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이야" [이상한 창업자 신영씨]

[텍스트브이로그] ‘연봉 1억’ 인공지능 개발자를 그만둔 이유

[한경잡앤조이=강신영 아몬디 대표] “파격 연봉에 억대 보너스… AI 개발자, 부르는 게 값”, “억대연봉·자율 출퇴근 보장, 요즘 뜨는 AI분야”, “기본 연봉 2억원, 천정부지로 치솟는 AI 개발자 몸값”

포털사이트에 'AI 개발자 연봉'을 검색하면 기업들이 개발자들, 특히 AI 개발자들에게 억대 연봉을 지급한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실제 내가 카카오에서 인공지능 개발자로 일한 2018~2019년에도 30살 이전에 이미 연봉 1억을 넘는 동료 개발자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컴퓨터 전공도 아닌 한 대학생이 학원에서 6개월 동안 AI를 공부한 후 개발자 커뮤니티에 올린 코드가 한 IT 대기업 관계자의 눈에 띄어 1억이 넘는 연봉을 제안 받아 입사한 것도 관계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나 또한 계속 AI를 연구하고 개발했다면 서른의 문턱에 있는 지금, 같이 일하던 동료들처럼 억대 연봉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2019년 여름, 인공지능 개발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왜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주변에서 다 미쳤냐고 했다. 추석에 만난 친척들도 다들 유망하다고 하는 AI 개발자를 왜 그만두느냐고 난리였다. 심지어 가장 다니고 싶은 직장 조사에서 매번 1위를 하는 카카오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는 확신이 너무 커서였을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만두는 것에 대해 큰 고민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팀장님께 어떻게 그만둔다고 말할지가 훨씬 더 큰 고민이었다.

“조금 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고민 끝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팀장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을만한 말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가치를 주고 있는 건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팀장님께서는 조금 불편해하셨을 뿐 나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시면서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는 따뜻한 말까지 남겨 주셨다. 어찌됐든 그렇게 나는 좋은 연봉, 편안한 근무환경, 사내 상주하는 전문 마사지사분들(지금도 이 복지는 정말 아쉽다)을 뒤로한 채 회사를 떠났다.

메신저에서 더 쉽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기획하고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이모티콘을 추천해주는 AI 였다. 지금은 이모티콘 플러스를 구독하면 단어를 입력할 때마다 자동으로 이모티콘을 추천해주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능이 없어 이모티콘을 보낼 때마다 내가 가진 이모티콘들을 다 훑어보며 적절한 것을 찾아야했다. 우리 팀 동료 중에서는 이모티콘 세트가 50개가 넘는 팀원도 있었는데, 그 팀원은 이모티콘을 찾을 때마다 1000개가 넘는 이모티콘 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했다. 현재 보유 중인 이모티콘 외에 보유하지 않은 이모티콘 중에서도 적절한 것을 추천해주면 이모티콘 매출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만들었다. 밤도 지새우며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2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렇게 개발한 이모티콘 추천 AI를 가지고 이모티콘 관련 부서를 찾아가서 시연을 했다. 예상보다 반응은 좋았다. 너무 필요하던 기능이라고 얘기해 주시면서, 사실 먼저 AI 부서에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다며 함께 개발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출시는 최소 2년 뒤로. 이해는 됐다. 내가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를 하기 위해서 개선해야 될 부분이 많기도 했지만, 관련된 부서만 3개 이상이라 소통하고 결정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한번 소통하는데 2주를 기다려야 하고, 서비스 출시하는데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더 빨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라는 큰 조직에서 AI와 같이 바로 상용화가 힘든 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나와 맞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퇴사를 결심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대기업 혹은 인공지능 개발자를 꿈꾼다면..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카카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 카카오에서의 생활 모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종종 만나서 당구를 치고, 아직도 일을 하다가 뻐근할 때면 카카오 사내 마사지사분들이 생각난다. 인공지능 개발자 자체가 싫지도 않았다. 내가 개발한 인공지능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희열감이 들기도 했고,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인 만큼 끊임없이 배울 것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러니 대기업이나 인공지능 개발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내가 지속하지 못했던 조직과 직무이기 때문에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다만,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되고, ‘이건 내 이야기야!'라는 생각이 든 사람이 있다면, 대기업에 인공지능 개발자로 입사하는 것은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강신영 아몬디 대표.



강신영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전기전자공학과 기술경영학을 전공한 후 카카오 AI개발팀에서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일했다. 스타트업 투자사인 스파크랩으로 이직 후 프로그램팀 팀장으로 재직하며 스타트업 발굴 및 투자 업무를 진행하다가 멘탈 헬스케어 기업 아몬디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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