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그녀에게, 타인을 지켜주는 법을 물었다 [일로 만난 사이]

[텍스트브이로그] 세 번째 인터뷰, 내 손으로 내보낸 그녀



[한경잡앤조이=김보경 아이케어닥터 이사] 2020년 새로운 달력을 꺼내며 창업 멤버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첫 만남을 가졌다. 장소는 이태원, 거뭇거뭇한 밤늦은 연기의 기억이 마치 누아르 영화처럼 선명하다. 처음 마주한 자리, 창업 멤버는 총 다섯. 삼삼오오 길에서 모였던 그 순간 내가 먼저 한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나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이 어색한 말은 또 무엇인지. 솔직함이 너무나도 어색한데, 그 부끄러움을 숨길 겨를 없이 또 말로 옮기는 사람이 바로 나다. 보경님의 부사수로 아주 똘똘한 친구가 있다며 소개받은 그날, 그녀의 인상은 그랬다. 나와 비슷한 친구. 내 부사수. 20년에 만나, 21년의 새 달력이 나오기도 전에 그녀와 ‘일로 만난 사이’로는 작별했지만, ‘일’을 뺀 소중한 사이로 여전히, 매우 아끼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타인을 지켜주는 과정'에 대해 -

인터뷰 형식 : 디지털 편지 형식의 인터뷰
인터뷰 형식 : 디지털 편지 형식의 인터뷰
먼저 보내고 요청한 사람 : 김보경 (기획자-사수)
나중에 쓰고 대답한 사람 : 이미란 (기획자-부사수)
왕복 서간의 주된 내용 : ‘타인을 지켜주는 방법’ - 내가 내보낸 사람, 그 사람을 지켜주는 과정에 대해



chapter 1. 이메일 쓰기 (보낸 날짜: 2022.7.16)
(시작!)
삶에서 '일'이 중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우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아끼고, 일을 고민하며,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지를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해 보려 합니다. 이 글에 해당되는 당신은 아마도 스스로 일 하고자 하며, 일 때문에 웃고, 일 때문에 울었던 적이 적어도 몇 번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내가 지켜본 최근의 3년, 당신은 매우 치열하게 고민하고, 웃고, 울었던 사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로 만나지 않았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이만큼이나 클까 싶고 한편으로는 일로만 만났더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끝내 몰랐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일로 만난 사람, 3호 인터뷰이를 당신으로 지목합니다.
(사전 질문 전달 생략)


chapter 2. 딩동!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받은 날짜: 2022.7.31)
그리고 그녀가 대답한 기록들

Q. 20년 가을, 처음으로 업무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을 때, 내가 ‘나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었죠. 그때 섭섭하지는 않았는지.
A.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감사하기도 했어요. 내일 출근부터는 조금 덜 애쓰고, 덜 연연하며 일해도 된다는 한마디였고요.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한마디였고요.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싶은, 생존을 의심하지 않게 하는 응원의 한마디였어요. 다만 이 관계와 조직에서 한 방향을 보며 함께 만들어 나가고 성취하는 경험도 끝이겠거니… 거기에서 오는 서운함이나 슬픔의 감정이 컸습니다. 정말로 잘해보고 싶었거든요.

Q. 나는 일로 만난 주변 사람들을 볼 때, 꿈을 향하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 두 가지로 분류하는 습성이 어느새 좀 있더라고요. 두 부류 모두, 충분히 존중받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죠. 꿈을 향하지 않는다고 가치가 덜하다고 볼 수 없으며, 꿈만 향하는 사람들 중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은 마치 아름다운 날개를 못 펴는 새처럼, 회사 속에서 갇혀 있을 때 그 무엇도 충족이 안 되는 듯한 자기와의 싸움과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잘 싸우고 있나요?
A. 싸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 하면서 노빠꾸(?)로 울타리 없이 나를 너무 소모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에 힘을 줬어요. 일로 얻는 성취감은 컸지만 커리어적인 목표나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부분은 특별히 없었고, 그러다 보니 즐길 수 없어서 쉽게 지치고 크게 일희일비하는 편이었습니다. 셀프 동기부여가 사라지면 곧바로 파국이 시작됐죠. 일의 진행이 생각대로 잘 안되니까 스스로를 탓하고 다잡았어요. 미련도 아주 많았었고요.(더 큰 파국) 무식하게 일만 했지, 일하는 나를 가꾸거나 성장시킬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고뇌가 참 많았나 봅니다. 지금은 일의 목표나 방향성에 대해서 스스로 방점을 찍을 수는 있게 됐어요. 일을 하면서 효율이나 적절한 쓰임의 정도를 알아가는 중이고, 강약 조절도 조금, 즐기는 것도 조금은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싸울 일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일을 계속하는 한…

