하길 원하진 않았나.
“전혀 그런 건 없었다. (의사였던) 저희 아버지께서도 저한테 뭘 하라고 강요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가 장남이니 가업을 잇는 게 좋다고 생각해 의대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딸한테도 뭘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 행복하다는 이야기만 해주는 정도다.”



딸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
“자식을 키우는 과정은 나 혼자 살았으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을 공유하고 내 인생을 더 넓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그런 과정인 것 같다. 딸의 추천으로 레이디가가 노래도 들어보기도 하고, 마라톤 역시 딸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
“정치로부터 받은 상처 치유 위해 마라톤 시작
마라톤의 매력, 죽을 것 같이 힘들고 다리도 아프지만 고통스러운 마음 잊게 돼”
마라톤을 참 열심히 하셨다. 요즘에도 하나.
“물론이다. 요즘에도 종종 뛴다. 예전엔 한 달에 200km도 뛰었는데, 지금은 100km도 힘들더라. 2015년에 조금씩 뛰다가 2018년에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뮌헨 마라톤에서 10km를 완주하고 9개월 만에 아내와 함께 독일 퓌센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이후 베를린에서 3시간 46분에 완주했고, 뉴욕은 3시간 59분에 완주했다.”

마라톤의 매력이 뭔가.
“마라톤을 처음 할 땐 죽을 것 같고 힘들고 다리가 아프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마음을 잊어버리게 된다. 6년 간 현실 정치를 하고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던 때였다. 정계은퇴는 아니지만 현실정치 중단 선언을 하고 난 뒤라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마라톤이 큰 도움이 됐다. 마라톤을 하면 몸이 괴로워 복잡한 생각이 다 없어진다.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

책은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나.
“아마 한글을 떼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1~2학년 때 본격적으로 읽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 지인 분들 중에 전집을 팔러 다니는 분이 계셨는데, 단권부터 몇 십 권이 묶여 있는 전집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방학 때마다 그걸 사주셨다. 책은 소설, 위인전 할 것 없이 다양하게 읽었는데, 특히 소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사는 기분이 들어 완전 몰입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내가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웃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나.
“예를 들어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는지를 내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책 속 주인공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줄거리가 생각나는 게 아니라 갈등했던 주인공의 상황과 마음이 기억나더라.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웃음)”

어릴 적 독서습관이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나.
“책만 많이 본 것 치곤 감수성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발달한 것 같다. 의대교수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조직관리나 경영을 해본 경험이 없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책을 읽은 감수성으로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탄탄하게 키우는데 도움이 됐고, 카이스트 교수를 하면서, 청춘콘서트를 하면서도 2030세대와 공감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학창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꼽자면.
“역사소설부터 SF까지 가리지 않고 많이 봤다. 한 권을 고르기가 쉽진 않지만 소설 중에서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SF 중에서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우주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야기인데 아주 재미있게 봤다.”

청춘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어떤 세상인지 아는 게 필요하다. 살아가고 있으니까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쓴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라는 책이 있다. 21세기 역사 책인데 2007년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2007년 이후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2007년 아이폰이 나왔고, 페이스북이 대표 SNS로 등장했고, 트위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해였다. 2007년 이전과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이듬해 금융위기로 많은 것들이 묻혔다. 이 책을 통해 2030세대가 세상에 대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고 동문들과 아직도 만나···친구들은 내가 정치 안했으면 해
주량은 한 때 소주 2병, 과로 누적 이후로 술은 잘 못해”
학창시절에 책만 읽어서 친구들이 많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다. 어릴 적 친구들을 아직도 많이 만난다. 초등학교 동창 중에 서울의대를 같이 간 친구가 3명이나 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만나는 친구들은 부산고 친구들이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는데, 촬영 기간 중에 친구들이랑 만나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그 방송을 보면 친구들하고 얼마나 잘 지내는지 알 수 있다.”

친구들이 정치하는 안철수 대표를 어떻게 바라보나.
“친구들은 늘 정치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이익 때문이 아니라 사명감으로 (정치를)하는 것임을 알기에 ‘네가 할 때까지는 도와주겠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다. 다들 응원해줘서 고맙다.”

