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창피스러워서..." 디지털 시대 속 설 자리를 잃은 노인들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②] ‘80세 평균 연 수입 800만원’ 돈 없는 고령층, 종로로 모이는 까닭은?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③] 왜 종로는 노인들의 놀이터가 됐을까?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서진 대학생 기자] 11월 22일 오전 9시경, 고양종합터미널을 방문한 A(83·남) 씨는 예상치 일을 겪었다. 터미널의 매표소 창구가 폐쇄돼 직원이 상주하던 자리에 무인 발권기 네 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것이다. 행선지도, 차 시간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기계 앞에서 몸이 굳어버린 A씨는 한참 후 터미널 직원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승차권을 얻을 수 있었다.


△고양종합터미널의 매표소가 11월1일자로 운영을 중단하며 무인 발권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아래)고양종합터미널 내 앱을 활용한 승차권 예매 및 버스 탑승 안내 배너가 줄지어 있는 모습. 발권기 이용조차 쉽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이걸 어찌 해야 하나 싶어. 그리고 창피스럽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장국지(79·여)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문하려면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는 식당에서였다. 장 씨는 “식당에 기계만 놓여 있으면 그냥 뒤돌아 나온다”며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던 심경을 토로했다.

식당부터 터미널, 기차역, 택시가 지나다니는 길거리까지, 일상 곳곳에 디지털이 스며들어 오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당연한 수순으로 흘러가고 젊은 세대일수록 빠르게 적응해가지만 우리 사회 한 켠에 있는 노인들의 소외는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제는 이동권 등 양보할 수 없는 영역까지 디지털이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노인들은 점점 더 좁다란 구석으로 고립되는 실정이다.

고령층 54.2% 키오스크 이용 경험 없어... 높디 높은 디지털 ‘유리장벽’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이용 잘 못 하시죠. 열에 한두 분 정도만 이용하세요.”
고령층 유동 인구가 많은 종로3가역 커피 전문점 운영자 B씨는 “대부분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쪽으로 아예 안 가시고 직원에게 직접 주문한다”고 말한다. 인근의 핫도그 전문점 직원 C씨 역시 고령층이 방문할 경우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워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고령층 유동 인구가 많은 종로3가역 인근의 모습.(아래)낙원악기상가 근처 공터에서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



올 5월 발표된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세 미만 94.1%가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반면 55세 이상 고령층은 45.8%만이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층 사이에서도 65~74세는 29.4%, 75세 이상은 13.8%로 나이가 많을수록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급격하게 적어졌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였다. 답변 중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가 17.8%를 차지하기도 했다. 키오스크 이용법을 알지 못하다 보니 기다리는 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사용 자체를 꺼리게 되고, 결국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로 남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무인 기계지만, 고령층에게는 번번이 좌절감만을 남겼다.

고령층의 전반적인 디지털 기술 이용 역량도 대부분의 항목에서 40점대로 드러났다. 이는 서울시민 평균 64.1점을 20점가량 밑도는 점수다. 특히 ‘상품서비스 구매’ 38.3점, ‘배달 음식 주문’ 37.6점, ‘결제 수단 이용’ 37.4점, ‘예매·예약’ 35.4점, ‘공공서비스 이용’ 30.9점 등 여러 영역에서 낮은 점수가 기록됐다. 이들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1년 고령층 서울시민의 디지털 기술 이용 역량 (출처: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남석인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점점 벌어지는 세대 간 디지털 격차를 “고령층이 디지털에 접근하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대부분의 고령층은 디지털이 일상과 직결돼 있지 않은 은퇴 이후에 디지털을 마주해 배움의 필요를 그다지 절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의 중요도는 갈수록 높아졌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까지 겹치며 디지털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남 교수는 “고령층에게 교육을 통한 소통의 기회가 사라진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에만 급급하다 보니 접근이 더 어려워진 것”이라고 짚었다.

노인을 위한 디지털 교육은 있지만…현실성 떨어진다는 지적도
디지털 기기 및 온라인 중심 운영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역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2021년 3월부터 ‘디지털배움터’ 사업을 진행했다.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국민 누구나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 사업으로 고령층 역시 각 지역의 복지관, 경로당, 커뮤니티센터 등 지정된 배움터에서 스마트폰 및 키오스크 사용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교육성과는 취지와 달리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2021년 디지털배움터 성과보고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디지털배움터를 통해 교육받은 60대 이상 고령층은 29만 명에 그쳤다. 2021년 기준 노인인구가 853만 명인 것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적은 수다.

디지털배움터 지원사업이 지자체별로 편차가 크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배움터 별 평균 인구수는 지자체마다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인구수가 4만 명가량인 부산광역시 중구에는 모두 7개의 배움터가 있는 반면, 인구수가 100만 명이 넘는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배움터가 3개에 불과했다. 양 의원은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배움터 선정 기준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별로 배움터를 배분할 때 자체적으로 마련한 배움터 선정 기준보다 지자체의 의지와 수요를 우선해 제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배움터 접근성 면에서 지자체마다 큰 폭의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

교육 자체적인 문제도 발견됐다. 남 교수는 “현행 디지털 교육은 학습자가 아닌 교육자 중심으로 다분히 일방적”이라며 “천편일률적인 커리큘럼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노인들의 개인화된 필요와 욕구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시니어 디지털 플라자’부터 ‘따뜻한’ 디지털까지, 사회적 연대로 함께해야
“어쩌겠어요. 우리가 배워야지.” 장 씨는 노인들을 제치고 발전만을 거듭하는 디지털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 배움을 통해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사람들 편의를 위해 둔 기계인데, 노인만을 위해 도로 없애는 건 원치 않는다”며 “대신 기계 사용법을 모르는 노인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도우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장 씨의 바람이다. 하옥선(65·여) 씨 역시 “기계 말고 사람도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에 접근 불가능한 노인들도 분명 존재한다”며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오프라인 서비스는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디지털화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노인들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공급자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노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유저 친화적인 서비스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대 간 디지털 격차를 좁히고 노인들의 소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남 교수와 정 교수는 ‘시니어 디지털 플라자’ 모델을 제안했다. 시니어 디지털 플라자는 우리 주변에 디지털 활용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노인들이 언제든 방문해 1대1로 필요한 디지털 기술을 습득하고 마음껏 질문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거절과 무시로 인한 모욕적 경험을 우려할 필요 없이 몇 번이고 편하게 질문하고 배울 수 있다. 디지털 교육을 받은 동년배 노인을 이곳의 교육자로 배치할 경우, 교육의 장벽을 낮춤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노인 일자리 창출 또한 가능해진다.

소통을 기반으로 한 배움의 과정에서 노인들의 외로움 역시 해소될 수 있다. 더불어 디지털 기기 및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중·고·대학생들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강사 역할로 참여한다면 단절된 1·3세대 간 소통의 창도 재건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들이 이용하는 실제 서비스와 디지털 기술 간의 자연스러운 융복합이 이뤄질 필요도 있다. 이상우 한국노년학회 총무이사는 “현재의 서비스들은 노인의 일상생활에 접목하기에는 여전히 기술력의 한계가 있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수용하는 전체 집단을 아우르는 포용적이고 ‘따뜻한’ 디지털 환경을 위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식적 노력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노인 소외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는 고령층에 대한 사회 전반의 차별적 시각이다. 이에 남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가장 필요한 이들은 다름 아닌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라며 “이들과 함께하는 디지털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사회가 연대해서 다 같이 나아가야 한다”며 연대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어 “디지털 기술 발전의 혜택이 영리 목적 이외에도 노인복지 등 비영리 분야에 더 적극적으로 보급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빠른 기술 발전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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