Q. 회사를 떠나, 멋진 프리랜서로 날개를 비로소 달았다고 생각해요. 훨훨 날아가는 중으로 보이고, 지금도 잠시 짬을 내어 태국을 여행하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아직 충족되지 못한, 결핍이라는 것이 있다면 속마음을 조금만 공유해줄 수 있나요.
A. 지금은 태국 치앙마이에 와 있어요. 올해 상반기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일을 했어요. 또 일에 홀딱 빠졌던 얘기를 해서 정말 민망하네요^^;;;; 일은 즐겁게 했고 성과도 좋았지만 일하느라 또다시 나를 돌보지 못했고, 큰 공허함을 느껴서 6월, 7월 내내 무기력했었어요. 회복이 쉽게 안 되더라고요. 에잇 환경이라도 바꿔보자 싶어서 계획 없이 그냥 갑자기 왔어요. 뭐가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2주 정도의 일정인데 오전에는 매일 요가와 명상을 하고, 오후에는 또! 일을 하고 있습니다(ㅋㅋ).
태국은 불교국가인데요! 사원에서 승려에게 Mindfulness 워크숍을 며칠 동안 들었어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첫날에 걷기 명상을 하는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몸의 중심이 엄청 흔들리는 거예요. 마음도 이렇게 흔들리는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고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주르륵 났습니다. 내가 나를 더 아끼고 지지해주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니 남의 브랜드, 남의 사업은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정작 내 몸, 내 마음, 내 것 하는 데에는 엄청 수동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불안하고 두렵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제는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관점을 바꿔야겠다 다짐하고 갑니다. 어렵겠지만요!


△걷고 또 걷는 치앙마이 올드타운을 하루에 10km 이상 걸었다. (사진제공: 이미란)


Q. 요새 일로 받는 설렘, 어떤 설렘인지 알려주세요
A. 커피 전문점 매장 기획을 하면서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마음을 담아 장치해 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는데, 요즘 방문 고객 후기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것들 보면서 그 부분들을 캐치해주시니 너무 기쁘더라고요. 진심은 통하는 것 같아요. 모두에게 진심이 아닐 수는 있지만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설레고 행복했어요.
사실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는 일이라면 항상 설레요. 가슴 한편을 후비는 일을 하고 싶고요! 그 과정이 온전하다면 어떤 카테고리의 일인지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물론 우선순위는 있지만요) 내가 이 일을 준비하면서 담았던 마음이 결과물로 고객들이나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순간이 포착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앞으로는 연기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가슴 설렐 일들이 더욱 많을 것 같아요!

Q. 당신에게 '일'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요
A.‘재미’와 ‘쓰임’ 같아요. 일하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재미도 있고, 일을 하면서 새로 알아가는 것들에 대한 흥미와 재미도 너무나 크고요. 무엇보다도 일을 하면서 내가 이 과정 자체에 보탬이 된다는 느낌, 사람들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주고 있구나!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경험들이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굉장히 많이 줘요. 이런 감정에 중독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을 할 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그 과정 속에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도 항상 신선하고 짜릿해요. 챌린지 깨는 개운한 느낌이랄까?

한 때는 일을 하는 게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더 잘해야 하고, 욕심내야만 하는 그런 것이요… 누가 알아봐 주는 것을 원했던 건 아닌데…. '좋은 결과=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좋은 결과가 뭔지도 모르면서...) 과거에는 이런 부분들 때문에 괴로움도 많았지만 열심히 했다는 반증일 테고, 덕분에 배운 것도 많고 귀한 경험도 많이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과정을 즐기면서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내가 즐겁게 하면 남들도 그렇게 봐주더라고요. 내가 진심을 다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야겠다고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chapter 3. 인터뷰 감사글 쓰기 (2022.8.11)
‘타인을 지켜주는 방법'이라고 그럴싸한 타이틀을 잡았는데, 인터뷰를 정리하고 보니 응원을 한 것인지 받은 것인지 가늠하기가 힘드네요. 지난 오랜 시간, 일로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인생이 나의 인생으로 슬며시 들어왔고, 내 인생 역시, 그들에게 좋은 쪽으로 스며들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중 아주 짧고 굵게 들어왔다 나가버린 당신은, 또 다른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만들어 또 다른 챕터를 시작했죠. 우리가 지금까지도 재밌게 지내며 서로의 일을 응원하고 있으니 마치 일로 만난 사이인지, 원래 알던 사이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해요. 새로운 기획자의 역할을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당신에게 또 다른 세계관이 열릴 수 있도록 떠나고, 관두고, 나가고, 도전하라 라는 말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당신이 갖고 있는 용기를 발견하고 알려주는 것, 그게 전부고 가장 행복합니다.
*인터뷰에 참여해 준 아끼는 사람이자 옛 동료, 치앙마이의 거리를 걷고 걸으며 새로운 눈을 뜨고 오감을 발휘할 당신에게, 서울의 빼곡한 빌딩 숲 사무실도 오아시스로 만들고 싶은 내가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김보경씨는 대기업 전략 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시작, 브랜딩 컴퍼니 컨설턴트, 패션플랫폼 창업멤버를 거쳐 현재는 솔닥 비대면 진료 플랫폼 '솔닥'의 총괄 이사로 재직중이다. 직장생활 사이사이, 영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두 번의 개인적인 창업 경험이 있다. 육아와 유아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으로부터, 새롭게 발견하고 배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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