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요즘 대세 ‘개발자’ 나도 될 수 있을까?
[한경잡앤조이=김슬기 그렙 교육사업팀장] 언제부터 개발자 양성 교육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소프트웨어 관련 역량을 길러 본인의 직무에 활용하라는 메시지는 몇 년 전부터 흔했다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개발자가 ‘돼라'는 식의 메시지가 많은 시기는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교육 공급이 많아지는 이유는 채용 시장을 바라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회사가 ‘좋은' 개발자를 찾는 데에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비즈니스 가설을 검증하고, 유저를 만족시키고, 그들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서비스 구현의 핵심에는 개발자가 빠질 수 없다.
개발자의 몸값이 치솟는 탓에 경력자 채용이 무척이나 힘들어지고, 주니어 채용 역시 경쟁이 심화되어 높은 초봉, 스톡옵션, 사이닝 보너스를 전면에 내세운 채용 공고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주니어층의 경우 이력서를 먼저 받기보다 코딩 테스트(개발자 역량 평가를 위한 테스트)를 시행한 뒤 채용 전형을 진행하는 경우도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분들이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이 부트캠프(단기간 내 개발자로서 취업하는 데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강도 높은 교육) 형식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길러 취업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고, 나 역시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이다 보니 수많은 학습자들을 관찰하게 된다.
학습자들 중에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 이 분야로 커리어를 선택한 경우도 있는 반면,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 어쨌든 개발자로 취업만 하면 ‘남들보다 초봉은 높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글에서는 후자를 관찰하며 느낀 것들을 조금 나눠볼까 한다.
개발자 채용 시장에서 신입 초봉 5천, 6천만원과 같은 메시지가 많아지니 교육생 모집을 위한 마케팅 영역에서도 이를 인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만약 오늘 ‘개발자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구글에 한 번 검색한다면, 각종 소셜 미디어 뉴스피드에 교육과 관련된 광고가 뜨기 시작할 텐데, 몇 개 유심히 보길 바란다. 광고에 강조되는 메시지들 중 개발자로 취업 시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가 보장된다는 문장이 자주 등장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교육을 듣고 빠른 시간 내에 개발자가 되어 남들보다 월등히 높은 초봉을 받고 커리어를 시작해라, 지금이 기회다… 라는 것인데, 대충 부트캠프가 약 반년 정도의 커리큘럼을 갖고 있으니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자.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취업에 필요한 수준의 기술을 갖추려면 대체 그 시간을 얼마나 온전히 개발에만 집중해야 하는 걸까? 이 경우, 컴퓨터 관련 전공도 아니고 개발 관련 경험도 전무하다면, 1년이 채 되지 않는 교육을 수료하고, 신입으로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그 교육에 쏟아도 모자랄 것이다.
‘커리어는 다년 간 쌓는 건데, 1년이 안 되는 교육을 내가 못 소화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막상 부트캠프에 참여해 1~2주 정도만 보내 보자. 배워야 하는 것들의 양이 많음은 물론, 직접 코드(code)를 쳐보고 실습하거나 산출물을 내야 하는 형태의 과제가 끊임없이 주어지며, 중간에 팀 프로젝트라도 하게 되면 타인과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과정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숨이 턱 막힌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교육을 통해 새삼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나처럼 개발자가 되겠다고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두려움이 엄습할 땐 의지가 바닥을 치기도 한다. 전공자가 아닌 경우 커리큘럼이 심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본인의 기초 역량이 부족함을 느껴 금세 좌절에 빠질 수도 있다. 즉, 단기간에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 무언가가 ‘취업'이라면, 어마어마한 도전을 견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도처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학습자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좋은 강사도 아니요, 커리큘럼도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개발이 좋아야 한다. 내가 코드를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자격. 강의에서 숙제로 나온 실습 문제일지라도 그것을 완수해가는 과정 자체가 본인에게 의미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이런 마음의 자격 요건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트캠프를 졸업한 이후가 본격적인 학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부트캠프가 학습자에게 걷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이후 보폭을 넓히거나 빠르게 걷는 것은 전적으로 학습자가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은 그런 영역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개발자를 찾고 있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교육을 이수하자마자 모두가 바로 취업할 수 없다는 것. 누구나 높은 초봉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요새 거의 표준어처럼 굳은 ‘네카라쿠배’ 와 같은 기업에 모두가 입사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마케팅 메시지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쉽게 말하고 있으며, 일부 짧은 기간 내 큰 성과를 이룬 수료생 소수가 수료생 전체의 표준처럼 포장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약 반년 여의 경험이 인생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 막연히 기대하고 교육에 참여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잘 생각해보자. 나 자신이 정말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을 만큼 개발을 좋아하는지. 조금 과장하면 개발과 관련된 일을 쭉 하면서 나이 들어갈 자신이 있는지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 (요즘은 ‘당토' 등 여러 스타트업의 이름을 더 붙이기도 한다)에 출근하는 모습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부트캠프 졸업 후 뭔가 알 수 없는 신묘한 힘이 나를 개발자로 취업하는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솔직한 내면의 이야기를 듣길 바란다.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꼭 큰 규모의 기업에서만 커리어를 시작할 필요도 없으며, 초봉으로 5~6천을 받고 시작해야만 ‘훌륭한 주니어 개발자로서의 시작점'인 것도 아니다. 본인이 정말 개발을 좋아하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원하는 기업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는 일도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는 더 많은 IT 교육 현장에서도 학습자들이 이러한 지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김슬기 씨는 피아노 전공이지만 컴퓨터를 좋아해 직업을 IT분야로 선택했다. 현재 프로그래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렙 교육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영원히 원격 근무를 지향하는 그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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