방송을 보니 친구들과 술자리도 가끔 하는 것 같던데, 주량은 얼마나 되나.
“요즘은 많이 못한다. 대학 땐 많이 마셨다, 의대생들이 술 마시는 것 말고 스트레스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나. 한창 마실 땐 소주 두 병 마셔도 안 취했다. 그때 소주는 25도여서 독했다. 딱히 주사도 없다. 그러다 안랩하면서 새벽 3시부터 오후 6시까지 7년 간 일하다보니 과로 누적으로 급성 간염에 걸렸다. 그 이후로 술은 아예 끊다시피 했다. 요새는 와인 한 잔 정도 가볍게 한다. 아버지께서도 술을 꽤 하시는 편이다.”
“공부만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
사회로부터 빚진 마음 갚기 위해 ‘정치’하겠다 결심“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저희 부모님은 아주 열심히 사신 분들이다. 아버지는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일에만 전념하셨고, 아이들을 돌볼 여유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모든 가사는 어머니께서 전적으로 담당하시던 그런 평범한 가정이었다.”

고향은 어디인가.
“부산출신이다. 호적에도 부산이라고 되어있는데 이상하게 인터넷에는 경남 밀양이라고 올라와 있더라. 아버지께서 군의관 시절 밀양에서 근무할 때 태어났는데, 태어난 곳도 부산의 한 병원이다. 밀양에서는 아버지가 군에 있던 2년 동안 살았다. 그 이후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할아버지가 부산상고, 아버지는 부산공고, 제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께선 1960년대부터 제가 정치에 입문한 2012년까지 50년 동안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셨다.”

부모님께 고마웠거나 서운했던 부분이 있다면.
“서운한 부분은 없고 오히려 고마운 부분이 많다. 공부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지원, 도움들을 부모님과 사회에서 받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살아간다면 어떻게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었겠나. 어릴 적부터 내가 받은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 행동을 처음으로 옮긴 계기가 대학 때 의료봉사활동이었다. 주말마다 의료 활동을 하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안철수 대표와 김미경 교수.


의료 봉사를 하면서 아내 분을 만난 걸로 알고 있다.
“맞다. 당시엔 대학에 진료동아리가 없어서 종교동아리에서 진료 봉사를 했다. 당시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진료 봉사를 많이 했었는데 1년 후배인 아내를 그때 만났다. 그게 이어져 지난해 대구 동산병원 코로나19 봉사로 이어진 셈이다. 사실 V3를 처음 개발했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에 놀랐다. 드디어 나도 사회구성원으로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주변에선 돈 받고 팔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7년 간 무료로 배포했다.”

교수로서의 안철수를 스스로 평가하자면.
“교수 평가는 카이스트에서 톱이었다.(웃음) 보통 5점 만점에 4.8~4.9점을 받을 정도로 높았다. 기본적으로 교수법이 달랐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말을 더 많이 하게 만들었다. 질문을 많이 하고, 읽기만 하면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숙제를 내주면서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였다. 강의 준비에도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배우는 점이 많아 좋았다는 평을 학생들에게서 받기도 했다.”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직업은 무엇이었나.
“의사, IT전문가, 벤처기업 CEO, 교수, 정치인을 해봤는데, 모든 직업이 나와 딱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해야 하니까 했던 것뿐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재미가 사라지는 법이다. 힘든 일이 지나 뭔가를 만들어내면 아주 큰 보람이 되고, 그때부터 재미로 바뀐다. CEO 때도 참 힘들었지만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만들었으니 재미있는 일로 기억되는 것이다. 재미있고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재미없는데도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프로다.”

△정치인 안철수.
“정치, 재미있는 일이기보다 꼭 해야 하는 일···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삶의 틀을 만드는 일”
그 많은 직업 중 정치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는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삶의 틀을 만드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삶의 틀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장경제를 겪고, 직업을 가지고 은퇴 이후 대한민국의 복지제도에서 생을 마감해야하는 사람들의 운명이 달려 있는 일이다. 좋은 나라이냐, 아니냐는 이 틀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정치란 그것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일이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거나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면 당연히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다. 그만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청춘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비관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에 좋은 결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는 뜻이다.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힌 미국 최고위 장성이었던 제임스 스톡데일의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스톡데일은 포로로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은 물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많은 미군 포로들이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전쟁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곧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던 포로들은 풀려나지 못하자 희망을 잃고 죽어갔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 대신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8년을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아 모순된다고 해서 패러독스(paradox)라고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으면 언제든 어떤 위기든 극복이 가능하다는 마인드를 청춘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 / 국민의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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